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풀뿌리 활동을 이어오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1999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으로 시민권을 얻게됐다. 약 20여 년이 흐른 2020년, 생협은 생협법개정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국회의원과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논의 끝에 총 4개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생협법 개정안이 통과된 생협 3.0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고, 생협과 사회적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생협의 자립적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입법토론회'에서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축사하고 있다./출처=아이쿱생협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생협의 자립적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입법토론회'에서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축사하고 있다./출처=아이쿱생협

“생협의 더 큰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현실에 맞춘 제도의 정비가 꼭 필요하다.” 2020년 11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은 대표적 무쟁점 법안으로 꼽힌다. 5대 생협(두레생협연합회, 아이쿱생협연합회, 한국대학생협연합회, 한살림생협연합회, 행복중심생협연합회) 생협법개정추진위원회가 마련한 4개의 개정안 중 3개가 지난 달 11일, 본회의에서 순조롭게 통과됐다.

생협법 개정을 여야(與野) 3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과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함께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법안 통과가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정논의 출발부터 여야 3당 한 목소리로 “개정 필요”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생협법 개정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 (왼쪽부터)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출처=아이쿱생협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생협법 개정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 (왼쪽부터)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출처=아이쿱생협

생협법개정추진위는 지난해 11월 18일, ‘생협의 자립적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입법 토론회’에서 총 4가지 테마로 13대 개정과제를 제시했다. 당시 윤형근 한살림 전무는 “2010년 생협법 전면 개정 이후 10년간 총 조합원 수가 2.5배 성장했고, 매출액은 2.2배 성장했다”며 “지난 10년간 성장에 걸맞은 새로운 10년을 위한 생협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3당의 대표·위원장급 인사들이 축사를 했다. 여야 3당이 법안 개정에 한 목소리를 모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생협은 그간 식품·농업·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민들의 윤리적 소비문화 조성에 앞장섰다”며 “생협의 더 큰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현실에 맞는 제도 정비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당시 정무위원장)은 “생협이 전보다 넓은 범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저도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고, 김종철 정의당 대표 역시 “생협 활성화와 사회적경제 지원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3당 의원 나눠 발의... 폭넓은 공감대 형성 가능케 해

배진교 정의당 의원(비례)./출처=배진교 의원실
배진교 정의당 의원(비례)./출처=배진교 의원실

이후 생협은 3월, 공정거래위원회 및 정치권과의 논의를 바탕으로 10대 과제를 정리했다.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합의의 결과물이다. 생협법 개정안은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평택을)이 2건을, 배진교 정의당 의원(비례)이 1건,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건을 맡았다. 

주목할만한 점은 각 개정안에서 정당간 ‘교차발의’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의원 3인은 4개 법안에 모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고, 나머지는 대표발의자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공동발의 서명을 받았다.

특히 민주당과 정의당 외에 국민의힘 의원도 법안 개정에 참여한 것이 법안 통과 전략으로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의동 의원실 관계자는 "생협의 가치 및 법안 개정 취지에 공감해 개정논의에 참여하게 됐다"이라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대표발의한 2개 법안이 모두 통과됐다. 유 의원은 본지에 "생협법 개정안 통과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생협 제도 정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앞으로도 생협이 자립적으로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갖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 역시 “생협은 지난 30년 동안 공동체 정신과 안전한 먹거리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해왔다”며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돼 기쁘고, 앞으로도 생협이 우리 삶에 더욱 가까워지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역생협 풀뿌리 조직, 개정안 마련에 큰 역할

유의동 의원과 지역 생협 대표자들은 지난 달 9일, 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오경아 평택시사회적경제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 강윤경 세이프넷지원센터 팀장, 최영신 평택오산아이쿱생협 이사장, 유의동 국회의원, 박은경 평택두레생협 이사장, 김주란 한살림경기서남부 평택지역 이사, 강정구 평택시의회 부의장./출처=아이쿱생협
유의동 의원과 지역 생협 대표자들은 지난 달 9일, 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오경아 평택시사회적경제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 강윤경 세이프넷지원센터 팀장, 최영신 평택오산아이쿱생협 이사장, 유의동 국회의원, 박은경 평택두레생협 이사장, 김주란 한살림경기서남부 평택지역 이사, 강정구 평택시의회 부의장./출처=아이쿱생협

풀뿌리조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협의 특성이 생협법 개정 공감대를 형성하는데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지역생협은 각 지역에서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인정받아 생협법 개정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배진교 의원은 “당원들 중 생협 조합원이 많은데다 평소에도 생협 활동을 지지·지원해왔다”면서 “중앙 생협 활동가들과도 인연이 닿으면서 법안 발의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유의동 의원은 지역구 소재 평택오산아이쿱생협·평택두레생협·한살림경기서남부 평택 등과 교류를 이어왔다. 그는 지난 8월, 생협대표자 간담회에서 “생협법 개정안을 조속히 상정 처리하고, 올해 안에 10대 개정과제를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공정위, 생협 활력 제고방안에 추진과제로 생협법 개정 포함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8일 열린 ‘신뢰 기반 생협 공제의 시행과 기대’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8일 열린 ‘신뢰 기반 생협 공제의 시행과 기대’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 역시 생협법 제정을 추진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9월 30일, 5대 생협연합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활력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해당 자료에 ‘자생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변화된 현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사업추진에 장애가 되는 법·제도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협 회원조합 최대 임원 정수 확대 ▲비조합원의 사업 이용 ‘원칙적 허용’ 전환 ▲생협 및 생협 자회사의 조합공동사업법인 제도 도입 ▲생협 배당금 출자전환 및 회전출자 허용 등을 명시했는데 이는 개정추진위 주도로 발의된 생협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들이다. 

마지막 남은 민형배안, 통과될까?

생협법 개정 촉구 인증사진 모음./출처=아이쿱생협
생협법 개정 촉구 인증사진 모음./출처=아이쿱생협

3개의 법안은 5대 생협과 여야 3당, 공정위의 합의를 바탕으로 원활히 통과됐지만, 마지막으로 발의된 민형배안은 처리여부가 불투명하다. 우선 12월 중에 국회 정무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을)은 "연내 법 통과를 염원하는 생협 조합원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라면서도 "법안 자체에 대한 큰 이견은 없는만큼 곧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 의원은 "여야 3당이 함께 힘을 모아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것 자체가 개정 필요성을 증명한다. 생협의 정체성 및 조직 기반을 강화해야 하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 것"이라며 "법안 개정으로 소비자 복지수준 향상은 물론이고, 시민 생활문화도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생협은 민형배안까지 통과되면 약 20년간 고민거리였던 문제를 해결하고 비로소 생협 3.0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백운정 아이쿱생협 부회장은 “생협법 10대 개정과제는 다른 협동조합에 비해 생협에 대한 차별과 뒤처지는 법적 장치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생협법 개정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 확대, 친환경 농업의 확산, 소비자의 복리 증진,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발전 등을 한층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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