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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상에 보기 드문 은행이 탄생했다. 이름은 도나콜뱅크. 출자금은 300만 원. 무이자 대출에 때론 무상 지원도 하는데 1년이 흐른 지금 그 샘은 마르지 않았다. 운영자인 김경애 아가쏘잉협동조합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착한 은행”이라고 소개했다.

“ 300만 원은 아가쏘잉에서 함께 일하는 신영철 선생님의 지인들이 마련해 주셨어요. 이 돈으로 급전이 필요한 미혼모 18분께 15만 원씩 무상 지원을 했고 코로나 기간에 출산한 미혼모의 출산비와 심장병을 앓는 아기의 치료비로 썼습니다. 현재는 84만 원 정도 남았네요. 오늘은 한 친구가 1만 원이 필요하다면서 대출서류를 쓰고 갔어요.”

김경애 대표(좌)와 신영철 전략팀장(우). 신 팀장은 대구시청 사회적경제 주무관으로 일할 때 김대표의 요청으로 미혼모가 머무를 장소를 구하다 의기투합해 아가쏘잉협동조합에 합류한지 2년 4개월 됐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김경애 대표(좌)와 신영철 전략팀장(우). 신 팀장은 대구시청 사회적경제 주무관으로 일할 때 김대표의 요청으로 미혼모가 머무를 장소를 구하다 의기투합해 아가쏘잉협동조합에 합류한지 2년 4개월 됐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300만 원으론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자 "꼭 필요한 경우라면 돈을 따로 모으고 때론 뜻을 함께하는 농부의 도움을 받아 유기농 과일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빈틈을 메운다"고 설명했다.

“큰돈은 제한을 두지만 택배비가 없다거나 1만~2만원 정도의 소소한 금액을 빌려주는 경험들은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준다고 봐요. 누군가에게 돈을 떼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부디 그 돈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손끝으로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

아가쏘잉협동조합은 재봉틀 교육과 수공예품 판매를 통해 미혼모와 한 부모 가정의 자립을 돕는 일을 9년째 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힘들지만 미혼모 당사자들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컸다”라고 전했다.

“애들이 어린이집을 안 가니 미혼모들은 파트타임 일 조차할 수 없게 됐죠. 원룸 비용은 물론 휴대폰 요금조차 못내는 경우도 많아요. 미혼모들에게 휴대폰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라 끼니는 굶어도 휴대폰이 끊기는 건 정말 힘들어합니다. ”

김대표는 자녀를 넷 둔 엄마다. 2013년 10월 미혼모자 시설에 재봉틀 교육봉사를 하다가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

“미혼모자 시설은 2년까지만 있을 수 있어요. 퇴소를 앞둔 친구가 모자원 시설은 들어가기 싫은데 방을 얻을 보증금은 없고 혼자 나가서 아이를 키우자니 막막하다고 했어요. 그때 제가 잘하는 건 미싱 밖에 없는데 동네 엄마들이 ‘예쁘다. 사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해오던 터라 미혼모들이 제품을 만들고 동네 엄마들이 팔아주면 어떨까 생각했죠.”

아가쏘잉이 만든 아동용 인견이불세트.  아가쏘잉은 타올과 스카프, 인디언 텐트, 출산 및 유아동용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맞춤식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아가쏘잉이 만든 아동용 인견이불세트.  아가쏘잉은 타올과 스카프, 인디언 텐트, 출산 및 유아동용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맞춤식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아가쏘잉이 만든 인디언 텐트. 미혼모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기가 잘 때나 어린이집에 갔을 때 일한다.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아가쏘잉이 만든 인디언 텐트. 미혼모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기가 잘 때나 어린이집에 갔을 때 일한다.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방치될 위기의 아이들.. 동네 엄마들이 대가 없이 돌본다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다양한 일을 한다. 바느질도 하고 제품도 생산하고 판매도 하고 교육도 하고 반찬 봉사를 하거나 노숙인 밥을 지을 때도 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16년부터 실천하고 있는 ‘도나돌봄’이다. 김 대표는 미혼모들이 아이들을 혼자 놔두고 외출하는 모습을 빈번히 목격하면서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동네 엄마 7~8명이 위탁가정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요. 엄마들은 30개월도 안된 아이가 낯가림도 없이 잘 놀고 엄마랑 헤어진다고 슬퍼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무척 서글펐다고 합니다.”

