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세계 각국은 시장경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는 걸 자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경제로 뜨는 개념이 ‘사회연대경제’다.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일컫는다. OECD, UN, ILO 등 유수의 국제기구에서는 근 2년간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이렇게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연재한다.

“(사회적경제 덕분에)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개발이 조금 더 용이해졌습니다”

퀘벡정부 경제혁신부 소속 쥘리 샤르통-비에르가드(Julie Chartrand-Beauregard) 사회적경제 담당관은 사회적경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정부 정책이 조금 더 현장에 맞게 맞춰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퀘벡주정부 경제혁신부 소속 쥘리 사회적경제 담당관/사진=정재훈 기자
퀘벡주정부 경제혁신부 소속 쥘리 사회적경제 담당관/사진=정재훈 기자

‘비즈니스 전환을 위한 특별 자금조달 지원사업’, 일명 전환기금(Transition Fund)이 대표적인 사례다. 펜데믹 기간 동안의 변화와 도전에 대처하거나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이 기금은 25년간 초기 사회적경제기업들을 지원해 온 사회적금융기관 퀘벡사회투자네트워크(RISQ)의 노하우와 인프라를 활용하고자 RISQ를 통해 예산이 집행됐다.

퀘벡정부만이 아니다. 연방정부도 지난해 배정된 ‘사회혁신기금’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퀘벡의 사회적금융 네트워크 조직인 CAP파이낸스와 협의했다. 밀밀더 빌레가스(Milder Villegas) CAP 파이낸스 의장은 “공공에서는 탑다운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기금사업은 우리(CAP파이낸스)와 의논했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면 조금 더 집행 결과(효과)가 좋다고 판단한 듯 하다”고 소개했다.

빌레가스 의장은 사회적금융기관들의 조직력과 전문성이 협상력의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CAP파이낸스 소속 사회적금융기관들이 퀘벡에서 일어나는 사회투자의 80% 이상에 개입하고 있다. 연방정부든 주정부든 사회투자를 하고 싶다면 우리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력...퀘벡의 굵직굵직한 사회투자는 우리 ‘모두의 손’에서 나온다

단순히 매출액과 기관의 숫자만을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강력한 응집력과 협응력으로 공동투자에 나서며 말 그대로 '연대금융'과 '연대경제'를 실천하고 있다. 퀘벡의 학생주택 ‘우드노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CAP파이낸스 소속 사회적금융기관 5곳(연대경제금고, 피두시, 퐁드 솔리데리테 FTQ, 데자르뎅 신용협동조합, RISQ)은 이 사업에 약 95억원의 자금을 댔다. 전체 사업비 약 2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로 해당 자금이 모인 덕분에 2019년 공사를 시작해 2020년 준공했다.

퀘벡주에 위치한 학생주택, '우드노트' 전경/출처=우틸
퀘벡주에 위치한 학생주택, '우드노트' 전경/출처=우틸

코로나19 이전에는 언론사 인수로 한창 이슈가 되기도 했다. 파산을 선고한 언론사를 독립뉴스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CAP파이낸스 소속 7개 회원조직(퀘벡투자공사, 데자르뎅, RISQ, 피두시, 연대경제금고, 양대노조 기금 등)이 협력해 인수자금을 조성한 것이다. 해당 기업은 퀘벡 지역에 7개의 지방 신문사를 둔 기업으로 원래는 부유한 기업가가 경영하던 언론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당 기업가가 더 이상 이 신문사를 경영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다른 기업에게 팔리지도 않았다. 결국 해고될 위기에 처한 언론사의 노동자들이 회사를 인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밀더 의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이 언론사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매스 미디어는 중앙의 소식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지역 사람들에게는 지역 소식도 중앙의 소식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며 지역 언론사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퀘벡전국노동자총연맹(CSN)이 먼저 깃발을 들었다. 곧 이어 다른 사회적금융기관들도 해당 언론사의 사회적가치에 동의해 노동자들의 기업인수를 돕기로 나섰다.  

전문성...사회적경제기업 분석가이드 만들며 연대금융 촉진

사회적경제기업 분석가이드/출처=RISQ
사회적경제기업 분석가이드/출처=RISQ

하나의 프로젝트에 이처럼 여려 곳의 금융기관이 공동 투자에 나서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기관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재무적인 가치는 수익과 비용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증명이 가능하지만 사회적인 가치는 기관마다 추구하는 방향이나 가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퀘벡의 사회적금융 기관들은 이미 사회적경제기업을 분석하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공유해왔다. 일명 <사회적경제기업 분석 가이드>다. CAP파이낸스의 조직적 기원 역시 <사회적경제기업 분석 가이드>를 제작하기 위한 비공식적 모임(2000년)에서 시작됐다.

초기에 데자르뎅연대경제금고, 퐁닥시옹, 필라시옹, RISQ 등의 비공식적 모임으로 시작된 CAP파이낸스는 2010년 피두시(샹티에 신탁기금)와 양대 노동조합연합조직의 연대·발전기금, 미크로앙트러프랑드르, 퀘벡투자공사 등 사회적금융 분야에서 활약하는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주체들이 합류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사회적경제기업 분석가이드>에는 다음과 내용의 질문이 포함돼 있다.

▲협동조합이 시장 가격으로 판매하면 막대한 수익이 예상되는 조합의 제품을 지역 주민에게 가격을 낮추어 파는 경우, 조합의 결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기업 활동이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기업의 지원으로 변화를 시작하려는 지역사회의 의지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회적경제기업 분석가이드>는 사회투자 프로젝트를 분석하기 위해 설계된 툴이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상호의견교환이 가능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주식을 발행하지 않는 비영리단체의 부채비율은 어떻게 측정하는가? ▲사업의 수익이 정부와의 계약으로 인한 것일 경우,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등 사회적경제기업들의 독특한 자금흐름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사회적경제기업 분석가이드>가 활용되고 있다. 사회적금융의 전문성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했다.

전통적인 금융시장이 못하는 일...우리는 한다

수익보다 사회적가치를 우선하는 비전 역시 사회적경제가 사회투자의 적임자로 인정받는 이유로 꼽힌다. 나탈리 블리뮈에(Nathalie Villemure) RISQ 사무국장은 사회적경제이기 때문에 인내자본을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인 금융시장이라면 인내자본을 공급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더욱 전통적인 금융시장이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통적인 금융시장에서는 주식을 사고 지분을 매입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가능하지만 사회문제해결은 그런 방식이 쉽게 통하지 않는다”며 “사회적경제기업은 수익을 찾는 것이 중심이 되는 목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블리뮈에 사무국장은 "결국 기업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사명을 영속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내자본의 논리”라고 설명했다.  

필립 가르홍(Philippe Garant) 피두시 국장도 같은 의견을 전했다. 그는 “수익이 조금 덜 나올 수는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창출하는 임팩트가 큰 사례들이 있다”며 “이런 사례들이 바로 우리의 사회적 미션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사회적경제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인내자본 공급자로 제격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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