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경을 둘러싸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연초부터 약 12만 명의 병력과 각종 무기를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시켰다. 미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러시아군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고 수도 키예프의 미국 대사관에 대피령을 내렸다. 김빼기 전술이겠지만 러시아군의 공격 날짜까지 예고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전쟁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지금까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양차 대전 모두 유럽에서 시작됐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 세계와 러시아가 격돌하는 모습은 데자뷔다. 전쟁은 어느 한쪽의 치밀한 계획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우연적인 요소가 중첩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발하는 것이 전쟁이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실제 전쟁 발발 여부와 그 시점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다. 전쟁 발발 가능성과 무관하게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다시 짚어봐야 한다. 원인과 과정을 알아야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졌던 푸틴의 경고와 러시아군 증강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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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러시아군 병력과 무기의 집결은 지난해부터 차근차근 이뤄졌다. 기습적인 공격을 위한 것이라면 병력 이동 상황이 서구 미디어에 도배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포석임이 쉽게 추측된다. 아니나 다를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과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에게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핵심은 구 소련시절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던 동유럽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구 소련 연방 국가 다수가 이미 NATO에 가입한 상황이라 메시지는 분명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절대 손대지 말라는 공개적인 경고였다. 자신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하겠다는 암시가 뒤따랐다.

러시아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한 바 있다. 도대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무엇이길래 국제 사회의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권 국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불사하는 것일까? 그 배경과 이유 대한 분석은 차고 넘치지만 핵심은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당의 원인

부잣집 남자인 러시아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밀당을 하는 것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한때 사랑했던 두 남녀는 남자의 가세가 완전히 기울면서 여자가 이별을 통보하고 새로운 남자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인 남자는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여자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한편 출중한 미모의 여자는 자기 정도면 얼마든지 더 나은 조건을 갖춘 남자를 사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꾸준히 구애를 하는 새로운 남자가 이미 존재한다. 이별을 원하는 여자를 용납할 수 없는 남자는 아무리 달래도 여자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자 급기야 폭력을 써서라도 이별을 막겠다고 난리를 치는 셈이다.

뼈대 있는 부잣집 가문은 범슬라브 제국을 상징한다. 루스족과 슬라브족이 연합해서 세운 키예프 공국은 12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종말을 고했으나 루스족 정체성의 근원이다. 루스(Rus)족의 후예가 바로 러시아(Russia)다. 모스크바 대공국이 세워지면서 과거의 명맥을 이었고, 그 후 러시아 제국의 모태가 됐다. 키예프가 있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역사적, 문화적, 정서적 요람이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떨어져 나간 다른 국가들과 평면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그 상징성만큼 우크라이나의 실질적 중요성도 크다. 

러시아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실리

우크라이나는 지구 상에서 가장 비옥한 흑토 면적을 갖고 있다. 국토 대부분이 경작 가능해 ‘유럽의 빵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자랑한다. 철광석 매장량 세계 1위, 석탄 매장량 세계 6위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그래서 구 소련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군수 및 중공업 단지를 건설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유럽 전체 천연가스 소요량의 40%를 공급하는 러시아의 천연가스관 상당 부분이 우크라이나를 경유한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연방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NATO 회원국인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NATO와 러시아 사이에 사실상 마지막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지막 보루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다.

동해의 작은 돌섬인 독도에도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는데 유럽에서 2번째로 영토가 큰 우크라이나, 한때 자기들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에 서방 세력이 끊임없이 손을 뻗치는 것을 좌시할 러시아가 아니다. 범슬라브 민족주의가 고개 들었고 여기에 푸틴은 불을 댕겼다. 그간 푸틴은 구 소련 연방의 붕괴는 ‘역사적 러시아’(historical Russia)의 소멸이었으며 반드시 회복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자신은 범슬라브 제국을 재건할 책임을 지닌 운명적 지도자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불가분의 부부 관계로 제국 건설에 반드시 동참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삼각관계를 원하는 우크라이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기

너는 내 운명이라며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러시아)를 두고 여자(우크라이나)는 새 남자(NATO)와 저울질을 하는 모양새다. 1991년 구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도 독립했다. 계속해서 친러파 대통령이 선출돼 양국 관계가 돈독했기에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러시아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친서방 노선을 표방한 빅토르 유셴코가 푸틴이 뒤를 밀어준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누르고 제3대 대통령이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오렌지 혁명’으로 명명된 2004년 반정부 시위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러시아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친러파들이 대동단결한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야누코비치가 정권을 잡는다. 야누코비치는 EU와 경제협약을 맺고자 했고 화들짝 놀란 푸틴이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하면서 EU와의 딜을 깬다. 오렌지 혁명으로 권력을 교체한 경험이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자신들의 뜻을 저버린 야누코비치를 권좌에서 내쫓는다. 

