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歌皇) 나훈아가 15년 만에 TV를 통해 안방 시청자들과 만났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는 뜻에서 출연료를 받지 않았고 다시 보기 없이 진행했다. /사진=대한민국어게인 나훈아 스페셜 TV화면 촬영
 가황(歌皇) 나훈아가 15년 만에 TV를 통해 안방 시청자들과 만났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는 뜻에서 출연료를 받지 않았고 다시 보기 없이 진행했다. /사진=대한민국어게인 나훈아 스페셜 TV화면 촬영

추석을 하루 앞둔 밤늦은 시각. 남편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보여주며 난리가 났다고 했다. 진원지는 KBS가 추석을 맞아 기획한 나훈아 콘서트를 본 페친들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트롯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그의 무대에 환호를 보냈다.

‘도대체 어떤 무대였길래 이렇게 난리 법석인가’

싫든 좋든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야 하는 기자로서 난 큰 사건 현장을 놓친 기분이었다. 다행히 개천절 날 공연 하이라이트와 뒷이야기를 묶은 특별방송을 한다기에 거의 의무감을 갖고 봤다. 밤 10시 반에 시작한 방송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내가 본 그는 천상 대중가수였다. 74살의 나이에 어떻게 저리도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을까. 무려 2시간 30분 동안 30여 곡을 소화하는 열정과 체력은 그가 왜 가황인지를 입증해 줬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나이를 잊은 듯한 여전한 미성과 화려한 무대라기 보다는 그가 가수라는 직업을 대하는 남다른 철학이었다.

제작진들은 코로나 19로 대규모 야외공연이 무산되고 비대면으로 바뀌었을 때 그가 그만두지 않을까 내심 우려했다. 그는 ‘가수가 피아노 한 대와 기타 하나만 있으면 무대에 서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특유의 뚝심을 보여줬다. 그 결과 콘서트는 KBS 홀에서 온라인으로 만난 1000명의 관객과 비대면 공연이라는 초유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나훈아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명절 선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무보수로 출연했다. 공연의 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중간광고도 없앴다. 더불어 자신의 발언을 절대 편집하지 말 것과 다시 보기 없이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낸다는 조건을 내걸며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강조했다.

이 소식에 나훈아가 과거 재벌 회장의 생일 파티에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던 일화가 다시 인구에 회자됐다. 그는 “나는 대중예술가요.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합니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사세요” 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의 영광에 묻혀 살거나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번 무대에도 9곡의 신곡을 들고 나왔고 이 중 소크라테스에게 인생을 묻는 ‘테스 형’은 큰 인기몰이를 했다. 그는 “54년을 노래했지만 연습만이 살 길이고 연습만이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라는 말로 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해 1만 석이 넘는 콘서트 티켓이 불과 8분 만에 전석 매진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난 한 마디로 그런 그가 참 부러웠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노래로 이번 무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줬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호주, 짐바브웨, 덴마크, 태국, 러시아 등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사는 해외 동포들을 안방으로 끌어들여 우리는 하나라는 동포애를 강하게 심어줬다.

마냥 움츠려 드려는 국민들을 향해서는 우리가 세계 1등 국민임을 상기시키면서 코로나19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는 대중가수로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와 국가에 공헌한 것이다.

나훈아의 무대를 보는 내내 뇌리를 스쳐간 생각은 ‘난 직업인 기자로서 과연 사회를 이롭게 하고 있는가’였다. 나도 가수 나훈아처럼 나이 들고 싶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이 요구하는 ‘나(기자)다움’을 지켜내려 부단히 애쓰면서 그 결과물이 타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그런 삶 말이다. 

이제 다시 달려보자. ‘붙잡을 수 없는 세월에 끌려가지 말고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함께 끌고 가자’는 가황의 외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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