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때려 박아 서현동을 난민촌으로 만들 거냐?"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현수막의 문장이다. 분당구 서현역 한복판에 버젓이 걸려있다. 임대주택을 둘러싼 혐오 표현을 열거하자면 책을 한 권 써도 부족하다. 과거에는 지역의 소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휴거'(‘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 '엘사'(LH 주택에 사는 사람), ‘빈민아파트’(영등포구 역세권 청년주택 대상) 등의 혐오 표현을 쓰며 반대 여론이 드러났다. 이제는 지역의 구청장, 정치인들까지 합세해 혐오를 조장한다. 서울시 마포구, 용산구, 노원구, 인천시 미추홀구, 경기도 과천시에서는 구청장과 시장이 임대주택 반대 여론을 모으고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을 좌초시키는데 앞장섰다.

우리나라 법에는 그 어디에도 집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해서 3등 시민이라고 인정한 바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월세·전세 폭등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게 한국의 세입자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계약기간 보장 기간이 고작 2년에서 4년으로 늘었다고 연일 언론의 지탄을 받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한다. 동네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견뎌야 한다. 임대주택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자녀가 ‘엘사’니 ‘휴거’니 놀림을 받고 있다. 언론은 매일 같이 아파트 가격 변화를 보도하고, 청년들의 ‘영끌’에 집중하며, 소유의 욕망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온 사회가 집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안과 혐오를 조장하니, 세 들어 사는 사람은 마치 불완전한 존재처럼 인식되고 만다.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집을 소유한 자’와 ‘소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로 나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누구도 감히 집을 소유하지 않고 세 들어 살라고 권할 수가 없다.

그렇게 부동산 소유만을 외치며 달려왔지만, 전 국민의 40%는 세 들어 살고 있다. 지난 20년 간 세입자의 비율은 달라지지 않았다. 보통의 시민이라면 지금처럼 폭등한 부동산 자산을 소득만으로는 구매할 수 없으니 이러한 통계는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정치와 사회가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세입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처럼 집이 아닌 공간에 사는 비적정주거 거주자가 200만명에 육박할 만큼 증가했다. 비닐하우스에 살던 포천의 이주 노동자가 사망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상당수의 시민이 세입자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그런데도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안녕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내가 사회주택 공급과 운영에 힘을 쏟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거주할 수 있음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LH·SH 등 공사 중심의 임대주택 공급 및 운영으로는 소유권 중심의 욕망과 제도, 문화를 상대하기 어렵다. 1989년 공공임대주택이 최초로 공급된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대주택에 대한 지형이 그대로인 것을 보면 한계는 명확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해 민간임대시장을 통제하는 방식도 분명 중요하지만, 4년으로 계약기간이 연장된 것만으로 반발이 극심한 상황에서 판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민간 차원에서도 공공성을 가진 주택, 즉 사회주택을 공급해나가면서 임대시장에서 다양한 대안을 보여야 한다.

임대주택 님비(NIMBY)현상을 반대하는 민달팽이유니온의 집회.

사회주택은 2014년에 서울시에서 처음 공급된 이후, 어느덧 5000호를 바라보고 있다. 사회주택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주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주택까지 포함한다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부담 가능한 월세를 내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으며 입주민 협의체와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에서의 발언권과 정주의식을 확보할 수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세 들어 살아도 된다”는 확신을 옆집에 사는 이웃과 함께 확인하고 있다.

사회주택의 비즈니스 모델과 공익성은 모두 입증됐다. 국회와 정부에서도 사회주택 활성화를 위한 법안과 정책을 준비 중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잘 저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대주택이 당연해지고, 세입자와 소유권자가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역사 속의 폐단으로 기억되는 날을 기다린다. 나와 같은 사회주택 입주자들이 지역의 소유권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는 미래를 그린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