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10년 생협법 개정으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도 공제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생협 관리감독 주무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후속 시행령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아 12년째 생협 공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주요 생협 주체들은 공제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며 빠른 시행을 촉구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로운넷>은 생협 공제 시행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와 바람직한 추진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전문가 기고를 받아서 연속으로 게재한다.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노년의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미래가 우리에게 보장돼 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누구나 아프고 병들어 고립된 노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낀다. 통계청의 <2020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를 점하고 있으며, 그 중 노인의 자살률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의 불안은 점차 현실에서 수치로 표현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상의 문제,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으로 노인 삶의 질이 하락한다. 

우리가 불안하고 두려운 이유는 미래를 보장하고, 현재를 잘 살아가게 하는 사회 안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 안전망은 시장에 내맡겨져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 다양한 삶의 필요를 만들어 가고자하는 결사체가 바로 생활협동조합이다. 우리는 생협을 통해 생활권을 기반으로 삶의 다양한 필요를 만들어가고, 실천하고 있다.

한살림의 경우 지역을 기반으로 먹거리 관계망을 형성하여 생명을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한살림의 먹거리 운동은 ‘먹는 것’ 자체의 의미에서 더욱 확장되어 생명의 필수재인 ‘생활의 필요’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충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고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고민을 기반으로 ‘돌봄’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생협의 먹거리와 돌봄 운동을 관통하는 핵심은 그간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시장에 내맡겨져 있어 각자의 필요를 알아서 찾고,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면 이제는 협동의 방식으로 서로의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돌봄은 ‘관계’보다는 ‘효율’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돌봄을 받는 이들의 필요를 시장의 어법에 따라 규정했다. 효율을 앞세우는 돌봄에서 개인의 주관적 삶의 필요는 고려 대상이 될 수조차 없었다. 노인 돌봄의 기능을 담당해오던 요양 시설의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악명 높은 이름은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먹거리와 돌봄 같이, 생협에서 협동의 방식으로 서로의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새로운 기획 중 하나가 ‘공제’다. 미래의 알 수 없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으로 재산을 준비하는 ‘공제’는 시장에 내맡겨져 경제적·신체적 조건이 부합하지 않으면 누군가 배제될 수 있는 상품인 ‘보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보험회사는 사회의 불안 요소로 예측되는 상황을 ‘상품화’하여 판매한다. 이 경우에도 시장에 의해 개인의 필요가 규정되는 방식이다. 

또한 보험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모든 개인의 불안함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보험 가입 시에는 자신의 장애 또는 질병 이력으로 인해 부담보가 잡히거나 담보 제한이 걸릴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가입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보장을 받는 단계에서는 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금액을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장이 이루어지는데, 여러 가지 상황적 요인이 고려돼 100% 환급이 어려운 경우도 존재하지만, 개인의 삶을 보장하는 방식을 ‘의료 중심’, ‘효율 중심’으로만 사고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시설로 입소하여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 유일한 것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문제의식과도 연결된다. 우리 사회에는 의료기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질병이 있다. 노인 자살률이 높은 원인 중 하나가 사회적 고립감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생활 협동의 새로운 기획인 생협 공제는 보장의 내용 또한 사회적 돌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서로 돌봄’ 말이다.

필요가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가입 단계에서도, 보장 단계에서도 삶의 안정을 위한다는 보험 ‘상품’은 결국 불안정한 삶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책임에 따른 모든 부담도 오롯이 개인이 지게 한다. 결국 또 다시 개인은 고립된다. 이 지점에서 생협의 공제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해준다. 미래 불안에 대한 대비를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훨씬 안정적일 것이며, 때문에 살아가는 현재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공제를 통해 우리는 기존처럼 주어진 보장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 주관적 삶의 필요를 이야기하고, 반영하는 방법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생협의 공제는 단순히 ‘비영리 보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생협의 조합원들, 지역주민 사이의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은 우리의 현재를 파괴하기도 한다. 연결되는 관계 속에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새로운 협동의 방식이 필요하고, 생협의 공제는 이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다.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시장의 논리로는 불확실한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나의 삶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해왔다. 생협의 공제사업은 대안적인 삶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협동운동이다. 생협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무성의, 간섭으로 인해 가로막히는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대안운동이 실현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상상력이 제한되지 않도록 연내 조속한 생협 공제의 시행 방안 마련, 정부 차원의 포괄적 지원 등의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