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세계 각국은 시장경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는 걸 자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경제로 뜨는 개념이 ‘사회연대경제’다.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일컫는다. OECD, UN, ILO 등 유수의 국제기구에서는 근 2년간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이렇게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연재한다.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법과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회사의 이익을 키우는데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1970년 9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사회적책임은 자연인인 개인의 영역이고, 기업은 이윤창출 및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활동하면 되는 존재다. ‘책임’은 주주에게만 지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일명 주주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기업의 과도한 단기이윤 추구가 사회에 부작용을 낳기도 하며,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이윤창출을 저해하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이와 같은 문제인식 속에 주주뿐만 아니라 생산자, 협력업체,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급부상했다. 

비즈니스를 통한 가치 창출 실험 나선 비랩

비랩 뉴욕 사무소에서 찍은 비랩 마크.
비랩 뉴욕 사무소에서 찍은 비랩 마크.

주주자본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06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B Lab(이하 비랩)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비랩은 농구화 및 의류 제조사인 앤드윈 공동창업자 바트 훌라한(Bart Houlahan)과 제이 코엔 길버트(Jay Coen Gilbert), 사모투자자 출신인 앤드류 캐소이(Andrew Kassoy)에 의해 설립됐다.

훌라한과 길버트는 앤드윈을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 직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육과 사내복지 강화, 지역사회 청년 리더십 개발을 위한 기부까지 했지만, 이들은 2009년 기업을 매각했다. 당시 기업 생태계에서는 이해관계자를 위한 비재무적 요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랩은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주주를 동등하게 고려하며,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에 동참하는 이들을 모아내기 위해 창립됐다. 2007년부터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성과를 균형있게 추구하며 비즈니스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에게 비콥(B Corp)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11월 현재, 비콥 인증기업은 86개국 159개 산업에서 6083개가 있다.

앤드류 캐소이가 지난 10월 7일, 이로운넷과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앤드류 캐소이가 지난 10월 7일, 이로운넷과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0월 6일,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비랩글로벌 뉴욕사무실을 찾아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앤드류 캐소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랩은 올해 3월, 새로운 CEO로 일리노어 알렌(Eleanor Allen)을 선임하면서 독립적인 이사회 거버넌스 구조를 갖췄다. 앤드류 캐소이와 바트 훌라한은 비랩 이사회멤버이자 조언자로 남게됐다. 이들은 지난 7월, 그간 소회를 담은 글에서 “16년 전만 해도 비즈니스에 다른 목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기업 세계에서 주변부, 심지어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됐다”며 “하지만 글로벌 비콥 커뮤니티 영향력은 비즈니스의 성공을 재정의했다”고 자평했다. 

비콥운동 널리 퍼지면 사회문제 해결할 수 있어

“비콥이 다른 유형의 기업들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것으로 본다.”

2016년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비콥의 잠재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비즈니스가 기업의 이윤 극대화도 함께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정부에서 사회적기업을 인증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창출하는 사회적가치에 맞는 유형을 설정하고 인증 사회적기업에게 최대 5년간 고용창출·사업개발비 지원, 세제혜택 등을 주고 있다. 반면 비콥은 비랩이 직접 인증하는 방식으로, 엄격한 인증평가를 거쳐 선정된 기업들이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앤드류는 비콥의 활동을 비콥운동(B Corp Movement)라고 정의했다. 그는 기업과 공공, 당사자의 변화가 함께해야 비콥운동이 성공하리라 봤다. 그는 “우선 기업의 목적을 주주가 아닌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바꿔야 하고, 공공정책 및 인식이 그에 맞게 전환돼야 한다”며 “기업 목적과 공공정책이 변화하면, 모든 기업이 자연스레 이해관계자들을 주주와 동등하게 고려할 것이다, 전환된 시스템은 빈부격차와 기후위기, 지역소멸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진 비콥운동

비콥 인증마크.
비콥 인증마크.

비콥운동은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각국의 6000여 개 비콥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비랩은 이들이 세계적인 운동의 일부라고 여기고, 전 세계 각지에 사무소를 설치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비랩코리아가 국내 20개 비콥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비콥은 소비자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용이하고, 투자자 관심을 끌기 좋은 인증 체제다. 앤드류는 “소비자들은 비콥인증을 받은 기업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제3기관이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라고 인정하니 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ESG경영을 필두로 환경적·사회적가치 창출기업에 투자하려는 흐름이 강해지는 지금, 투자자들도 비콥기업을 주목한다. 실제 자본을 유치하고 규모를 키우려는 회사들의 인증 신청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민간 차원 넘어 제도적 변화도 주도하는 비랩

앤드류 캐소이 공동설립자.
앤드류 캐소이 공동설립자.

비랩은 최근 베네핏 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 법제화를 주도하고 있다. 베네핏 코퍼레이션은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과 같이 하나의 법인격 형태를 말한다. 베네핏 코퍼레이션은 이윤(profit)뿐만 아니라 공익(public benefit)까지 함께 추구한다. 민간 차원 운동을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해당 기업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사회환경적 임팩트를 고려하며, 재무적 이익과 동시에 이해관계자의 이익도 고려하고 있는지 주주에게 보고할 의무를 가진다. 

앤드류 캐소이는 “비랩은 처음부터 회사의 지배구조에 이해관계자를 위한 가치를 창출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이해관계자 지배구조로 변경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법령을 고안해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네핏 코퍼레이션법 통과 비결은? 실용적 메시지와 성과 데이터

베네핏 코퍼레이션 관련 이미지./출처=비랩
베네핏 코퍼레이션 관련 이미지./출처=비랩

현재 미국 내 42개 주, 세계 9개 국가에서 통과돼 해당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보수정당인 미국 공화당 역시 해당 법안 추진에 동참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시카고학파를 위시한 보수적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도 베네핏 코퍼레이션 법안 통과에 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앤드류 캐소이는 비콥기업의 우수한 사례들이 법안 통과에 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치인은 기업의 지원에 대해 민감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미국에서 법률이 빠르게 통과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기업들이 해당 법안에 대해 큰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진보·보수정당 모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질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무엇이 있나”고 강조했다.

한국은 자활기업을 시작으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소셜벤처 등이 제도화됐다. 이들이 순차적으로 제도화되다보니 사회적경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법이 부재한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소리높인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모두 해당 법안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앤드류는 기본법 통과를 바라는 한국 사회적경제인에게 “기업이 실용적인 메시지를 갖고 정치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법안이 어떻게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하며 강한 경제시스템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지 말이다”라며 “기업이 정치적인 스탠스를 거두고 성과데이터를 갖고 실용적 대화를 나누면 법안 도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랩 글로벌 뉴욕사무소은 월스트리트에 위치해있다. 사진은 비랩 뉴욕 사무소가 위치한 건물 입구.
비랩 글로벌 뉴욕사무소은 월스트리트에 위치해있다. 사진은 비랩 뉴욕 사무소가 위치한 건물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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