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와 멤버십카드들은 결제 금액이나  자사가 정한 등급에 따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나 각종 우대 혜택이 주어진다. / 사진=백선기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Tenet)'을 봤다. 결제는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와 신용카드로 했다. 영화 예매를 할 때마다 난 통신사 포인트를 의무감을 갖고 쓴다. 셋이 봤는데 결제한 금액은 총 1만 6000원. 영화 한 편을 5500원에 본 셈이다. 참 좋다.

하지만 이 혜택을 받기 위해 나를 포함해 내 가족이 포기해야만 했던 선택지는 많았다. 먼저 관람시간이다. 영화 한 편당 할인 전 금액이 9000원을 초과해야 하기 때문에 조조는 안 된다. 모든 영화가 무료 관람 대상인 것도 아니다. 이 혜택은 월 통합 1회라서 쓰고 나면 그 달에는 상시 할인 서비스를 제외한 다른 제휴처 서비스를 이용할 때 포인트 결제를 할 수 없다.

어떤 제휴사의 경우에는 최소 결제금액이 정해져 있어 맘먹고 지갑을 열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간단히 말하면 겉은 화려하지만 속빈 강정이란 뜻이다.

그래도 난 소비를 할 때 마다 여러 장의 멤버십 카드와 신용카드 중에서 머뭇거림 없이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를 제일 먼저 꺼내든다. 심지어 할인 폭이 낮아도 이를 선택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다른 포인트는 유효기간이 길어 나중에 써도 되는데 이동 통신사 포인트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연내 소진을 고집한다. 그래서 미처 사용하지 못한 포인트는 새해가 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해마다 ‘기필코 다 쓰리라’ 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새해를 시작하지만 백전백패다. 아직 한 번도 다 써본 경험이 없다. 장기 우수 고객이라면서 문자로 연신 혜택들이 날아오지만 내겐 다 소용없는 것들이다.

코로나19탓도 있지만 가족 결합 형태로 묶인 남편과 나 그리고 큰아들 셋의 잔여 포인트는 한 해가 넉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총 20만 포인트가 넘는다. 사람마다 라이프 스타일이 다른 만큼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2017년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이통사 멤버십 포인트 중 59%는 사용되지 않고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개선사항으로 52.3%가 포인트로 통신비 결제를 희망했고, 포인트 결제 비율 확대 (19.3%),  사용처 확대 (10.2%) 순으로 조사됐다.

통신사 포인트는 왜 꼭 연단위로 소멸돼야 하는 걸까. 항공사, 신용카드사, 서점, 영화관, 카페, 대형마트 등 대부분의 멤버십 포인트나 마일리지 등이 수년간 유효기간이 존속되는 데 말이다. 의문이 들지만 기업 사정상 꼭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때 잔여 포인트만큼 통신요금을 공제해 줄 순 없는지 묻고 싶다.

이것도 곤란하다면 포인트에 상응하는 금액이 자동으로 기부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난 상상해본다. 내가 기부한 포인트가 디지털 시대에 소외된 고령층들의 교육에 쓰여 젊은이들의 도움 없이도 혹은 주눅 들지 않고 척척 무인 주문기 앞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은 내 포인트가 디지털 교육에 소외된 도서산간지역의 아동들이나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도 초 연결 시대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연기처럼 사라질 운명에 처한 내 포인트가 통신사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기부라는 형태로 보다 슬기롭게 쓰였으면 좋겠다.

9월 1일이 되자마자 난 휴대폰을 켜고 패밀리 박스에 들어가 습관처럼 매달 통신사가 선물해 주는 3000포인트를 쓸어 담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 담으면 뭐해? 어차피 통신사에게 반납하게 될 걸. 공연히 내 손가락 노동만 한 건 아닌지..'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가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5%로 18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세계 1위 스마트폰 보유국답게 고객에 대한 서비스도 좀 스마트해질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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