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5. 스카이 캐슬 사람들
[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5. 스카이 캐슬 사람들
  • 이진주
  • 승인 2018.12.17 14: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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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5

스카이 캐슬 사람들

“강남불패”. 떨어질 줄 모르는 강남 부동산 가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통용된다. 상류사회에 대한 환상이나 강남의 교육현실을 과장되게 다룬 이야기들은 실패가 없다. JTBC <스카이 캐슬> 역시 마찬가지다. 그건 일종의 ‘도시전설’이어서, 강남에 속해있는 사람도, 속해있지 않은 사람도 혹하고 넘어가게 만든다. “한국교육의 치명적 위기”가 핵심 메시지라면, 그걸 싼 포장지는 서울의대, 상위 0.1% 컨설팅, 은행의 VVIP 마케팅과 자살 같은 자극적인 내용들이다.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치명적인 장치들 속에 “엣헴”을 숨겨놓아 봤자다. 시청자들은 달이 아니라 화려한 네일케어와 보석반지를 끼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본다. 일껏 성진과 팔선녀가 진탕 놀아놓고 한바탕 꿈이었다고 내숭떠는 <구운몽>의 전략과도 비슷하다.

강남교육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아이를 서울의대에 보내려고 영혼을 파는 엄마(염정아 분)의 입에서는 “그래야 내 딸이 나만큼 살 수 있으니까.”라는 워딩이 흘러나온다. 그건 8년 전 강남 상위 0.1% 영어유치원 학부모였던 내가 같은 유치원 학부모였던 친구엄마에게 들은 말이었다. 우리는 결코 상류층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중상류, 즉 ‘어퍼 미들’이었다. 그와 나 모두 의사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의사, 남편이 의사, 언니가 의사, 형부도 의사인 그이나, 시아버지가 의사, 남편이 의사, 남동생이 의사, 동서도 의사인 나 역시, 의사라는 직업의 고단함이나 서울의대라는 허명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을 의사가 되는 코스에 넣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 때 그이가 해준 말이 저거였다. “의사가 좋은 직업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거라도 해야 애들이 우리만큼 살 수 있으니까.” 영재고 과학고 스펙으로도 별 볼 일 없어진 올림피아드 학원들이 죄 의대 준비 학원으로 변모해, 유딩부터 고딩까지 한 줄로 세우는 입시 컨설팅을 제공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학원들은 ‘수학의 정석’을 중심으로 한 선행코스를 앞세워 학생들을 예비의사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서울의대를 나오고 테뉴어를 받은 대학교수나 병원 센터장이라고 해서 그런 호화주택에 무상입주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건 극중에서 스쳐 지나간 존스홉킨스 나온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학벌은 학벌이고 부동산은 부동산이다. 수능 전국 석차와 부자 순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드러내 이야기하지 못할 뿐, <별곶>이 위치한 제주국제학교 영어마을 지역에서 의사란 ‘중인’ 계급에 가깝다. 중인이란 기술자를 뜻한다. 천민이나 양인은 아니지만, 양반도 못된다. 존경받는 직업도 돈 버는 직업도 아니다. 서초동 사립학교에서는 판검사 학부모만 따로 관리하고, 과학특구 대전에서는 부모의 전공을 따지듯, 전국구 부자들이 모여 사는 제주에서는 IT 기업가가 갑이다. 어디에도 의사의 자리는 없다. 서울의대 나온 학부모가 잘난 척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닌 것이다. 다만 소싯적에 전국 200등 안에 들었다는 증빙 정도일 뿐.

의사는 그런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이국종 교수의 삶이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과 현실에 더 가깝다. 죽도록 공부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게 되었으나 늘 시간에 쪼들리고 수억대 리스비에 쫓기는 극한 수준의 육체 노동자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대행하는 압도적인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내과나 외과 같은 정통 분야보다 ‘QOL(Quality of Life)’가 높은 방사선과, 마취과의 인기가 더 높아진지 오래다. 돈은 의사가 버는 것이 아니다. 병원이 들어선 건물주와 병원 아래 약국과 글로벌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업체가 번다. 서울의대나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은 진짜 실상에서 소외된 이들, 어퍼 미들 이하 더 광범위한 계층의 꿈이다. 결코 상위 0.1%의 꿈이 아니다. 드라마는 그것을 알고도 도시괴담과 전설을 적당히 섞어 대중을 자극하고 있다.

