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세계 각국은 시장경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는 걸 자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경제로 뜨는 개념이 ‘사회연대경제’다.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일컫는다. OECD, UN, ILO 등 유수의 국제기구에서는 근 2년간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이렇게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연재한다.

지난 6월 열린 제11차 ILO 총회에서는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에 대한 공식 정의가 채택됐다. 총회는 ILO 회원국(187개국)의 노사정 대표가 연 1회 주요 고용노동 정책을 논의하는 유일한 국제회의다. UN 산하 전문기구가 사회연대경제에 관해 고위급 논의를 거쳐 내놓은 결과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 당시 총회에서는 정의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연대경제 결의안’이라는 결의문도 통과돼 정부의 역할, ILO 사무국의 역할, 그리고 민간 파트너들의 역할 등이 제안됐다.

OECD, ILO, EU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사회연대경제의 주류화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모이는 가운데, 이번 UN 총회에서도 관련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UNTFSSE(United Nations Inter-Agency Task Force on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UN 기구 간 사회연대경제 태스크포스)는 미국 뉴욕에서 회의를 열고 결의안 상정의 필요성을 논했다.

올해 7월 22일 뉴욕, ILO와 UNCTAD가 스페인 정부와 함께 개최한 행사 '잠재적 UN총회 결의안: SDGs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연대경제의 역할(Role of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in achieving the SDGs: Potential General Assembly Resolution)./출처=UNTFSSE 웹사이트
올해 7월 22일 뉴욕, ILO와 UNCTAD가 스페인 정부와 함께 개최한 행사 '잠재적 UN총회 결의안: SDGs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연대경제의 역할(Role of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in achieving the SDGs: Potential General Assembly Resolution)./출처=UNTFSSE 웹사이트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ILO 본부에서 기자와 만난 빅 반 뷔렌(Vic Van Vuuren) UNTFSSE 의장은 결의안 상정을 위해 각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월부터 ILO에서 사무차장직을 맡은 그는 “내년 1월쯤 UN 총회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며 "UN 수준에서 결의안으로 채택되면 되돌릴 수 없고, 그만큼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 뷔렌 의장은 최근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사회적경제 주류화 논의에 공감하며, 그 이유에 관해 “기존에 정부와 민간부문에 적용됐던 가치사슬에 대한 의문을 지금 우리 사회가 품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 정의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면서 기업가들에게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경제 주체의 잠재력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사회적경제 주류화 논의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줬다”며 “그게 바로 국제적으로 사회적경제를 더 활성화해야겠다는 공감대가 모인 이유”라고 말했다. 앞으로 비슷한 위기가 또 찾아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다만 그는 사회적경제가 민간섹터(private sector)를 대체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경제는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 가까워질 또 다른 방법이자 수단”이라며 “그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빅 반 뷔렌 ILO 사무차장 겸 UNTFSSE 의장. 2009년 남아프리카 지역사무소장을 맡으며 ILO에 발을 들여 2016년부터는 기업부장(Enterprises Department Director)을 역임했다.
빅 반 뷔렌 ILO 사무차장 겸 UNTFSSE 의장. 2009년 남아프리카 지역사무소장을 맡으며 ILO에 발을 들여 2016년부터는 기업부장(Enterprises Department Director)을 역임했다.

반 뷔렌 의장은 특히 사회적경제로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전에는 사회적경제의 비영리성에 초점을 맞춰졌다면, 이제는 공익을 실현하면서도 경제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므로 국가 입장에서는 이를 산업 정책에 포함하고, 국가 전략으로까지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 공헌 차원의 CSR과도 분명히 다른 개념이라고도 못 받았다. 그는 “예를 들어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줄이고, 아동노동을 금지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한발 더 나아간 책임을 감수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영리섹터는 이미 사회적경제에 계속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법에 관해서는 개별국가의 상황에 따라, 기존 영리 섹터와의 논의를 거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올해 6월 사회연대경제 정의를 채택했던 ILO 총회를 회상하며 “당시 고용주 측에서는 사회적경제주체가 혜택을 받아 기존 민간 부문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말했다. 영리 섹터 입장에서 실제로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는 의미다. 그는 “논의를 통해 오해를 줄이고 상생할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기구에 소속된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적경제는 어떨까. 반 뷔렌 의장은 근 1년여 사이 달라진 한국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GSEF 의장도시 지위가 서울에서 보르도로 넘어간 일을 언급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GSEF는세계 도시 시장, 국제기구 대표 및 사회적경제 리더 들이 모여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논의하는 사회적경제 분야 국제네트워킹 플랫폼으로 2014년 서울시가 설립했다. 지난 7년간 의장도시로 활동했으나,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정회원이자 운영위원회 소속으로만 참여하게 됐다. 뷔렌 의장은 “서울시가 GSEF 의장도시로서 사회적경제 글로벌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아시아에서 독보적으로 활동했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으로서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UN 총회 결의안 상정에 관해 한국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UN 총회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결의안을 상정하는 작업을 위해, 지난해 UNTFSSE에서 한국 정부에 리더 역할을 제안했지만, 내부 논의를 하겠다는 답변 후 별다른 회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망설이는 걸로 보였다고. 결국 그 역할은 스페인 정부로 넘어갔다. 7월 뉴욕에서 열린 회의도 스페인이 주도했다. 반 뷔렌 의장은 "한국은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그동안 정말 획기적인(groundbreaking) 역할을 해왔는데, 그 위상을 계속 유지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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