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배송,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배달 천국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에 가려진 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하다 못해 아프다. 3년 전 아들이 군 제대 후 택배 상차 알바를 딱 하루 한 적이 있다. 단 하루 만에 도저히 못하겠다고 두 손 들었다. 그 하루를 재현해 보면 이렇다.
# 오후 5시쯤 구로역 근처에서 대형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여러 군데를 돌면서 사람들을 태우더니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센터 허브에 도착했다.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지문 인식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배정을 받고 담당 구역의 팻말이 적힌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위잉’하는 기계음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가 돌기 시작했고 엄청난 물량의 택배 상자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처음 시작할 때 만도 만만하게 봤다.
'군대도 다녀왔는데 설마 유격 훈련만큼 힘들겠어?'
두어 시간이 흘렀을 때 자신감은 공포감으로 바뀌었다. 일하는 내내 허리를 펼 겨를이 없었다. 화장실가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고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그 몫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반장의 다그침과 거친 욕설 또한 쉼이 없었다.
'내가 욕을 먹어가며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도중하차했다. 잠시 쪼그려 앉아 쉬려했더니 오랫동안 이 일을 했다는 나이 지긋한 팀원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며 손가락으로 천정을 가리켰다. 위를 보니 폐쇄회로TV(CCTV)가 있었다.
밤 12시가 될 무렵 저녁과 함께 휴식시간이 1시간 주어졌다. 사람들은 식당으로 뜀박질해 달려갔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식당 규모는 사람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다. 아들은 밥을 먹기위해 줄 서는데만 50분을 허비했다.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위잉' 다시 컨베이어 벨트가 돌기 시작했다. 시작 버튼과 함께 돌아가는 기계음이 이젠 무섭게 까지 느껴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량이 또 쏟아져 들어올까' 그 물량들을 차량에 싣는 일은 숙련을 요하는 일이었다. 최대한 많은 양을 주어진 컨테이너 박스에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 시간은 언제 끝난다는 것이 없다. 그날의 물량이 다 소화돼야 끝이다. 동이 틀 무렵부터 '이제 곧 끝날 거야'하는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하지만 저녁 7시쯤 시작한 일은 다음날 오전 10시가 돼서야 끝났다. 아들이 받은 일당은 10 만 원으로 힘든탓인지 당시 다른 알바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아들은 돌아와 거의 만 하루를 침대위에서 뒹굴었다. 온몸에 알이 배겨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고 했다. ' 아주 열악한 노동 환경이구나 ' 라며 쓴웃음을 지었던 그 날의 기억이 요즘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류센터 허브에서 상차한 물건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대리점으로 간다. 거기서 세부 분류를 거쳐 택배 기사들이 각 가정으로 물건을 배달한다. 코로나 19로 택배 물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시스템은 이를 따라잡지 못해 그동안 수면에 잠겼던 문제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있다.
아들의 택배 상차 알바를 계기로 알게 된 열악한 노동 환경과 물건 하나를 배송했을 때 택배기사들이 손에 쥐는 돈은 극히 적다는 걸 알고 난 뒤 나는 아파트 공동현관문의 벨이 울리면 부리나케 나가 문 앞을 서성인다. 그들에겐 시간이 곧 ' 돈 ' 이자 ' 휴식 ' 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광석의 노래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란 노랫말이 있다. 어디 사랑뿐이랴. 너무 힘든 ' 일 ' 은 ' 일자리 ' 라 할 수 없다. 만일 그 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면 잠시 속도전을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편리함 속에 누군가의 고통을 유발하는 요인이 있는 건 아닌 지 그리고 그 고통의 눈물을 닦아 줄 방법은 없는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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