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이 냉엄한 자연에서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가장 강한 최적자다. 인간들이 일구고 살아가는 사회라는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은 태어난 모든 생명체에 관통하는 제1의 원칙과 같았다. 그러나 적자생존이 틀렸다고 말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진화의 최종 승자는 최적자(The fittest)가 아닌, 가장 다정한 자(The friendliest)라는 주장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친화력을 무기로 삼아 번성해온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브라이언 헤어와 같은 대학 진화인류학과 연구원인 버네사 우즈가 공동 집필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 책 표지 이미지./출처=디플롯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 책 표지 이미지./출처=디플롯

두 저자는 신체적으로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가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 방식으로 생존해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말하는 생존의 필수 요소는 ‘친화력’으로, 상대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특히 인간,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서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람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맞춤에 의존해 살아간다. 걷기도 전에 부모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눈빛은 무엇을 향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며, 손짓과 몸짓을 보고 의도를 파악한다. 이같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익숙한 인간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연결망을 확장하고, 다양한 기술 혁신을 공유하며 문명을 일궈나가게 된다.

헤어는 해마다 점점 개체 수가 늘어나는 개에게서도 같은 능력을 발견한다. 컵 2개 중 한쪽에만 먹이를 숨기고 먹이가 든 컵을 손으로 가리켰을 때 개들이 먹이를 찾아내는지 실험한 결과, 개들이 인간 손짓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인간과 친화적인 개는 먹이 찾기에 성공하지만, 지능은 더 높으나 인간과 친화적이지 않은 침팬지는 먹이 찾기에 실패한다.  

책에서는 개는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에 성공해 진화한 종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늑대를 의도적으로 길들여 개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 친화력 좋은 개가 스스로 사람들 곁에 와서 친구가 됐다는 주장이다.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 개들은 성격이 온순해지고 귀나 이빨이 작아지고 번식 주기가 빨라지는 등 여러 가축화 징후를 보이며, 현재 가장 많이 살아남은 동물 종 중 하나가 됐다.

물론 생명체의 친화력이 언제나 좋은 영향 남기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친화력의 이면에 자리하는 인간의 공격성과 혐오에 대해서도 다루며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라고 말한다. 친화력은 내집단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외집단을 향한 편견과 적대감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최근 인종, 국가, 성별, 세대, 종교, 정치성향 등에 따라 집단을 나눠 서로 증오하고 갈등하는 우리 사회 모습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인간에게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협으로 여겨질 때, 그들을 우리 정신의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면서 “연결감, 공감, 연민이 일어나던 곳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비인간화 경향이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편견을 가진 집단이 자신과 다른 집단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시하고 차별하게 배제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서로가 최적자가 되어 혼자만 살아남으려 하는 적자생존이라는 낡은 규칙을 따르려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인류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대상을 배제하지 않고 다정함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디플롯 펴냄. 396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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