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햄버거 매장에 들어선 키오스크(무인주문기). 롯데리아(64%)·맥도널드 (61%)·버거킹(60%)의 매장에 키오스크가 도입됐고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6년 만에 스마트폰을 바꿨다. 스마트폰 상담은 아들이 대신해 줬다. 곁에 있어봤자 뭔 소린지 도통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에 호구 고객이 되기 싫어서다. 지난 20년간 휴대폰을 바꾸거나 이른바 디지털 기기를 구입할 때마다 난 점원으로부터 똑같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어머니, 집에 자녀 있으시죠?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갑자기 미성년자인 애들이 나의 보호자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변한 건 없었다.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 엄마가 예전 휴대폰 사용할 때와 똑같은 상태로 만들어줘.”

 

내가 한 일은 아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딱딱하게 굳어가는 뇌와 낡은 수첩을 번갈아가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 밖에 없다. 때론 그마저도 실패해 공인인증서나 휴대폰 인증을 통해 아이디와 비번을 검색하고 다시 재 설정해야 했다. 

구매한지 약 한 달이 돼가는 지금 하나씩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사용법을 익히고 때론 영상을 보고서도 이해가 안 돼 아이들에게 묻는다.

“어머 이런 기술이 있었어? 정말 좋은 세상이네...”

 

맞다. 우린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어린 시절 SF 영화 속에서나 등장했던 일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의 발전 속도가 눈부실수록 소외의 그늘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과거의 기술들이 특정 분야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끼쳤다면 지금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모르면 같은 물건을 남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하고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어찌 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편리함이 누구에게는 불편함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몇 해 전 동네 병원 의사 덕분에 난 전자 혈압계를 공짜로 얻었다. 물론 내가 수고한 일도 조금은 있다.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 건강보험관리공단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 내 혈압 측정치를 기록하는 일이다. 365일 중 최소 수십 번만 기록하면 1년 후 혈압계가 내 것이 되는 조건이었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병원을 찾는 나에게 이런 기회가 다 오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병원 진료실 한 쪽 구석엔 전자혈압계가 수 십개 쌓여있었다. 알고 보니 많은 고혈압 환자들이 공인인증서가 없거나 만들 줄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것조차 만들 줄 모르는 노인 환자분들이 많아요. 다른 방법으로 인증하면 될 텐데... 왜 그 방법만을 고집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만성질환자들을 잘 관리해 보험료 지출을 줄여보겠다는 좋은 취지는 엉뚱한 곳에서 장벽을 만나 그렇게 녹슬어가고 있었다. 

디지털 격차가 빚어낸 소외의 풍경은 곳곳에 있다. 무인기계 앞에서 주문이나 결제를 하지 못해 쩔쩔매다 점점 내 뒤로 줄이 길어지는 걸 보고 황망해 했던 경험이 있다. 엄청난 파격 할인도 스마트폰 앱에서만 가능한 것이 부지기수다. 스마트 기기에 어두운 노인들은 코레일 열차표를 구매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라도 현장에 나와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65세 이상 고령자는 14.9%로 세계 45위를 차지했다. 작년보다 5단계 상승한 수치다. 2025년에는 20.3%, 2067년에는 46.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인구의 약 절반이 노인화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공공기관을 동원해 빈 강의실 불 끄기(1234명), 전통시장 화재 점검(800명), 어촌 그물 수거(750명) 등 초단기 일자리 5만여 개를 만드는데 1200억 원가량의 예산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차라리 이 예산을 노인들이나 부실한 첫 단추로 점점 격차가 벌어질 위험에 처한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청년들을 1 대 1로 연결해주는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 사업에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실질적 고용 창출은 물론 전 국민의 디지털 저변 확산에 큰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난 오늘도 아들을 몇 번씩 부른다.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손댄 적이 없거든? 그런데 이게 갑자기 작동이 안 돼..”
“에이 그럴 리가.... 이거 봐요. 엄마가 이렇게 해놨잖아요.”

 

점점 똑똑해지는 디지털 기기는 내가 한 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이젠 어설픈 해명도 통하지 않는다. 글을 모르는 것만이 문맹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기기를 이해하고 사용할 줄 모른다는 건 문맹과 다를 바 없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술이 주는 편리함과 온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제조사와 통신사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범국민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제공하는 데이터로 쑥쑥 성장해가는 기업과 국가에게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요청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