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풀뿌리 활동을 이어오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1999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으로 시민권을 얻게됐다. 약 20여 년이 흐른 2020년, 생협은 생협법개정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국회의원과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논의 끝에 총 4개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생협법 개정안이 통과된 생협 3.0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고, 생협과 사회적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이번 생협법 개정안을 준비하며, 5대 생협(두레생협연합회, 아이쿱생협연합회, 한살림생협연합회, 한국대학생협연합회, 행복중심생협연합회)의 의견을 모았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도 긴밀한 소통을 통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생협은 이번 개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생협이 식품, 생활재를 넘어 공제를 비롯해 실생활에 밀접한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출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특히 생협이 보유한 생산자, 소비자 조합원이 향후 자립적 성장을 하는데 있어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17일 현재, 생협법개정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생협법 개정안 중 민형배안 만이 아직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생협은 "생협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내용이 담긴 법안이므로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로운넷>은 '생협 3.0' 기획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지난 3일, 세계협동조합대회가 진행 중이던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생협법 개정논의를 돌아보고, 생협의 남은 과제를 논하는 특별 좌담회를 진행했다.

생협법 개정 관련 특별 좌담회 참가자.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오귀복 아이쿱생협연합회 상무, 진재성 이로운넷 기자, 강민수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장, 윤형근 한살림생협연합회 전무.
생협법 개정 관련 특별 좌담회 참가자.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오귀복 아이쿱생협연합회 상무, 진재성 이로운넷 기자, 강민수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장, 윤형근 한살림생협연합회 전무.

▶참가자

오귀복 아이쿱생협연합회 상무
윤형근 한살림생협연합회 전무
강민수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장

▶진행 = 진재성 이로운넷 기자

Q. 생협법 개정논의 과정에서 느낀점은?

오귀복 아이쿱생협 상무(이하 오귀복) : 2010년 이후 만 10년 만에 생협법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부적으로 개정과제를 정리했다. 약 10개월 정도 걸렸다. 합의하는 과정은 생협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등 여야 3당이 함께 발의하는 형태로 진행돼야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3개 법안이 통과됐고, 연내에 민형배 의원안까지 통과되면 생협의 정체성, 생태계, 금융환경 조성 등 모든 영역에서 자립적 성장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민형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반쪽 자리 생협법 개정에 그칠 것이라 통과가 절실하다. 하지만 민형배 의원 의지 높고, 여야가 무쟁점으로 합의했던 안이니까 무사히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윤형근 한살림 전무(이하 윤형근) : 5대 생협이 2014년부터 생협 내 과제들을 꾸준히 정리해왔던 덕분에 10대 과제 선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생협들이 지금 당장 닥친 과제는 아니더라도 거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열린 시각으로 보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생협법 개정작업을 진행하며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연대 및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공정위가 생협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하다보니 생협의 과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서 애로사항을 느꼈다. 하지만 공정위와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입장차도 점차 좁혀졌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생협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 공정위 역시 나름의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강민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장(이하 강민수) : 생협법 개정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기본법 개정 논의과정까지 반추해보면,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와 정책당국은 협동조합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생협을 포함해 협동조합은 시장경제가 실패한 영역 또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영역들에 진출해 훌륭하게 키워왔다. 그렇다면 정책당국은 이를 적극 장려해야 옳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좋은 혁신적인 모델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생협은 자생적 노력을 바탕으로 157만 가구로까지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정부도 생협의 실체와 성장세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외국 생협 성장사례만 봐도 생협이 정관 자치로 나아가는 걸 당연시 여기고 있다. 외국의 사례와 우리나라 생협의 성장세를 보면 우리나라 정책당국이 유독 이해가 부족하고 규제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생협법 개정안 통과에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흐름도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생협법 개정 동력은 5대 생협,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등 단체들의 노력에서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7차례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이 나오는 흐름 속에서 생협법 개정도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생협 등 당사자조직의 노력과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흐름이 맞물려서 가능한 성과라고 본다.

오귀복 아이쿱생협 상무
오귀복 아이쿱생협 상무

Q. 생협은 1998년 생협법 제정을 통해 성장했고, 2010년 개정을 거치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 개정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보나?

오귀복 : 이번 개정안 통과로 생협이 기존의 전통적 의미에서 식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서 공제 등 생활에 필요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57만 가구 조합원을 넘어 큰 틀의 소비자 그룹을 조합원으로 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직은 생협의 비즈니스 기반 공통분모가 식품 하나인 상황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생협이 함께 공통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있다. 그래야 비로소 생협도 전환기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형근 : 본래 생협의 책무에 대해 지역사회 기여만 명시돼있었는데, 이번 개정으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 양질의 일자리, 생태환경 보전 등을 법안에 명시해 넣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이전부터 해왔던 일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후적으로, 법적으로 우리의 활동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본다. 

사실 1998년 생협법이 제정되고 나서도 생협들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10년 사업범위 확대, 연합회 설립 근거 마련 등이 담긴 생협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번 개정의 의의는 사회적 시민권을 보다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시장의 온라인 플랫폼은 IT나 AI 기반의 유통시장 변화라는 엄청난 자본투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생협들이 이에 대응해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조합원의 힘이다. 자본의 문제를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가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생협법을 통해 생협이 사회적 가치를 지닌 조직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민수 : 협동조합 기본법이 2012년 제정되고, 협동조합이 2015년에 1만여 개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생협법 개정으로 3.0 시대를 맞았는데, 실질적인 내용이 현장으로 전파되고 제도와 정책이 바뀌면서 성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성과가 나와야 제도가 바뀌면서 부족했던 부분들이 바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 일자리 양극화, 지역소멸문제 등이 대표적인데, 사회적경제가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생협법 3.0이 더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3만 가지쯤 되는데, 생협은 다 합쳐봐야 5000가지를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 2만5000가지는 시장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생협을 필두로 사회적경제가 이를 시장이 아닌 사회적경제 내에서 조달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하는 것이 과제다. 

이를 위해 플랫폼 협동조합을 조성하는게 어떨까 제안한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기업은 킬러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확산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생협 157만 가구 조합원이 생협 전국연합회를 만들어,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공급하면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생협 비즈니스를 묶어내면 충분히 다른 비즈니스 영역까지 진출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돌봄, 이사 등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서비스 중 2~3가지 정도는 시범적으로 진출해보면 어떨까? 사회적경제기업간 컨소시엄, 협동조합간 협동 모두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윤형근 한살림생협연합회 상무
윤형근 한살림생협연합회 상무

Q. 생협의 남은 과제는?

오귀복 : 법으로 이미 허용돼있는 공제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보험을 질병, 사고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제는 질병, 사고를 포함해 여러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인 것이다. 노동공제, 돌봄, 교육 등을 포함해 여러 가지 영역에서 실험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기존의 보험들의 상상이 너무 제한적이다. 그래서 생협이 새로운 상상을 실현해보려고 공제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윤형근 : 공제는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커뮤니티를 재구성하고 이를 끈끈하게 만들기 위한 틀이다. 꼭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생협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자체를 바꾸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속에서 경쟁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협동을 얘기하기 굉장히 어렵다. 협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가는 작업이 생협 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의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계가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

강민수 : 생협법 4가지 개정안 중 마지막 남은 민형배안까지 통과돼야 한다. 해당 법안에 생협 성장동력 마련 관련 내용이 담겨 있기에 통과가 절실히 필요하다.

생협은 공제를 숙원과제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당장은 정부가 금융관련 규제를 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생협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생협이 성실히 성장해나가면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전략을 취하면 정부도 이에 호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민수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장
강민수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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