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세계 각국은 시장경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는 걸 자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경제로 뜨는 개념이 ‘사회연대경제’다.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일컫는다. OECD, UN, ILO 등 유수의 국제기구에서는 근 2년간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이렇게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연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으로 전 세계가 들썩였던 2020년. 갑작스러운 전염병 창궐에 세계 경제도 휘청했다. 순식간에 공급망이 붕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증시가 급락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가 초래했던 세계 금융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스페인,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등은 초반부터 전국 봉쇄령을 감행했다. 스페인의 경우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봉쇄령이 떨어졌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외출 제한뿐만 아니라 상점 영업금지 등의 강력한 봉쇄령을 시행했으며, 국민은 생필품을 사거나 병원에 가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만 외출이 허락됐다.

준비 없이 실행된 봉쇄에는 큰 후폭풍이 뒤따랐다. 당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는 봉쇄령이 내려진 3월 중순부터 2주 동안에만 약 9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중 절반이 임시직 근로자로 파악됐다.

해고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위기를 타개한 스페인 기업이 있다. 바로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다. ‘복합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이유는 몬드라곤이 단일 협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재, 가전, 금융 등 여러 분야의 협동조합을 포함해 협동조합이 아닌 기업까지도 모여있는 말 그대로 복합체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을 때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복합체 내 협동조합 2곳이 파산하자, 그 협동조합의 직원들을 재교육해 다른 협동조합에 배치한 사례로 유명하다.

95개 회원 협동조합이 약 8만명을 고용하며 지난해 기준 115억유로(15조)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몬드라곤. 지난 10월 17일(현지시간), 몬드라곤 복합체 경영교육센터가 자리 잡은 스페인 기푸스코아주 아레차발레타시에서 7년 동안 대외협력국장을 역임하고 있는 안데르 에체베리아(Ander Etxeberria)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몬드라곤의 오탈로라 경영교육센터 전경. 과거 궁이었던 곳을 몬드라곤이 인수했으며, 이후 확장 공사했다.

코로나19 휴직수당으로 지급된 185억원…’라군아로’ 있어 가능했다

봉쇄령을 내린 스페인은 정부 차원에서 임시고용 해제제도를 시행했다. 신청한 기업에 한해, 근로자의 근로계약 일시 중단 혹은 근로 시간 단축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근로계약 일시 중단을 택할 때 근로자가 본인의 최근 6개월 사회보장납입액에 근거해 산정된 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었다. 첫 6개월간은 지급 기준액의 70%, 그 이후로는 50%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제도와 상관없이, 몬드라곤은 이미 준비된 시스템을 가동했다. 직원이 국가 재난이나 질병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일하지 못하게 됐을 때, 퇴사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몬드라곤은 직원들에게 최대 6개월의 휴직 기간을 주고, 그동안 임금의 약 80%에 달하는 휴직수당을 지급했다. 그는 “2020년 봉쇄령으로 강제 휴직에 들어간 노동자 조합원이 총 9000여명”이라며 “이들의 휴직 수당으로 나간 돈은 1300만 유로(한화 약 185억원)”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의 중심에는 ‘라군아로(Lagun-Aro)’가 있다. 9000여명의 노동자 조합원은 라군아로를 통해 휴직수당을 받았다. 라군아로는 1967년 세워진 사회보장협동조합으로, 현재 몬드라곤 조합원들의 의료·고용·산재 보험 등 각종 사회보장을 도맡는다. 정확히는 몬드라곤 소속 협동조합의 조합원을 포함해 몬드라곤이 생기기 전부터 라군아로에 가입한 협동조합의 조합원까지다.

라군아로의 구조를 설명 중인 에체베리아 국장. 그는 복합체 내 협동조합들을 관리하는 몬드라곤 본부에 소속된 노동자 조합원이다.
라군아로의 구조를 설명 중인 에체베리아 국장. 그는 복합체 내 협동조합들을 관리하는 몬드라곤 본부에 소속된 노동자 조합원이다.

