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영 벗밭 대표
백가영 벗밭 대표

“환경을 생각한다고 하면 ‘그럼 너 채식하겠네?’라는 답이 돌아와요. 사실 채식 말고도 환경을 생각하는 식생활은 많아요. 자연농이 생산한 작물을 소비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어요. 지금도 조금은 생경한 개념인데요. 제초하지 않고,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요. 또 탄소가 발생된다고 지적받는 경운(耕耘, 논밭을 갈고 김을 맴)도요.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환경을 생각하거나 건강한 식문화를 지향하는 사람을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인의 지향점을 식문화로 실현해 나가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다만 아직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을 뿐이다. 벗밭은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2030과 함께 식문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올 한 해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지속가능한 먹거리와 저탄소 식문화를 제안하고 함께 실천하고 있다. 백가영 벗밭 대표는 “활동을 하면서 ‘실천해보자’보다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더 먼저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건강한 식문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벗밭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백 대표를 포함한 총 4인으로 구성돼 있다. 대안학교 교사로 창의적인 교육 방식을 제안하는 기현, 사진과 영상을 담당하며 벗밭의 홍보를 비롯 기록을 통해 회고를 담당하는 소문난맛집(닉네임) 한솔, 영양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 내 몸의 건강과 영양 정보 제공을 담당하는 지민이 함께한다. 백 대표는 “처음부터 자연농이나 환경친화적 먹거리를 위한 활동을 해보자고 모이진 않았는데 벗밭에 참여해 활동하면서 모두가 성장했다”며 “건강한 식문화 속에 포함된 것들이 정말 중요하고 좋다는 것,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변화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까지 벗밭이 진행한 전시 '비슷한 들에서 같이 자라는 풀' 포스터
지난 5일까지 벗밭이 진행한 전시 '비슷한 들에서 같이 자라는 풀' 포스터

교내 파머스마켓에서 시작된 건강한 식문화 탐방 

“해외에서 학교 내에서 파머스마켓을 여는 걸 봤어요. 본인이 직접 농사 지은 농산물만 팔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먹는 것의 출처를 알아가면서 고민하고, 그를 바탕으로 다시 식탁을 꾸리는 게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파머스마켓을 시작했어요.”

벗밭은 2019년 진행한 대학 내 파머스마켓에서 시작됐다. 건강한 식문화에 관심있는 동료들을 모아 마켓을 진행하며 ’파머스마켓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원하는 식문화는 무엇일까’ 와 같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끼니만족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가장 마지막 질문인 ‘당신이 바라는 식사는 무엇인가요’에 건강부터 맛까지 다양한 답이 이어졌다. 백 대표는 “저마다 생각하는 건강함의 모양은 다르지만 다들 건강함 자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 설문 이후로 돈과 시간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건강하고 신선한 식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설문결과를 반영해 1인가구 청년들이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형태와 가격으로 파머스마켓을 열었다. 1인가구 청년들에게 사과 한 봉지는 일주일 내내 사과만 먹어야하는 양이다. 그래서 생협과 함께 사과 한 알, 복숭아 하나 같은 유기농 식품 구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절반은 벗밭이 절반은 구매자가 가격을 부담했다. 개인의 생활 속 예산에서 건강한 식문화에 기꺼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의지는 필요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나누는 것을 지양하고 해당 방식을 선택했다. 백 대표는 “한살림과 함께 청년들을 위한 식품꾸러미를 제작해 판매했다”며 “작년까지 1년에 한 번 씩 3회의 마켓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전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SNS와 뉴스레터 등으로 이야기를 지속해 나갔다. 온라인 모임으로 밥을 챙겨먹는 모임 등 오프라인 소셜다이닝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시도해보기도 했다. 백 대표는 “하나의 방식만이 꼭 건강한 식생활인 건 아니다”라며 “하나의 방식만 강요하기엔 청년 개개인의 삶이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건강한 식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럼 유기농 제품 먹으라’고 말하는데 유기농을 먹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되는 청년은 많지 않았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건강한 식사를 위한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벗밭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식문화 프로그램/출처=벗밭 홈페이지
벗밭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식문화 프로그램/출처=벗밭 홈페이지

