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하다는 조항에 덕분에 그동안 전국에 1만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며 ‘붐’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복잡한 행정과 미흡한 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설립만 해놓고 사실상 미운영?폐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절반 수준에 달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법 개정 및 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의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스페인 명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돼 20만명 가까운 주민들이 구단을 운영한다.(사진=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메시, 과르디올라, 푸욜 등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한 스페인 명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는 협동조합으로 유명하다. 20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후원금을 모아 구단을 운영한다. 조합원들이 6년 임기의 구단장을 선거로 선출하며,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총회에 참석해 연간 보고서, 장기 계획, 예산 등을 결정한다.

#오렌지, 레몬으로 유명한 미국의 ‘선키스트’는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농민들의 협동조합이다. 1907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지역의 6000여 농가가 힘을 합쳐 글로벌 시장에서 단일 농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주식회사처럼 싸게 사서 이윤을 많이 남기는 방식이 아닌, 엄격한 품질로 관리되는 오렌지를 비싼 값에 구입해 판매한다.

#글로벌 패스트푸드 기업 ‘버거킹’은 협동조합과 일반기업의 협업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대부분 식재료를 본사를 통해 구입하는데, 본사의 가격 횡포가 심해지자 1991년 가맹점주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식재료를 공동구매해 이윤을 창출했다. ‘KFC’ ‘던킨도너츠’ 등도 같은 방식으로 상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협동조합은 1844년 12월 영국의 마을 ‘로치데일’에서 직조공 28명이 1년 동안 모은 약 28파운드의 출자금으로 매장 한 곳을 연 데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허름한 창고에서 몇 종류의 물품을 진열해 판매했지만, 정확한 물량과 질 좋은 상품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협동조합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공정한 거래라는 인식이 퍼졌고, 이용한 만큼 조합원에게도 배당이 돌아가 이득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럽을 중심으로 싹을 틔운 협동조합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 빈부격차, 실업 등 문제가 심화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속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약소한 처지에 있는 농민이나 중?소 상공업자, 일반 소비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구매?생산?판매?소비 등에 함께 나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에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최초로 탄생한다. (사진=국제협동조합연맹)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 의한 민주적 운영과 공동 소유, 1인 1표, 배당 제한 등을 특징으로, 기존의 상법상 ‘주식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기업 모델로 주목받았다. ‘민주성’ ‘평등성’ ‘투명성’이 주요 원칙으로, 모든 구성원이 조합 내에서 평등한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설립부터 사업계획, 운영 등 전반적인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따르면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협동조합은 현재 107개국, 300만개 협동조합 기업,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인 12억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세계 최대의 비정부 기구로 성장했다. 앞서 사례로 든 ‘FC바르셀로나’ ‘선키스트’ ‘버거킹’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설립된 농협, 수협 등과 1980년대 생겨나기 시작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의 명맥을 이어왔다. 2012년 기본법 제정 이후 5년이 지난 현재 협동조합 수가 1만 4000개에 육박할 만큼 급격히 늘어났지만, 절반 이상이 폐업하거나 미운영 상태라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외국과 달리 협동조합의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난 만큼, 양적 성장과 더불어 내실을 다지는 정책적 지원과 협동조합 자체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이종제 협동조합공작소 이사는 “휴면 조합의 수가 많지만, 초기 단계 사람들이 겪는 ‘실험’으로서 지켜봐줄 시간이 필요하다”며 “1개를 세워 1개가 성공하면 100%지만, 100개 중 50개만 잘됐을 때 성공률은 50%지만 실제 개수는 50개가 훨씬 더 많은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외국 협동조합의 여러 사례를 살피고, 국내 상황에 반영할 부분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전 세계 협동조합을 대표하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1995년 영국 멘체스터 총회에서 발표한 주요 원칙 7가지는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협동조합이 지켜나가야 할 지침으로 거론된다.

ICA가 발표한 협동조합 7가지 원칙은 20년 지난 현재에도 유효한 지침이다.(디자인=유연수)

협동조합의 가치를 실행하기 위한 제7원칙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운영 △조합원에 대한 교육?훈련 및 정보 제공, 대중에게 홍보 △협동조합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도 각국 정부가 협동조합을 강화하는 적정한 수단을 개발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브루노 롤런츠 ICA 사무총장은 지난 7월 대구에서 열린 협동조합 주간 기념 국제컨퍼런스 ‘일의 미래와 노동자협동조합’에 참석해 “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성장, 좋은 일자리, 식량 안전, 생산, 소비, 보험, 사회통합, 평화 등 국제연합(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주요 해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국제연합(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하고 협동조합 관련 결의문을 발표했다. 2009년 발표한 결의문 ‘사회발전에서 협동조합(Cooperatives in social development)’에서는 “협동조합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경제, 사회 발전에 참여를 촉진시켜 빈곤 퇴치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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