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하다는 조항에 덕분에 그동안 전국에 1만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며 ‘붐’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복잡한 행정과 미흡한 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설립만 해놓고 사실상 미운영?폐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절반 수준에 달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법 개정 및 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의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 서울 A협동조합 임원들은 외국에서 재배하는 인삼 사업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조합원을 모집해 투자금 12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애초에 사업 모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짜 협동조합’이었다. 경찰은 “정부의 협동조합 육성 정책에 편승해 불법 단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 수도권 지역의 B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파는 매장을 열었지만, 손님이 찾지 않아 적자가 지속됐다. 소비 트렌드를 명확히 읽지 못한데다 관련 서비스를 제대로 설계하지 않은 채 사업을 시작한 탓이다. 충분한 사전 정보, 철저한 준비 과정 없는 미흡한 설립은 결국 폐업으로 이어졌다.

A협동조합은 외국 재배 인삼 사업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속이고 조합원을 모집해 큰 돈을 가로챘다.(사진=KBS 뉴스 갈무리)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설립 신고 및 인가된 협동조합 1만 615개 가운데 절반 가까운 4447개(41.8%)는 ‘사업 미운영’ 상태다. 이 중 폐업한 곳은 1453개, 사업 중단한 곳은 2994개로, 이들이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이유 중 대다수는 사업모델 미비(25.5%) 때문이었다. 4곳 중 1곳은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도 없이 협동조합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1만개 이상이 설립되는 등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면서 정부 지원금에 기대는 부실한 협동조합, 이른바 ‘좀비 협동조합’ 난립에 대한 날선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폐업 및 사업 중단의 주요 이유가 ‘사업모델 미비’로 꼽힌 것을 들어 “애초에 무슨 사업을 할지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일단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함께 나왔다.

어떤 업종이든지 5명만 모이면 신고해 설립할 수 있게 한 기본법 조항에서 비롯된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등록주의’로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면서 법 제정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협동조합 설립 붐이 일어났다”며 “다수의 협동조합이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설립되면서 ‘협동조합은 부실하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을 민간에게만 맡기는 것에 한계가 있는 만큼, 협동조합 신고 시 최소한의 특성, 조합원의 자격, 최소자본금 등 최소한의 규정을 명시하게끔 해야 한다”며 “설립 전 전문 인력의 비즈니스 모델 컨설팅 등을 통해 사업성 및 지속가능성을 검토하고 시작하게 해야 ‘부실 협동조합’이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은 5년 사이 1만개로 급증했지만, 4곳 중 1곳은 '사업모델 미비'로 미운영 상태다.(디자인=유연수)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역시 “협동조합도 엄연히 기업 활동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업 계획을 짜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시작하면 금방 깨지게 될 수밖에 없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협동조합 1만 여개 중 정상 작동되는 곳은 2000여개로 15~20% 정도다. 나머지는 없어졌거나 운영 중이지만 헤매고 있는 상태로, 대부분 설립 과정이 부실한 것에 기인한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도 없이 사업을 시작한 근본적 원인은 우리나라에 협동조합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본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설립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는 ‘초기 진통 과정’으로 어찌 보면 당연히 겪어야 할 단계다. 지난 5년간 지원기관도 늘고 교육 과정도 생기는 등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거라고 본다.” 

한편에서는 협동조합이 정부 보조금이나 정책 지원금만 받고 사업은 운영하지 않는 ‘좀비’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일부 협동조합에서 불법을 일으킨 건 사실이지만 다수에 해당하지 않으며, ‘좀비’라는 표현은 과하다고 반박한다. 기재부 조사에서 등기된 협동조합 중 정상 운영 중인 곳의 사업 운영률은 53.4%인데, 주식회사 등 타 법인의 가동률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 생존율’은 창업 1년 이후 62.7%, 2년 이후 49.5%, 3년 이후 39.1%, 5년 이후 27.5%다. 창업 후 5년이 지나 생존하는 기업은 10개 중 3곳도 안 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숙박, 음식, 도소매업 등 4대 자영업의 폐업률 역시 88.1%로 10곳 중 9곳은 문을 닫는 상황이다. 강민수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기업도 자영업자도 모두 어려운 경제 흐름 속에서 협동조합의 가동률만 탓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설립 때 최소한의 사업성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디자인=유연수

김 이사장은 “1만 여개 협동조합 중 정부의 직접 지원을 받은 곳은 주로 소상공인 협동조합으로 전체의 7% 정도”라며 “나머지 93%는 정부 지원을 받지도 않았고, 그런 정책을 시행한 적도 없기 때문에 ‘협동조합은 정부 지원금을 노리는 사냥꾼’으로 보는 건 악의적이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부실 협동조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휴면조합 정리를 유도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법 개정을 통해 협동조합 해산근거를 마련하고, 최후 등기 이후 5년 이상 경과한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영업폐지 여부를 확인 후 2개월 이내 미신고시 ‘해산’으로 간주해 시정 명령 및 관리?감독에 들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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