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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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라는 큰 정치적 일정 때문인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그에 화답한 북한 측의 전격적인 남북 통신선 복원 이야기가 벌써 먼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남과 북 사이에 다시 직통연락을 위한 전화선이 복원된 것은 그간 단절되었던 남과 북 사이의 대화가 다시 시작될 최소한의 계기가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통신선 복원과 함께 김여정의 담화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언급 등이 있었지만,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시작 혹은 그를 위한 최소한의 시나리오라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것임을 이야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급진전을 이루며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면서 남북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올 것을 모두가 기대했다. 그러나 이후 오히려 북미회담 결렬 등 남북관계는 차갑게 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계기로 다시 조심스럽지만 새롭게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분단된 지 벌써 70년 세월을 훌쩍 지나고 있어, 남과 북 각기 분단 이후의 다른 세대가 남과 북의 중심이 된 지 꽤 되었다. 지난 평창 올림픽에서의 남북단일팀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그런 세월의 변화를 드러내 준 일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생각한다면 그런 인식의 차이를 현실로 인정하고 남과 북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분단의 경험이 있는 독일의 경우, 당연히 분단과정이 다르고, 또 그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의 경험을 살피면 도움이 된다. 독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교류를 하다 각종 이념 공세와 정치적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일관되고 꾸준한 정책집행이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동서독간의 교류를 살펴보면 이념이나 정치적 논란보다 서로 합의된 과제와 일상적인 교류를 위한 협정에 많은 시간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서독간에 장벽이 설치된 후에는 교통과 통신협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고, 그 중 일상적인 교류를 위한 통행증 협정과정의 사례를 살펴보면 합의된 과제를 위한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과정으로 접근할 때 훨씬 실효적인 성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 2년 전 베를린에 머물며 마침 당시 교류 과정에 참여했던 베를린 시의 관료나 당시 동독 총리 등 관계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해 준 조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협정의 논의과정에서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독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특성상 중앙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하게 된다. 이는 ‘협정’의 당사자로서 지위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획득하게 됨으로써 갖는 인정 효과를 가져왔다. 지금의 북한은 그런 상태가 아니지만 이런 예는 교류와 협력의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것이 실제적인 논의를 원활하게 만들어 준다는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이번에 북한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했음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2. 동서독간의 교류 협력, 특히 기술적 교류협력을 결정한 문서를 살펴보면 ‘상관의 위임을 받아’라는 문안이 등장한다. 이는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이나 이념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의미있는 접근이다. 동서독의 이 경험은 특정한 의제가 이념적이거나 정치적 문제가 아닌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문제라는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교류 협력 과정의 불필요한 긴장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 온 것으로 보인다.

3. 인터뷰에 응해 준 사람들은 모두 교류 협력의 과정을 확장하는 데 있어 정부가 과감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특히 방송과 언론은 개방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지만 방송과 언론의 개방이 한국 사회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공통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4. 또한 끈질겨야 한다는 점도 공통적인 제언이다. 3차에 걸친 통행증 협정은 장벽의 설치 이후 부터 10년 가까이 계속된다. 협정을 맺는 ‘과정’ 자체가 교류와 협력을 통한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므로 협정 합의라는 성과에 조급하게 매달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언을 하고 있다.

5. 교류나 협력은 구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진행중이거나 진행했지만 중단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이산가족 상봉, 철도연결 등과 같은 과제다. 선언적이고 정치적 의제들 보다 구체적인 교류협력이 실제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6.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용어와 언어로 인한 논란을 피하는 것이다. 모든 협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상호 합의할 수 있는 용어와 언어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7. 모든 교류협력의 과정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자료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자료를 만드는 것을 권하고 있다. 만들어진 자료들이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만한 요소들이 있는 경우 자료화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8. 모든 협정과정은 통합 이후를 고려해야 한다. 제도를 통합하면서 생기게 되는 갈등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에 적극적인 시민참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같은 조언을 발판 삼아 이제 다시 시작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남과 북이 보다 실질적으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여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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