러시아와의 연대감이 별로 없는 우크라이나 청년 세대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전체 국민 75%가 1991년 소련 연방 해체 이후 출생했다. 미래는 러시아가 아니라 EU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청년 세대가 민주화 시위의 주된 세력이었다. 피 끓는 청춘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인접한 러시아로 번져 나갔다.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도 증가와 만연한 부패와 경기침체에 대한 염증으로 러시아 청년들도 민주화 시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푸틴이 선택한 돌파구는 크림 반도 병합이었다. 1783년 러시아 제국 예카테리나 2세가 크림 반도를 합병한 후, 흑해로 진출하기 위한 교도부로서 부동항을 확보하는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러시아의 국익이었다. 그런 크림 반도를 되찾았으니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 푸틴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푸틴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 러시아 돈바스 지역이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내전에 돌입하도록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반격

우크라이나는 이런 위협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다. 2019년 대선에서 당시 41세의 정치풍자 코미디언 출신의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상징적이다. 최연소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NATO 가입을 공식화하고 크림 반도 반환을 요구하기 위해 ‘크림 플랫폼’이라는 반러 연대 기구를 출범시키는 등 푸틴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참에 독립 움직임의 싹을 완전히 잘라놓겠다는 푸틴의 의지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 배치된 약 12만 명의 대군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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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되지 않는 러시아군의 압도적인 승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진짜로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이 질문은 매우 복잡한 답변을 이끌어 낸다. 러시아군이 현재 배치한 병력은 약 12만 명인데 최대 17만5천 명까지 증파할 것이라고 한다. 양국의 군사력을 비교할 때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맞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지만 현실은 절대 녹녹치 않다. 우선 러시아군이 동원한 병력 규모가 전면적인 공격을 하기에 절대 부족하다. 미군이 이라크와 전면전을 벌였을 때 연인원 100만명 규모의 병력을 동원했었다. 비록 우크라이나군이 절대 열세라고 하나 상비군 약 25만 명에 전시 동원 가능 예비군이 100만 명을 보유하고 있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 러시아군에게 큰 출혈을 강요하게 된다. 우크라이나군의 무장은 구 소련 시절 무기가 대부분이지만 미국은 약 2억 달러 어치의 최신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이행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무장세력과 수 년째 내전을 벌이고 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해서 자국 영토의 익숙한 지형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면 러시아군은 압도적인 승리를 절대 장담하지 못한다. 

군사적 승리가 초래할 역효과

천신만고 끝에 군사적 승리를 거뒀다고 해도 국제정치적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과의 내전으로 지금까지 약 1만3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13%가 러시아 계고, 3분의 1 이상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의 여론이 완전히 반 러시아로 돌아선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다면 푸틴이 주장하는 ‘같은 영혼을 가진 한민족’이라는 전제가 무너진다. 총칼로 같은 형제의 피를 흘리게 해 놓고 함께 과거의 영광을 재건하자면 누가 공감하고 동조하겠는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안쪽으로 밀고 들어와 일부 지역을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가 총 단결해서 침략군을 물리치고자 할 것이고 반러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군사 기구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돼 국가 방위를 의존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푸틴의 계획은 역설적으로 NATO를 더 강화시킬 수 있다. 러시아군이 대놓고 침략을 하는데 우크라이나 주변 NATO 국가들이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면 다른 회원국이 같은 꼴을 당해도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대대적인 NATO강화론이 득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내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외부와의 전쟁

그런 부정적인 결과가 이미 예상된다면 도대체 푸틴은 이 전쟁을 왜 하려고 하는가? 작년에 ‘푸틴이 가장 무서워하는 남자’라는 칭호를 얻은 러시아 정치가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살 미수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이 일었다. 나발니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거침없이 푸틴 행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러시아 청년 세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반정부 활동을 이유로 3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그만큼 푸틴 체제를 위협할 인물로 꼽힌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계속 증강 배치하고 과거 러시아의 영광 재현과 NATO에 의한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던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 우크라이나 민주화를 추동하는 우크라이나 청년 세대와 러시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러시아 청년 세대가 연대하게 되면 그 파괴력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권력 안정화와 잠재적인 위협 요인의 제거할 명분을 얻기에는 외부로부터의 위협만 한 것이 없다. 

어쩌면 푸틴은 내부의 적과 전쟁을 하기 위해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이는 시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부적 요인에 의한 전쟁이라면 외부적 요인의 변화와 무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푸틴이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 형태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내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전쟁을 밖에서 벌이고 있다는 추측이 맞다면 군사적 긴장은 계속 고조되지만 실제 무력충돌은 벌어지지 않는 현 상황이 충분히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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