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청년주택 27만 가구 공급, ‘안암생활’과 같은 용도변경형 리모델링 사회주택 5000호 공급, 매입약정형 사회주택 3000호 공급, 서울시 사회주택 2500호 공급, 맞춤형 전·월세 대출 등을 통한 43만 청년 가구의 주거비 부담 완화, 서울시 청년 5000명 월세 지원, 주거상향을 통한 청년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거주 비율 10% 감축…‘

정부와 서울시에서 2021년에 약속한 주거 정책이다.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덕분에 은행 대출금을 드디어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던 이태원 자영업자 친구는 결국 가게의 문을 닫았고, 주택 전세금을 빚을 상환 하는 데 활용하면서, 돌아갈 집을 잃었다. 이 와중에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월세 보증금과 임대료도 요동쳤다. 임대주택 월세 미납자는 급증했고, ’지옥고‘라고 불리는 비적정 주거 형태로 거주하는 청년의 비율이 다시 올라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동굴 같은 현실에서, 2021년도 계획을 세우며 발표한 주거 정책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봄날의 단비와 같았다.

그런데 시계가 벌써 여름을 가리키고 있으나, 정책 집행은 처음 약속과는 달리 제때 발을 구르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설계 도면을 펼치며 시작했어야 하는, ’용도변경형 리모델링 사회주택‘ 사업은 아직 심사 결과 발표조차 나지 않았다. LH 직원의 투기 문제 때문인지, 3기 신도시에 어떻게 공공성을 많이 담을지는 이야기조차 되고 있지 못하다. 집이라는 것을 뚝딱 지을 수는 없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는 있다. 수험생이 시험이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버티듯이, 기약이라도 있으면 지금의 상황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언제‘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예산도 편성되어 있고 계획도 구체화 되어 있는데 추진이 이렇게까지 미뤄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정치와 사람 때문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정책을 약속했던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의 수장은 지금 그 자리에 없다. 4월에 서울시장이 바뀌었고, 5월에 국토부 장관이 새로 취임할 예정이다. 선출직 정치인이 달라지면 이전의 정책이 폐기되거나 축소되는 일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2021년의 정치 변화가 주거 정책에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애를 태우게끔 만든다.

지난해 말 서울 안암동에서 문을 연 청년 사회주택 '안암생활.'
지난해 말 서울 안암동에서 문을 연 청년 사회주택 '안암생활.'

’안암생활‘이 사회적 관심을 받아서인지, 올해에도 비슷한 주택이 더 공급되는지 물어보는 청년 세입자들이 주변에 참 많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들로부터 신규 주택 공급이 있는지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문의가 늘었다고만 보아서는 안 된다. IMF 때에도 처음에는 일자리의 문제가 가시적으로 들어오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집의 문제가 몰아쳤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의 위협이 작년에는 청년들의 일자리에서 터졌지만, 이제는 주거 문제로 밀려오고 있음이 너무나 체감된다. 임대주택이 있어야 하는 세입자들의 매서운 바람, 현장의 온도를 행정에서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진영과 사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 코로나 상황까지 겹친 오늘의 상황에서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의 공급은 시민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선이다. 행정의 대표자에게 권력을 위임한 시민들의 절실한 바람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진보든 보수든, 주택 정책에 대한 철학이 어떻든, 시민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은 선출된 정치인의 의무이다. 물론 한국의 수직적 관료 시스템과 문화의 특성상, 새로운 총괄 책임자에게 승인을 받고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보고와 승인의 절차 때문에 사업계획이 약간 미뤄지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다.

새로운 시장의 주택 쪽 주요 공약이 재개발과 재건축일지라도, 임대주택 정책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새로운 대선 국면이 찾아올지라도, 국민을 위한 주택은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2021년은 1/3만이 지나갔을 뿐이고, 아직 남은 시간은 많다. 코로나로 인해 국민이 모두 시린 겨울을 보냈다. 그 겨울을 함께 넘기며 내걸었던 소중한 약속이 변죽만 울리고 끝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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