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세계 각국은 시장경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는 걸 자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경제로 뜨는 개념이 ‘사회연대경제’다.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일컫는다. OECD, UN, ILO 등 유수의 국제기구에서는 근 2년간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이렇게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연재한다.

“협동조합 형태의 혁신적인 사회적경제조직, 기업 및 종교단체의 사회공헌 등을 통해 사회서비스 공급주체가 다변화·규모화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올해 4월, 윤석열 정부 인수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용을 통해 성장과 선순환하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 개혁 방향>을 발표했다. 돌봄, 의료, 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를 효과적으로 고도화하고 혁신, 규모화할 법인격으로 협동조합 형태가 적합하다 본 거다. 이런 판단의 계기에는 해외의 성공 사례가 있다. 인수위는 해당 내용을 발표하며 대형 사회적협동조합 카디아이(CADIAI)를 바람직한 모델로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가 사회서비스 고도화 필요성을 명시하며 언급한 카디아이 사례./출처=인수위 보도자료

카디아이는 약 1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사회적협동조합이다. 197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여성 돌봄노동자 약 30명을 중심으로 설립해, 2021년 기준 총 1755명을 고용 중인 중견기업이다. 이 중 969명은 자발적으로 1800유로(한화 약 252만원)의 출자금을 내고 가입한 조합원이기도 하다.

카디아이는 특히 지자체 정부와 성공적으로 협력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돌봄 관련 위탁사업뿐 아니라, 다른 협동조합들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볼로냐 시민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시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카라박(KARABAK)’ 프로젝트도 주도한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국가 중 하나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직후 약 3달간 전국 봉쇄를 시작해 이탈리아 국민 약 6000만명의 이동이 제한됐다. 팬데믹은 카디아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 10월, 기자는 볼로냐에 있는 카디아이 본사를 직접 찾았다. 2008년부터 카디아이를 이끌고 있는 프랑카 구글리에메티(Franca Guglielmetti) 대표는 코로나19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프랑카 구글리에메티 카디아이 대표.

매출감소는 봉쇄령 탓, 수요는 노인 시설 한해 잠시 줄어…”고용조정이요? 인력이 부족합니다”

이탈리아는 봉쇄기간 필수 업무와 식료품 구매, 의료적 필요를 위한 외출 외의 이유로는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주로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디아이도 업무에 타격을 입었다. 구글리에메티 대표는 봉쇄령이 내려졌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정말 심각했다”며 말을 이었다.

“아동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면 보육, 교육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가 필수 업무로 지정하지 않아 직원들이 일하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해당 업무를 맡고 있었던 직원들은 업무를 최대한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정부의 소득보장제도를 활용해 기존 임금의 80% 정도를 받으며 휴직해야 했습니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일을 쉴 수밖에 없었던 직원들도 있었고요. 이 때문에 카디아이의 2020년도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약 8% 줄었습니다.”

2019년에 비해 줄어든 2020년 카디아이 매출./출처=2020년 카디아이 성과 보고서

카디아이는 집에서 아이들과 옴짝달싹 못 할 부모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은 유튜브 영상, 온라인 교육 자료 등을 제작했고, 시 정부는 이를 지원했다. 구글리에메티 대표는 “봉쇄령 해제 후 보육·교육 서비스가 제대로 재개될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 많이 걱정했다. 감염 위험 탓에 수요가 많이 줄 것 같아서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계속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던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맡길 곳이 생겨 무척 기뻐했다고.

아동·청소년과는 달리 노인·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필수 업무로 분류돼 봉쇄 기간에도 대면 근무가 허용됐다. 이들의 돌봄·간호에 공백이 생길 경우 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 서비스를 수행하는 직원들은 정부로부터 방역 교육을 듣고, 외출 허가증을 받고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인 요양시설의 경우 수요 자체가 줄었다. 구글리에메티 대표는 “당시 요양병원 집단 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팬데믹 첫 해 신규 환자가 (병상 기준) 기존의 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다만 직원들의 고용조정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일은 없었다. 국가적으로 돌봄 의료 인력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 카디아이 소속이 아니더라도 일할 곳은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사람을 못 구해 걱정이라는 카디아이. 구글리에미티 대표는 “2020년에 줄어들었던 환자가 점점 늘어나 이제는 기존 병상 수의 80% 정도를 회복했다”며 “지금은 오히려 들어오는 환자를 돌볼 사람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간호사 등 인력의 유출을 막기 위해 성과급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을 마련하는 중이다.