건강한 식문화서 소외되는 2030...체험 기반의 맞춤형 프로그램 진행

“청년이라고 불리는 2030은 건강한 식문화에 가까워지기 쉬운 환경은 아니에요.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말도 있 듯 아직 건강하니까요. 보통 아동이나 고령자나 임신부가 주 대상이 되기 쉬워요. 왜 우리는 아프고 난 다음 식사에 대해 고민해야 할까요. 몸도 환경도 더 이상 아파지기 전에 식생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벗밭은 건강한 식문화를 전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활동을 비롯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네트워킹 프로그램, 커뮤니티 매니저 양성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먹방과 소식 사이 극단의 식문화 트렌드 속, 벗밭은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기발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은 ▲나의 1인분 찾기 ▲음식지도 그리기 ▲식탁너머 워크숍(소셜다이닝+농가일손돕기) ▲즉흥과일클럽 ▲아침사과모임 등을 진행한다. 

나의 1인분 찾기 수업은 사과, 귤 등의 과일을 한 조각씩 천천히 먹어보면서 나의 정량을 찾는다.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충분함을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충분함을 알면 나의 식습관을 계획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작이 된다. 또한 즉흥과일클럽은 과일만 먹고 헤어진다. 너무 많은 양, 귀찮음, 제철과일이 뭔지 모르는 등의 이유로 과일을 자주 먹기 힘든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커뮤니티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커뮤니티 매니저를 양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4명의 커뮤니티 매니저가 탄생했고 이들이 벗밭 안에서 행사를 열 수 있는 제안을 함께 활발히 이어갈 예정이다.

백 대표는 “일반적으로 교육이라고 하면 ‘지식충전’을 떠올리지만 팀원들과 함께 커리큘럼을 기획하면서 함께 감각하는 것만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같이 먹어보고 체험하는 경험들이 사람들의 삶에 깊게 각인되기 때문에 지식 중심보다 경험할 수 있는 커리큘럼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역의 농부님들께 넘겨받은 건강한 농산물로 서울에서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요. 이어 달리기처럼요. 벗밭도 커뮤니티 행사나 멤버십을 통해 청년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최종적으로는 함께하는 분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확산할 수 있는 벗밭의 벗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0월의 즉흥과일클럽이 진행되는 모습/출처=벗밭 홈페이지
10월의 즉흥과일클럽이 진행되는 모습/출처=벗밭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밭의 벗을 만들자

“작년 즈음엔 ‘그만둬야 하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3년간 활동을 이어오면서 내부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리워드를 주지도 못했고 시간도 돈도 부족한 2030을 대상으로 건강한 식생활의 선택지를 넓혀간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거든요.”

3년 간 활동을 이어오며 힘들고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올해는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주식회사 형태로 벗밭을 운영 중이다. 벗밭이 지향하는 1인분은 100%의 꽉 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준에 흔들리면서 너무 많이 절망하지 않고 또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으면서 활동을 할 수 있다. 또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돈이 되지 않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절망하지 않고 이를 보완키 위해 교육 등으로 지속가능함을 위한 방안을 고안하기도 한다.

또 힘듦을 이겨내게 해주는 짜릿함 중 하나는 매월, 매 절기를 지날 때 마다 농부들이 보내오는 제철 먹거리가 찾아오는 순간이다. 건강한 식문화의 기반이 되는 지역농부들과의 만남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즐거운 이벤트다. 백 대표는 “내가 봤던 밭에서 온 작물을 받으면 풍성함과 특별함이 배가 된다”며 “이는 단순한 작물을 넘어서 이야기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속가능한 식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농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도 이 부분에 있다”며 “매 계절마다 새롭게 나오는 건강한 작물들을 알아간다는 것은 늘 새롭고 짜릿하기 때문에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의 벗밭 프로그램은 사람들과 좀 더 오래, 더 깊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꾸러미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묶어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기도 하다. 또 내년의 가장 큰 목표는 멤버십 구축이다. 멤버십 서비스를 기획해 분기별로 건강한 농산물을 직접 먹어보고 식경험을 넓혀갈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할 예정이다. 

“올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후회되지 않을 만큼 해보고 내년엔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 나가야죠. 개인의 일상 한복판에 건강함과 제철이 들어오면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너무 궁금해요. 농부님들이 수확한 건강한 나주배나 제주의 귤이 가로수 길에 있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과일트럭 같은 방식이 탄소발자국이나 불필요한 포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도 같아요. ”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