대신 상위 0.1%는 이런 꿈을 꾼다. 한 15년 전, 대원외고와 민족사관고 등의 해외유학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탑 레벨 유학 컨설턴트들은 재벌가 자녀들의 원서를 고치고, 에세이를 대필했다.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 아름다운 명분을 내세운 학생 음악회나 전시회를 열어주고 유명 대학교수와 각국의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고 빈민지역에 학교를 세워주기도 했다. 그런 해외 봉사활동에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상팀이 학생을 직접 따라갔다. 학생이 만든 것처럼 일부러 어설프고 자연스럽게 마스터 필름을 찍어다 활동자료로 제출하려는 목적에서다. 당시 가격으로 이런 패키지 프로그램 가격이 1억원이었다. 진짜 상위 0.1%들은 그렇게 해서 자녀들을 필립스 엑시터, 필립스 엔도버, 초우트 로즈마리 홀 같은 명문 프렙스쿨이나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와 같은 아이비리그에 자녀들을 보냈다. 거기 가서 만난 동문들을 국내 사업에 초빙해 활용하라는 배려였다. 그런 배경이 필요한 정치인들도 자녀를 해외로 빼돌렸다. 진보 지식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낙오된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정신병원에 갇혔다. 지인들에게는 여전히 해외유학 중인 것으로 둘러댄 상태로.

은행의 VVIP들은 학습 컨설팅에 앞서 중매를 서기도 한다. 돈이 가족이나 가문의 계획에 개입하는 것. 그런 중매에는 부모의 기획 아래 성장해온 범생이 자녀들이 곱상한 스펙을 들고 나온다. 그들은 감히 자기 힘으로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상상을 하지 못한다. 살아왔던 모든 과정이 부모의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혼자 싸우기에는 세상이 너무 거칠다는 걸 학교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부모의 힘을 빌려 2인 3각으로 달려도 안전하지 않은 트랙 위에서, 혼자 달리던 아이들은 낙오된다. 낙오된 아이들은 낙오된 아이들을 만난다. 고시원의 아이들, 편의점의 아이들, 탄광의 아이들이 문득 수저론에 눈 뜰 때, 분노와 슬픔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그 와중에 트랙 위에서 죽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나온다. 아빠가 자녀교육 때문에 세상을 버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목숨을 끊는 주체는 아이들이거나 엄마들이다. 교육이라는 먹이사슬은 아빠의 가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손에 피를 묻히고 제풀에 피를 흘리는 것은 언제나 아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이다. 대치동 아파트에서도 아프거나 죽는 이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집값연대’가 작동해 모든 것은 소문에 그치고 만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억압자를 자임하는 엄마들에 대한 저주를 숨김없이 퍼붓고, “느검마(느그엄마)”란 표현을 빌려 친구의 엄마를 모욕한다. 당연히 참담할 지경으로 저급한 성적인 욕설들이 뒤따라 온다. 입시에 내몰린 아이들은 성을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로 활용한다. 섹스는 이미 게임이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마트에서 과자봉지 따위나 훔쳐 나오지 않는다. 공부 잘하고 부유한 최상위 포식자들은 그 아래 계급의 만만한 애들과 사랑도 책임값도 없이 잔다. 우아한 엄마들은 자녀의 일탈을 스포츠의 범주에 두고 눈을 감는다. 아무리 명문이라도 학교마다, 성폭행을 시도하다 쫓겨난 남자아이들과 임신해서 조용히 사라진 여자아이들의 전설이 있다. 민족사관고에도 있었고 제주국제학교에도 있다. 그게 무서운 엄마들은 성교육마저 사교육 강사를 불러다 따로 시킨다. 시민의식으로서 젠더의식은 이런 환경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스카이 캐슬의 가장 극적인 지점은 이것이다. 호화로워 보이는 성채 같은 주택들은 사실, 서울 인근 골프 리조트의 미분양분을 팔아보려고 드라마에 협찬한 것이고, 스카이 캐슬이란 이름은 스카이 대학과 롯데 캐슬 아파트의 조합이었겠지만, 알고 보니 어느 납골당의 명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 말이다. 상위 0.1%라는 코끼리에 제각기 이름을 붙이고 멋대로 더듬다 서로 다른 허상들을 불러들일 때, 우리 아이들은 실체도 모른 채 죽어나간다. 부유한 아이들은 부유한 아이들대로 가난한 아이들은 가난한 아이들대로, 지난 30년 동안,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경쟁적인 교육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사회 전반에 미친 해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별곶은 그 대치동 문화가 10배 증폭된 국제학교 영어마을에서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교육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여기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전국 단위에서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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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2018-12-20 10:15:53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flexn 2018-12-17 19:55:53
언니!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