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의미를 담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활동가’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다. 이로운넷 광주·전남 주재기자가 이 지역 활동가들의 생생한 현장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달에는 전남 함평군 손불면에서 돌봄과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정소영 활동가를 만났다.

인터뷰 중인 정소영 센터장
인터뷰 중인 정소영 센터장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정소영씨. 그녀가 있는 곳은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양재리다. 함평읍에서 20여 분은 더 들어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하늘이 열리고 들이 열린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2016년 이곳에 터를 잡게 했다. 2004년부터 아이들과 함께 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상상력을 현실과 매치시키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의 대학 전공은 건축학이다. 대학원에서는 신학을 공부했다.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일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가슴이 뛴다는 그녀가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는 “고향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센터 인근 이팝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모습/사진=센터 제공
센터 인근 이팝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모습/사진=센터 제공

고향 아이들 교육 사명처럼 다가와

손불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이곳 고향에서 마쳤던 그녀가 대학을 서울로 갔을 때  느낌은 충격적이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공부는 물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시골에서 자란 저에게는 그것들이 높이 보였습니다. 보통의 사람에게 일상이었던 일이 저에게는 그 어떤 이상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문화를 접하고 경험할 기회가 적다는 것을 인지한 그녀는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동안, 주말이면 고향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방학 때는 아이들과 ‘도시 여행’을 다녔다. 

“문화적 혜택과 경험의 기회는 누구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고 도전할 수 있는 일인데, 우리는 돈이 많아야 할 수 있고, 공부를 잘 해야된다는 것에만 너무 매몰돼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여기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이들이 문화적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시골에 살지만, 아이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환경만 바뀔 뿐 아무렇지 않게 도전하고,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그 부분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것이 사명처럼 다가왔지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린 개별 작품을 모두 모으니 하나의 완성된 큰 그림이 되었다./사진=센터 제공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린 개별 작품을 모두 모으니 하나의 완성된 큰 그림이 되었다./사진=센터 제공

자연은 건강한 성장 돕는 상담실

현재 그녀가 운영하는 ‘꿈이룸지역아동센터’에서는 보호, 교육, 문화, 정서지원, 지역자원연계 등 5개 영역에서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돕고 있다.

"아이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이 지역에 사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들과 함께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센터에 온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년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안에서 가족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지요. 다양한 연령이 함께하고 있기에 선후배와 또래의 질서를 배우는 등 센터에서의 생활을 통해 미리 ‘작은 사회’를 경험합니다."

그녀는 자원이 적은 지역에서 "가족공동체만큼 큰 자산은 없다"고 한다. 특히 어릴 때 자연과 함께 한 추억은 인생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교육에는 늘 자연이 함께 한다.

“혹여 아이들 간에 사소한 다툼이라도 생길라치면 낙조로 물들인 바닷가 백사장으로 데리고 가 한판 뛰어놀게 합니다. 그러면 언제 다퉜냐입니다. 또 손잡고 들판을 한바퀴만 돌아도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뒹굴다 보면 금방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오지요. 그래서 저는 ‘자연이 상담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하는 훈육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잔소리에 불과하거든요.”

논과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센터로 향하는 아이들 모습/사진=센터 제공
논과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센터로 향하는 아이들 모습/사진=센터 제공

어른교육공동체 통한 탄탄한 울타리 형성

현재 그녀는 지역의 탄탄한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 부모 중심으로 어른교육공동체를 형성했다. 15명 정도의 학부모들로 구성된 어른교육공동체는 학부모들이 역량강화를 통해 강사로 나서는 활동을 하는 공동체다. 정센터장은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나오면 줄게 많다’는 것을 세상에 나가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필리핀, 인도 등으로 목회실습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게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나오면 뭔가를 줄 수 있을 만큼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서 제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부모강사를 양성하는 겁니다. 마침 함평 교육청에서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학부모들이 역량강화하기에 딱 좋습니다.” 

강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시골마을이다 보니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아이들의 부모만큼 좋은 강사는 없다. 마을의 이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같이 공부하면서 마을의 공동체를 이어가고자 독려하는 것이 요즘 그녀가 의미 있게 하는 일 중 하나다. 

“제가 결혼해 와서 보니 대체로 이곳에 사는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초등학교만 보내고 학업을 위해서는 광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동네에서 같이 살고는 있지만,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 이웃이 못 되는 현실이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들의 경제적인 자립도도 낮았습니다. 그때부터 ‘도시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가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그녀의 노력 덕분인지 20년 전부터 폐교 위기에 놓였던 손불서초등학교는 아직까지 건재하단다. 
“손불초등학교는 동초등학교와 남초등학교를 흡수했어도 규모가 서초등학교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마을 주민들이 이탈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입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지요.” 

센터에는 흙으로 빚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흙 만지는 활동을 통해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센터에는 흙으로 빚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흙 만지는 활동을 통해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지속가능한 교육은 바로 선 돌봄에서부터 시작

20여 년을 한결같이 지역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단다. 

“교육이 지속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결국은 돌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돌봄이 잘 돼야 교육이 지속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원래는 돌봄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가정에만 의지하면 부모의 소득, 교육, 문화 수준이 어떠냐에 따라서 영향을 받더라구요. 돌봄 기관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학교적응력, 사회적응력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인구유입과 더불어 이탈을 막으려면 교육과 돌봄이 바로 서야 합니다.” 

늘 그래왔듯 그녀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희망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뿐이다. 

“우리를 둘러싼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주변 조건에 휘둘리기 쉬운 세상이지만 아이들이 여기 있는 동안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체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이 좋으니까 내가 살기 좋고 내가 좋으니까 마을이 좋아지더라!’ 했던 우리 마을의 어느 어르신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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