 

아이를 맡아준 동네 엄마에게 미혼모가 남긴 감사의 편지글.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아이를 맡아준 동네 엄마에게 미혼모가 남긴 감사의 편지글.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도나돌봄은 어떤 금전적인 대가 없이 이뤄진다. 유일한 보상이라면 맡겼던 아기를 데려갈 때 위탁가정에게 남기는 편지글이 전부다. 김 대표는 “금전적 거래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는 책임이라는 부분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도나돌봄은 그 부분에서 자유로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애들을 키우다 보면 생채기가 나거나 다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부모나 조부모의 마음으로 돌봤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죠. 전 엄마들한테 너무 잘 차려 먹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해요. 편안해야 이 일도 지속 가능합니다. 손님이라고 생각하면 늘 환대하고 극진히 대접해야 하지만 우리는 손님이 아니라 서로서로 가족을 맞이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김 대표는 이런 관계를 ‘사회적 모성애’라고 불렀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혈연이나 학연을 넘어 관계를 맺고 엄마 품 같은 따스함으로 품어주는 ‘사회적 가족’을 말한다.

“엄마 품이란 결코 생물학적인 여성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모성이나 가족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온기를 말하는 거죠. 힘든 이들에게 어깨를 내어줄 수 있고 누군가에겐 꽉 막혔던 숨통을 틔어줄 수 있는 공간이 어딘가엔 꼭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가쏘잉이 걸어온 길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 묶음들./ 사진=백선기 에디터
아가쏘잉이 걸어온 길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 묶음들./ 사진=백선기 에디터

그런 분위기 탓에 다양한 인물들이 아가쏘잉에서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었고 웃음을 되찾았다. 학교에서 말썽을 부렸거나 진로에 고민하는 아이들, 두발 의족에 의지해 일하는 청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미혼모, 알코올의존증으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내온 이들처럼 사연들도 제각각이다.

“특별히 해주는 건 없어요. 같이 땀 흘려 일하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가족이라면 해보는 다양한 경험을 할 뿐입니다. 특히 미혼모들은 원가정이 없는 분들이 많아 이 안에서 환대하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실천해보는 거죠.”

아가쏘잉협동조합 사무실에는 어깨동무라는 이름으로 중년 남녀 자원봉사자 15명이 들락거리며 힘을 보탠다.

김 대표는 "어깨동무는 아가쏘잉의 구매자로 혹은 교육생으로 만나 아가쏘잉이 단순한 공방이 아님을 알고 뜻을 함께 하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동지들"이라고 전했다.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김 대표는 "어깨동무는 아가쏘잉의 구매자로 혹은 교육생으로 만나 아가쏘잉이 단순한 공방이 아님을 알고 뜻을 함께 하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동지들"이라고 전했다. / 제공=아가쏘잉협동조합

“저희는 늘 점심을 사무실에서 만들어 같이 먹어요. 서로 수다를 떨다 보면 마음이 녹아내리고 귀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부모와 싸운 이야기, 가출했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합니다. 대학 진학을 꿈도 꾸지 않았던 아이들이 공부할 마음을 먹고, 인턴십을 맺은 대안학교에선 학교협동조합을 만들어 우리가 만든 물건을 판매하기도 하죠. 늘 지각만 하던 아이들이 이곳에선 한 번도 지각하는 일이 없자 학교 선생님들이 그러셔요. 학교 교육이 다는 아닌 것 같다고”

 

지역 자산화를 마중물 삼아 사회적 탯줄 잇는다

아가쏘잉협동조합은 지난 4월 행정안전부 지역 자산화 사업에 선정됐다. 근처 어린이집을 인수해 총 1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공공을 위한 건물을 짓고 임대수익을 통해 더 큰 그림을 그려간다는 계획이다.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저희 같은 작은 조직이 언감생심 어디서 10억 원을 빌릴 수 있겠어요? 상환조건이나 이자율이 아주 매력적인 건 아니지만 공간 사업은 너무 해보고 싶었던 일이에요. 13억 원 가운데 3억 원은 우리 스스로 조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조합원들의 숫자를 기존 10명에서 50여 명으로 늘리고 현 조합원들의 증자와 개인투자자 모집을 진행 중입니다. 더불어 손뼉프로젝트도 시작했어요. “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김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가족 만들기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뜻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김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가족 만들기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뜻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손뼉프로젝트는 1만원 씩 5000명의 후원자들을 모아 5000만원을 조성한다는 프로젝트다. 김대표는 몇 해전 TV에 소개되면서 거액의 투자와 후원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돈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혼모들에게 필요한 건 같이 땀을 흘리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외부에서 기부금을 받아 미혼모에게 연결시켜주는 곳은 많다”면서 “우리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느리지만 그들만의 길을 탄탄하게 닦아 나가고 있다.

“지난 9년간 뭐 했느냐 물으면 크게 내세울 건 없어요. 온전한 자립을 이룬 미혼모 가정은 3~4가정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인 거죠. 한 생명으로 본다면 자궁에서 잉태되고 온전한 자립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근육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미혼모들은 한곳에 정착해 살기가 참 어려워요. 시설을 전전긍긍하며 떠돌기도 하고 외부로 나가도 금방 주소지가 바뀌기도 하고 휴대폰 번호는 1년에 10번도 바뀌곤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기반을 잡아주는 사회적 탯줄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가쏘잉은 그 탯줄 역할을 하고 싶어요. 따스한 엄마 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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