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이사
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이사

“산불이 나고 이틀째, 밤이 깊고 날이 추워졌어요. 손난로와 따뜻한 음료를 사서 소방대원분들께 나눴어요. 난로를 대여하기엔 상황이 급했죠. 일단 주변 주유소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등유난로 대여를 문의했어요. 마을에 소문이 났는지, 전기난로, 히터, 온풍기 등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들이 저녁 10시 11시에 하나 둘 소방본부 근처로 전달됐습니다.”

3월 4일, 울진 산불이 발생했다. 에이팟코리아는 5일 새벽 울진으로 이동해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했다. 긴급구호는 재난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빠르게 처리한다. 이재민만 대상이 아니다. 공무원, 소방대원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지역의원, 공공, 언론, 기업 등을 엮어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이 이사는 “주민들이 난로를 전달한 후 핸드폰 번호가 알려져 기부 문의도 오고 원전 주차장으로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퍼져 해당 장소에서 후원하는 게 문화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불이 발생하자 울진군의 대응 본부를 비롯해 전국의 소방차, 헬기 진화대 등이 모이기 시작했다. 보통 산불은 길어야 4일~5일 정도면 진화된다. 하지만 울진 산불은 9일 만에 진화됐다. 그래서 소방관과 의용소방대들이 겪는 어려움도 컸다. 화재진압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용소방대원들은 지쳐갔다. 외에도 준비해 온 식량이나 속옷 등이 떨어져 개인 사비로 처리하는 사람도 늘었다. 산불이 계속 되며 매캐한 연기가 났지만 방진마스크도 사비로 구비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이 이사는 “하루가 지나니 새벽에 전달한 컵라면이 다 떨어져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류 500만원 어치를 다시 한 번 제공하고 편의점처럼 필요한 물건을 가져갈 수 있도록 셋팅했다”며 “손난로와 따듯한 음료를 비롯해 방진마스크 등 진화에 필요한 제품을 구입해 제공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민들에게 난로를 빌린 후, 야외전기 히터를 지원했다. 시민들이 빌려준 전기난로. 대원들에게 전달한 컵라면.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민들에게 난로를 빌린 후, 야외전기 히터를 지원했다. 시민들이 빌려준 전기난로. 대원들에게 전달한 컵라면. 

재난상황 대응이 좀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에이팟코리아는 고성 산불, 구례 홍수를 비롯해 해외의 재난상황에서 긴급구호와 복구, 재난 후 지역재생 등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이재민, 지자체·소방관·경찰 등 공공, 언론 등이 필요하거나 대처해야 하는 것들이 비교적 빨리 보이죠. 현장에서 상황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저희가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국내의 경우 재난대응의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아 간과하는 부분이 많다. 재난 현장에는 전국에서 지원인력이 몰린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의 상황을 빠르게 체크할 수 있고 취재진 응대를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상황판, 필요한 핵심 물건들의 상황을 기록한 물자 상황 기록 등이 필수다. 이웃이나 가족의 생사, 재산의 피해 등등 가짜뉴스 등으로 이재민들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재민들을 위한 일일 브리핑의 필요를 설명하고 진행을 돕기도 한다. 이 이사는 “외에도 재난 기간이 길어지면 인원들이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상황이 정리되지 않을 때 팀을 나눠 휴식을 취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에이팟코리아가 빠르게 현장 지원을 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긴급구호’를 진행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재난상황에서는 다양한 지원 단체들이 모금을 개설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한다. 이 이사는 “대부분 기부자들은 기부한 금액이 바로 재난 현장에 쓰인다고 생각하지만 단체의 프로세스에 따라 모금액이 몇 달 뒤 쓰이는 경우도 많다”며 “재난 직후 72시간은 필요한 것들이 빠르게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긴급구호에 대한 인식이 저조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라며 긴급구호 개념 정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이사/출처=에이팟코리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이사/출처=에이팟코리아

재난이 끝나도 이재민들에겐 또 다른 회복이 필요해

“초반 긴급상황에서는 이재민을 비롯한 모두가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필요한 것을 빠르게 전달 드리는 게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이후에 진행되는 일상회복지원은 달라야 합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접시 하나 이불 하나를 드리더라도 품질이 좋은 것 또는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것으로 드려야 해요.”

이동환 이사와 에이팟코리아는 3월 산불 이후 긴급구호를 비롯해 일상회복지원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울진을 방문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재민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마을의 세부적인 사항을 확인한다. 보상 기준으로 마을 구성원 간 갈등이 있는 곳, 전체 마을이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받은 곳, 거주지 피해를 입지 않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곳 등 상황을 파악해 필요한 물품과 심리지원을 진행한다. 단순한 지원으로 재난의 피해가 복구되지 않는다. 필요를 고려하지 않거나 이재민들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지원은 오히려 이들에게 심리적인 상처를 주기도 한다. 

“어르신들 혹시 불편하신 거나 필요하신 것 없으셔요? ”

“내는 저번에 준 것 중에 신발을 몬받았어. 별 거 아니라 말할까 말까 했는데, 사람들 다 받았는데 내는 안오니 서운하데요. 남편 문수(文數)는 260인데 크게 신고, 내 문수는 245라. 내는 옥분씨다. 까먹으면 안된다~”

다시봄 프로젝트 후 동네 어르신들과 기념촬영을 진행하는 에이팟코리아 직원들과 봉사자들
다시봄 프로젝트 후 동네 어르신들과 기념촬영을 진행하는 에이팟코리아 직원들과 봉사자들

구호품 배분은 이장의 당연한 역할로 인지되지만, 무거운 구호품을 나눌 때는 마을 이장님들에게 인건비를 책정하기도 했다. 또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들을 세세하게 체크한다. 이 과정에서 효자손 같이 작고 소소하지만 필요하거나 빠뜨렸던 물건 등이 전달된다.

또 외에도 배분이나 일상회복지원을 진행하며 해당 일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특정 피해를 구분해 지원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모일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이장의 역할 수행에 대한 설명을 빼놓지 않고 설명하고 마을 사람들이 짧은 시간이더라도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한다. 이 이사는 “사실 이장님들도 같은 피해를 겪은 이재민이지만 물품 배분이나 마을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그런 부분에서 이장님 자신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이장님이 어떤 노고를 하고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지역주민, 소방공무원 등을 비롯해 재난에선 모두가 피해자에요. 공공은 공공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민간은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곳들을 메꿔야죠. 서로 협업이 필요해요. 재난이 닥치면 늦어요. 보편적인 재난 대응 프로세스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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