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돌봄이 필요하다. 돌봄은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고 질병과 장애를 겪으며, 노화되는 과정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주고받으며 겪어 나가는 가치다. 돌봄은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중심적 활동이다. 돌봄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며 함께 성장한다. 우리 모두가 돌봄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는 사회가 돌봄사회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돌봄사회로부터 멀어져 있다. 정책에서, 비즈니스에서, 연구개발 활동에서, 사회활동에서 물질적 가치의 뒷전으로 밀려 ‘돌봄가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돌봄을 이야기할 때 누가, 얼마에 할 것인가 어떤 서비스와 제도로 해결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비용을 치르고 공급자가 수혜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거래로 돌봄을 파악하고 있다.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플랫폼으로 ‘리빙랩’을 제안한다. 리빙랩은 공급자와 사용자, 전문가와 생활자, 민산학연관이 수평적으로 협업하는 공간이다. 생활자와 서비스공급자, 전문가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만나 문제를 정의하고 그 해결책을 디자인한다. 삶의 현장에서 그 해결책을 실험해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갑상선암 투병 중이던 직원의 제안으로 개발한 요오드 제한 식단. 감상선암환자를 위해 환자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는 '잇마플'과 제약회사 '한국에자이'가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으로 공동개발했다. 향후 온랩과 함께 확산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출처=잇마플
갑상선암 투병 중이던 직원의 제안으로 개발한 요오드 제한 식단. 감상선암환자를 위해 환자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는 '잇마플'과 제약회사 '한국에자이'가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으로 공동개발했다. 향후 온랩과 함께 확산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출처=잇마플

암경험자를 위한 리빙랩의 예로 ‘온(溫)랩’이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한국에자이를 중심으로 20여 기관이 네트워크를 이룬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온랩에서는 암 경험자와 심리치료사, 가수, 디자이너,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가 모여 활동한다. 이들은 심리치유, 운동, 예술 등의 콘텐츠로 구성된 활동을 통해 암경험자들이 일상과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돌봄사회가 되려면 이렇게 지역사회 안에서 관계와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돌봄 제공자가 돌봄 수혜자에게 일방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또, 사회구성원들이 돌봄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서로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 경제 정책과 사회제도 안에서 돌봄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와 산업을 형성해야 한다. 돌봄과 복지제도의 근본적 전환을 다룬 ‘래디컬 헬프(Radical Help)’의 저자 힐러리 코텀은 “전환은 단순한 변화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 전과는 다른 해결책,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동반되는 특별한 변화”라고 했다.

실험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작은 실패를 미리 하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간다. 이 과정에서 돌봄을 대하는 관점이 바뀌고 법제도적 장벽과 장애요인을 검토하게 된다. 다소 복잡하고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리빙랩은 빠르고, 효과적이고, 실현가능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또 리빙랩에서의 문제해결 과정은 새로운 대안만이 아니라 돌봄혁신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혜자로 혜택을 받아오는 역할로 여겨지던 사용자(생활자)가 중심이 되어 공급자와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사용자 중심으로 민산학연관이 협력해서 신뢰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리빙랩은 혁신 공동체를 형성하고 돌봄 사회를 만들어가는 전환운동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돌봄 시스템인 ‘커뮤니티 케어’를 표방하고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파편화되고 각개약진하는 공급중심적 돌봄 체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고무적인 방향이다. 그런데 지역중심 통합돌봄의 핵심이 되는 현장 ‘공동체(Community)’를 구성하는 전략은 충분히 검토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사업이 행정단위별로 진행된다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는 않기 때문에 이를 위한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

통합돌봄 시스템 정책은 돌봄사회 전환을 지향하는 리빙랩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생활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서비스를 공동개발하고 실험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리빙랩을 만들고 이들을 연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돌봄서비스의 통합은 철저히 생활자의 관점에서, 현장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다양한 유형의 조직과 사람들이 생활자와 문제중심으로 통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정주 나우사회혁신랩 소장(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 부장)
서정주 나우사회혁신랩 소장(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 부장)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