라군아로에는 2021년 기준 122개 협동조합의 노동자 조합원 2만 8228명이 가입해 급여의 30%를 공제하고 있으며, 이번 위기에도 빛을 발했다. 에체베리아 국장은 “1973년 석유 파동을 겪은 후, 비슷한 경제위기가 오면 대처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라군아로는 연금, 고용지원 서비스, 의료 서비스, 임시 병가 제도 등 크게 4가지 역할을 도맡는다. 스페인 내에서 그 이러한 사회보장 서비스를 일부 제공하는 기업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곳은 라군아로뿐”이라며 “이런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노동자 조합원들은 자신이 받는 임금의 일부를 내놓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1년 기준 라군아로의 총자산은 약 75억 유로(한화 약 10조원)이다.

라군아로에 가입한 노동자 조합원 수의 2011년부터 변화 추이./출처=라군아로 2021년 보고서

일할 권리로 이어지는 교육받을 권리

라군아로의 역할 중 하나인 ‘고용지원 서비스’는 몬드라곤의 연대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다. 몬드라곤이 여러 기업의 복합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한 제도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부각됐던 기능으로, 한 협동조합이 파산했을 때 재교육을 통해 다른 협동조합으로 재배치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에체베리아 국장은 “비즈니스에만 집중한다면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다. 직원이 일하던 협동조합에서 더 이상 일하지 못할 경우, 복합체 내 다른 협동조합에서 일할 권리를 준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협동조합에서 새로운 일을 할 능력이 없으면 일하지 못할 테니, 몬드라곤에서 말하는 ‘일할 권리’란 ‘새로운 교육을 받을 권리’까지 포함한다. 최대 2년 동안 급여의 일부를 받으면서 지낼 수 있다.

이때 받는 급여의 경우 실업 수당의 개념인 건가. 에체베리아 국장은 표현의 차이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궁극적인 목표는 ‘재배치’다. 일을 못 하는 기간 주는 수당을 넘어 새로운 고용을 위해 받는 교육 기간을 라군아로가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요즘 몬드라곤의 고민은? 생존과 정체성 유지

몬드라곤의 개요를 설명 중인 에체베리아 국장. 그의 명함에는 “협동조합 전파, 확산 담당자”라는 한국어가 적혀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많이 찾아왔음을 방증한다.
몬드라곤의 개요를 설명 중인 에체베리아 국장. 그의 명함에는 “협동조합 전파, 확산 담당자”라는 한국어가 적혀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많이 찾아왔음을 방증한다.

협동조합 규모화의 바이블(성경)로 불려온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협동조합끼리 상향식(Bottom-up) 구조로 복합체를 만들어 본부를 설치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이상적인 모델을 유지해왔다. 한국에서도 각종 학교, 기관, 언론 등에서 1년에 몇 번씩 찾아와 몬드라곤의 ‘성공 신화’를 듣고 가곤 한다. 한국 외에 세계 다른 국가에서도 요청이 많아 몬드라곤이 직접 교육·투어 상품까지 만들 정도다.

그런 몬드라곤도 걱정하는 게 있을까. 에체베리아 국장에게 “요즘 몬드라곤의 고민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빠른 변화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장기적으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생존’입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응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몬드라곤 복합체 안에 굉장히 역사가 깊은 자동차 제조 협동조합이 있는데, 아직 옛날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 편입니다. 지금 기술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트렌드에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고민합니다."

이런 이유로 몬드라곤은 지난 2020년 발표한 전사 4개년 전략 계획에 ‘디지털화(Transformacion Digital)’와 ’지속가능성(Sostenibilidad)’이라는 항목을 담았다. 에체베리아 국장은 “몬드라곤에 소속된 협동조합들이 다른 일반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화와 지속가능성 추구는 미래를 위한 비즈니스와도 연결된 것”이라고 전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도 과제다. 그는 “자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섬처럼 존재하는 협동조합 시스템을 유지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몬드라곤의 성공에도 협동조합이 좀 더 확산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점점 불공평해지는 세계 속에서 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몬드라곤이 60년 이상 경쟁력 있게 증명하고 있는데, 아직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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