합법화 전부터 동성 신혼여행 지원…차별 없애고 일가정 양립 노력↑

재정적 복지 외에도, 카디아이는 이전부터도 직원들을 위한 조직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2011년부터 ‘기회균등 정책 담당(Responsabile delle Politiche per le Pari Opportunità)’을 두고 차별 없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발굴했다. 카디아이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가 지난해부터 기회균등 정책 수립을 함께 담당하게 된 줄리아 카사리니(Giulia Casarini) 사회활동·커뮤니케이션·평등정책 담당자는 기회균등 정책에 대해 “성차별, 종교차별,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을 제거할 수 있는 일련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줄리아 카사리니 카디아이 사회활동·커뮤니케이션·평등정책 담당자.

대표적인 사례가 동성 부부의 신혼여행 휴가다. 카디아이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이탈리아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기 전부터 동성 부부의 신혼여행 휴가를 보장해줬다. 카사리니는 “동성 부부의 신혼여행 기간은 법적으로 보장되는 휴가 기간이 아니어서 원래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 했지만, 2015년부터 카디아이는 이를 정책적으로 보장했다”고 말했다. 카디아이가 해당 정책을 실시한 이듬해 이탈리아에서는 동성 부부의 결혼을 합법화했다.

출산 휴가 수당도 정부가 책정한 것보다 더 지원해준다. 카사리니는 “이탈리아 정부가 제공하는 수당의 경우 출산 몇 달 후부터는 액수가 줄어드는데, 카디아이는 자체 기금을 활용해 그 액수를 채워준다”고 설명했다. 카디아이 직원의 85%는 여성이다. 이러한 특징이 회사 정책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준 것.

재택근무(smart working) 정책도 새로 들였다. 조직 내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무의 경우, 1년에 40일 정도 활용할 수 있다. 카사리니가 기회균등 정책을 담당하게 된 이후 이사회에 제안해 최근 승인을 받은 정책이다. 예를 들면 이전에는 특정 회의를 준비할 때 꼭 회사에 나와서 해야 했는데, 그런 규정을 바꿔서 이제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카사리니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 삶의 질을 높이고, 가정에 일이 생겼을 때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카디아이의 요즘 관심사는 ‘커뮤니티 케어’와 '가치 측정'

이탈리아 볼로냐 기차역 가까이 자리잡은 카디아이 본사 전경.
이탈리아 볼로냐 기차역 가까이 자리잡은 카디아이 본사 전경.

이탈리아는 지난 4월부로 보건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이동제한 조치는 해제된 지 오래고,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사람조차 보기 어렵다. 코로나19라는 파도를 겪고 난 카디아이의 최근 관심사는 ‘이웃돌봄’과 ‘사회 성과 측정’에 집중돼있다.

구글리에메티 대표는 “팬데믹으로 양극화가 더더욱 심해지면서 취약계층이 많이 늘고 있다. 정부에서 그 수요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정도”라고 운을 뗐다. 특히 자립이 어려운 이웃들의 경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찾는데는 큰 노력과 시간이 든다고. 그는 “상황이 악화하기 전에 이들을 찾고, 이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주요 고민”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로 풀어진 커뮤니티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다.

카사리니는 카디아이의 서비스가 사회에 영향력을 어떻게, 얼마나 미쳤는지 계산하는 작업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고민은 카디아이가 제작한 2021년 보고서(Bilancio Sociale Consuntivo 2021)에도 담겨있다. 카디아이는 볼로냐 대학교와 협업해 이번 보고서에 아동과 노인 대상 일부 서비스가 지닌 소셜 임팩트를 정성, 정량적으로 측정한 내용을 담았다. 그는 “아직 우리가 가진 방법론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이러한 가치에 대한 성과 수치화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이에 발맞추기 위해 고도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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