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민사회의 문제들은 성과가 없는게 아니라,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조금 더 진보한 것 같고 단체가 (사회의) 작은 문제를 풀어낸 것 같지만, 시민들의 체감은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정과 결과가 밖으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시민들이 인지할 수 없다면 성과를 지속적으로 쌓기 어렵다"며 “성과 위에 또 다른 성과를 얹어야 변화와 발전이 이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계속 맨땅에서 시작하는 셈”이라고 아쉬워했다.

비영리단체 자체에게도 문제가 된다. 정 센터장은 “적은 월급을 받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몰라 현장을 떠나는 직원들이 있다”며 “더 심한 경우는 조직 전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사진=정재훈 기자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사진=정재훈 기자

7일,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 대강당 ‘품다’에서는 이런 아쉬움들을 극복해보고자 빅데이터를 주제로 이슈페이퍼 설명회, ‘빅데이터로 바라본 비영리단체의 임팩트’가 열렸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비영리단체의 사회적 성과를 측정한 사례를 공유하며 성과 측정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이날 이슈페이퍼는 호주제 폐지운동과 사육곰 구출운동의 성과를 빅데이터로 분석했다. 정유진 트리플라잇 공동대표와 이은창 트리플라잇 PM(프로젝트 매니저)이 나와 이슈페이퍼 분석결과를 설명했으며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과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 등이 나와 빅데이터 너머의 뒷이야기들을 전했다.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여성단체의 활약과 민법 개정 시기가 맞물린다

이은창 트리플라잇 PM은 호주제 폐지 운동과 사육곰 구출 운동 성과를 빅데이터로 분석했다/사진=정재훈 기자
이은창 트리플라잇 PM은 호주제 폐지 운동과 사육곰 구출 운동 성과를 빅데이터로 분석했다/사진=정재훈 기자

이은창 PM은 성과측정 과정에서 ‘임팩트 정의’에 특히 많은 공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측정하고자 하는 임팩트를 먼저 제대로 정의해야 제대로 된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PM은 “임팩트를 정의하고 그것을 측정한 후 이를 토대로 다시 정의하고 측정하는, 이런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의 경우 애드보커시(권리옹호 및 정책에 대한 비판적 활동) 측면에서 임팩트를 정의 했다. 민법 개정 과정에서 시민사회 단체가 끼진 영향력을 임팩트로 정의하고 이를 측정한 것이다. 법을 개정하는 데 여성단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빅데이터로 살펴봤다는 것. 이를 위해 여성단체들의 활동 내역 전반, 국회의 입법 활동 내역, 그리고 뉴스 데이터와 SNS데이터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여성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 이후 호주제 폐지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슈화 된 것을 보여주는 빅데티어 자료/출처=서울시NPO지원센터
여성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 이후 호주제 폐지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슈화 된 것을 보여주는 빅데티어 자료/출처=서울시NPO지원센터

분석결과 뉴스에서 여성단체의 활동량을 언급하는 시기와 호주제 폐지 이슈화 시기가 겹친다. 이은창 PM은 뉴스 보도량과 여성단체 활동 사이의 상관관계가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 PM은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이벤트가 일어났던 주변 7일에는 보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유독 이벤트가 있었던 날 보도량이 많은 사례들이 발견된다”며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날마다 여성 단체의 활동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가 참여하면서 해당 이슈가 더욱 빨리 제도권에 의제화로 등장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PM은 “7~8년간 뉴스 데이터를 보면 호주제 폐지 관련된 뉴스 데이터가 97건밖에 안 되는데 이 여성 연합 단체에서 호주제 폐지 운동 본부를 발족하자마자 단일 년도에만 74건의 뉴스가 보도됐다”며 “해당 뉴스 보도량이 민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올라가는데, 이는 평균적으로 매년 24%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개의 보도가 나가면 그중 1개는 여성단체와 연관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사육곰 실패를 고발하고 대중들의 인식개선에 나선 비영리단체들/출처=서울시NPO지원센터
SNS를 통해 사육곰 실패를 고발하고 대중들의 인식개선에 나선 비영리단체들/출처=서울시NPO지원센터

사육곰 구출운동의 성과도 빅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었다. 이 PM은 촉발기제(Trigger)이론을 가지고 환경·동물단체가 시민들의 인식개선에 끼친 영향력을 빅데이터로 분석했다. 촉발기제란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특별한 이벤트(시점)를 활용해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PM은 경기도 용인시 소재 농장서 반달곰 2마리가 탈출했던 2021년 7월 보도시점을 촉발기제 시점으로 지목했다. 뉴스 데이터와 SNS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환경·동물단체들은 이 시기에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배포해 시민들로 하여금 사육곰 실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회로 삼았다.

빅데이터가 담지 못하는 지난한 과정과 노력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왼쪽부텉 정유진 트리플라잇 공동대표, 이은창 트리플라잇 PM,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사진=정재훈 기자
왼쪽부텉 정유진 트리플라잇 공동대표, 이은창 트리플라잇 PM,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사진=정재훈 기자

빅데이터로 성과측정을 공유하는 자리였지만, 비영리단체의 사업 특성상 그 이면에 있는 노력의 중요성도 여전히 강조됐다. 이은창 PM은 빅데이터는 임팩트를 측정하는 여러 방법론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제가 이 프로젝트 하면서 이제 팀장님과 센터장님께 빅데이터만으로는 절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며 “오늘 발표는 빅데이터가 임팩트를 정의하고 측정하는 과정에서 보조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영숙 국제연대센터장은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을 회상하며 “법안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다양한 단체와 협상하고 연대하고 그 과정에서 내적갈등을 만난다”며 빅데이터 이면의 노력이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왼쪽부터 박은정 녹색연합 팀장,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팀장,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사진=정재훈 기자
왼쪽부터 박은정 녹색연합 팀장,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팀장,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사진=정재훈 기자

정진아 팀장은 “희생당하는 동물의 종과 수를 줄이는 것도 목표이긴 하지만 개별적인 각 동물의 삶의 질도 중요하다”며 “하지만 동물들한테 지금 삶이 어떤 지에 대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좀 어떻게 측정해야 되는지 항상 좀 고민이 있다. 그래서 빅데이터 분석을 하더라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좀 해소가 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이슈페이퍼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서울시NPO지원센터 홈페이지 <공익신터 아카이브>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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