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에서 우리 여자배구 대표팀은 예상 밖의 선전으로 4강에 올랐다. 4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세계 4위의 터키를 꺾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경기에서 진 터키 선수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로 국가적 재난 상태인 고국에 메달을 안겨주려던 것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기상 재해

현재 터키는 남부 지역 대부분이 열흘 넘게 화마에 휩싸여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몇 달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폭염과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던 가운데 발생한 산불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터키뿐만이 아니다. 그리스는 기온이 45도까지 올라가 30년 만에 최고치였고,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두 달간 무려 3만7000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남부 유럽 전체가 비슷한 상황이다. 7월에는 갑작스러운 홍수로 독일과 벨기에가 큰 타격을 입었다. “역사적 재앙”이라고 했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였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도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재난 영화의 현실화 가능성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해류가 멈춰서 지구 북반부에 소빙하기가 갑작스럽게 닥치는 재난 상황을 묘사했다.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해류가 멈춰서 지구 북반부에 소빙하기가 갑작스럽게 닥치는 재난 상황을 묘사했다.

영화 ‘투모로우’는 온난화 가속으로 지구의 기온이 계속 상승하는 와중에 갑자기 소빙하기가 닥치는 재난 상황을 소재로 삼았다. 지구는 뜨거워지는데 갑자기 빙하기가 온다니 영화적 상상력인 것 같지만 빙하기 끝 무렵이던 약 1만 2000년 전, 갑자기 북반부가 다시 꽁꽁 얼어붙은 영거 드리아스(Younger Dryas) 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지구 표면의 70%는 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는 바닷물이고 3%만 담수, 즉 민물이다. 땅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기후변화는 바로 물의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 최근 가디언지는 ‘기후 위기: 과학자들이 멕시코 만류가 멈추는 위험 신호를 감지’(Climate crisis: Scientists spot warning signs of Gulf Stream collapse)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멕시코 만류의 흐름이 둔화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멕시코 만류가 아주 느려지거나 정체 상태에 이르면 지구에 가공할 만한 피해가 발생한다. 인도, 남미 대륙, 서아프리카 지역은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게 되고 해당 지역에 사는 수십억 명은 식량 부족으로 생존을 위협당하게 된다. 유럽은 빈번한 폭풍과 기온 하강을 겪게 되고, 북미 대륙의 동부 해안의 해수면이 크게 높아져 해안가 도시들이 침수 위기에 놓인다. 영화 투모로우가 가정한 것은 해류의 흐름이 멈춰 지구의 기후 조절 시스템이 고장 나는 상황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다.

해양 컨베이어 벨트 오작동과 지구 온도 조절 시스템 셧다운

지구 해류의 흐름을 흔히 해양 컨베이어 벨트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적도 인근에서 발생한 멕시코 만류는 북미 동부 해안을 따라 북상한 후 대서양을 가로질러 서유럽과 영국 사이를 지나간다. 적도 지역은 고온이라 증발이 많고 강우량이 적어 바닷물의 염도가 높다. 소금기를 잔뜩 품은 멕시코 만류는 그린란드 인근 북극해에 도달한다. 밀도가 높아진 멕시코 만류는 가라앉게 되는데 그러면서 아래 있던 물을 힘차게 적도 쪽으로 밀어낸다. 북극에서 밀려난 물이 적도를 거쳐 남극으로 갔다가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을 순환한다. 이 과정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가 물건을 나르듯이 바닷물을 이동시킨다고 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해류가 지표면 전체를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 북극 지역은 따뜻해지고 적도 지역은 시원해진다. 해류의 흐름은 지표면 전체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지구의 온도 조절 시스템이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북극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고 있다. 빙하는 바닷물이 아닌 담수로 만들어져 있다. 빙하가 녹으면서 엄청난 양의 민물을 바다에 쏟아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결과 극지방에 도달한 해류의 염도가 낮아진다. 염도가 낮아진 물은 가벼워서 가라앉지 않고, 아래 있던 물을 밀어내는 힘도 줄어든다. 극지방의 물을 지표면 곳곳으로 배달해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동력이 약해짐을 의미한다. 해양 컨베이어 벨트는 지구가 가진 온도 조절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오작동이라면 빨리 고쳐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오작동이 심해지다가 완전히 셧다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위협당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지구 온난화가 티핑 포인트에 접근하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대책을 세우고 전 지구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과학자들이 지속해서 경고해왔다. 그런 경고가 무색하게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대 이래 전 세계적으로 무려 60%나 증가했다. 인류는 지구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상처를 계속 입히고 있는 셈이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한 인류의 공동대응은 2015년에 체결된 파리 협정으로 처음 구체화하였다. 파리 협정에 참여한 195개 국가는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이후에는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합의했다. 뜻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인 행동이 빨리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50% 감소시켜야 한다. 올해가 지나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8년이다. 그 기간에 화석연료 사용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만약 2030년대까지 파리협정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구의 기후 위기가 티핑 포인트를 지난 상황은 상상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가공할 재앙이 기다리는 미래는 우리의 자식, 손주 세대가 맞닥뜨릴 현실이다.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외출 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처럼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산소마스크 착용이 필수일 것이다. 지표면 온도의 상승으로 모든 활동은 실내에서 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지구의 인구다. 지금 추세라면 지구의 인구는 2030년대에 80억 명대에 도달한다. 그 많은 인구가 일상생활을 할 실내공간을 만들고 식량을 재배 공간까지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그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지구 전체가 열대화가 되면 뎅기열이나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일반화되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과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사회적 의료비용 또한 대폭 상승하게 된다. 그 비용은 또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수백, 수천 년을 거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이 붕괴되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을 것이다. 일부 국가가 경험한 이웃 나라 난민 유입 사태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국가는 국경을 걸어 잠그게 된다. 넘으려는 사람들과 넘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은 무력 충돌을 불사할 것이다. 전 지구적인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인류 자신

음울한 시나리오는 차근차근 현실이 되어갈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과연 인류에게 남은 것은 기후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하는 일밖에 없는 것일까. 작년과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전 지구적 위기가 닥쳤다. 몇몇 국가들이 백신을 먼저 생산해서 접종하고 국경의 문을 닫아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모두 절감했다. 전 지구적 위기는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생생한 교훈을 얻는 중이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사전 예행연습을 했다고 봐야한다.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자본과 기술을 총동원하고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공동의 실천을 집중적으로 한다면 지구의 기후 시스템 오작동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협정의 산파 역할을 한 크리스티나 피구에레스 유엔기후협약 전 사무총장은 “인류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지금 인류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실패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구원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온다. 이제 전 인류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어영부영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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