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세트 출시일의 3가지 색깔

맥도날드가 출시한 보라색 BTS(방탄소년단) 세트./출처=맥도날드
맥도날드가 출시한 보라색 BTS(방탄소년단) 세트./출처=맥도날드

오전 11시가 되자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모든 맥도날드 매장 안으로 연두색 재킷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앞다퉈 음식을 픽업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야단법석이었다. 가져가려는 메뉴는 동일했다. 보라색 케이스에 담긴 ‘BTS(방탄소년단) 세트’였다. 

BTS 세트 출시일에 벌어진 한바탕 소동인데 여기에는 빨간색, 보라색, 연두색의 3가지 색이 겹쳐있다. 빨간색은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상징 색깔이다. 그런 맥도날드가 BTS의 상징색인 보라색을 사용한 특별한 메뉴를 선보였다. BTS 상징색이 보라색이 된 것은 멤버 뷔(V)가 팬 미팅에서 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보라색처럼 팬인 아미(Army)와 BTS가 끝까지 함께 서로 사랑하자고 한 데서 비롯했다. 이를 응용해서 I Love You 대신 ‘I Purple You’, 사랑해 대신 ‘보라해’가 아미들에게 통용된다. 동남아시아의 BTS 팬들 사이에서는 ‘보라해’(Borahae)가 널리 쓰이고 있다.

연두색 자켓을 착용하고 보라색 BTS 세트를 픽업하는 남자들은 인도네시아 최대 배달 서비스 업체 고젝(Gojek)의 라이더다. 인도네시아 방역 당국이 BTS 팬들이 맥도날드 매장에 대거 몰릴 것을 우려해 온라인 주문과 드라이브 스루 픽업만 허용해서 생긴 진풍경이었다. 단시간에 얼마나 많은 주문이 몰렸던지 맥도날드 매장은 하나 같이 연두색 유니폼을 입은 배달원으로 가득 찼고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방역 지침 위반을 이유로 24시간 동안 매장 폐쇄 조치를 내리고야 말았다.

BTS 마케팅이 보여주는 동남아시아 시장의 흐름

빅맥지수가 있을 만큼 맥도날드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진출해있다. BTS 세트는 맥도널드가 특정 유명인과의 협업을 통해 한시적으로 출시하는 ‘셀레브리티 시그니처 메뉴’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일부 국가, 지역에 국한해서 진행했다. 그런데 BTS 세트는 총 50개 국가에서 동시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취했다. 

빨간색 맥도날드의 보라색 BTS 시그니처 메뉴가 연두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하는 고젝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지금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고젝은 인도네시아 토종 차량공유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자가용을 소유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하위소득 중산층을 겨냥한 서비스였다. 고젝은 곧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했다. 

차량공유, 배달, 온라인 결제 서비스 그리고 온라인 쇼핑 플랫폼

인도네시아 최대 배달 서비스 업체 고젝 라이더 사진./출처=고젝 홈페이지
인도네시아 최대 배달 서비스 업체 고젝 라이더 사진./출처=고젝 홈페이지

빠르고 편리하며 쾌적한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하고 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부실한 환경은 사람들의 소비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곳까지 이동하려면 작심하고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서 한 번 가면 원스톱 쇼핑과 외식을 할 수 있고 문화적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쇼핑몰에 모든 상점과 식당이 집중된다. 그 결과 중소규모의 개별 상권이 발달할 여지가 없어진다. 

이것을 단번에 180도 바꿔버린 것이 고젝과 같은 회사다.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뚫고 번거롭게 쇼핑몰에 가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물건, 음식을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구입하는 편리함을 제공했다. 한번 익숙해지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편리함이다. 다음 수순은 온라인 결제다. 굳이 은행 앱을 이용해서 대금을 송금할 필요 없이 은행 계좌와 연동시킨 결제 앱으로 간단히 지불하게 한다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결제 앱을 사용할 것이다. 

배달과 결제 비즈니스는 장악했다면 최종적으로 주문을 쓸어 담을 플랫폼을 가져야만 시장의 지배자로 우뚝 서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 고젝과 인도네시아 최대 온라인 쇼핑 사이트인 토코페디아(Tokopedia)가 합병하기에 이른다. 각각 105억 달러(12조 원)와 75억 달러(8조 원)의 기업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고젝과 토코페디아가 합쳐짐으로써 180억 달러(20조 원)의 기업가치를 지닌 거대 공룡 기업이 새로 출현했다. 차량공유 경제에 기반한 스타트업이 배달업에 이어 온라인 결제로 영역을 넓힌 후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흐름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BTS 사례가 보여주는 소비 흐름의 변화

BTS의 온라인 팬미팅인 '2021 muster 소우주' 메인 포스터./출처=하이브
BTS의 온라인 팬미팅인 '2021 muster 소우주' 메인 포스터./출처=하이브

소비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는데 BTS 사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BTS에게 동남아시아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시장의 규모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데 국가별 BTS 아미의 순위를 매기면 1위 필리핀, 2위 한국, 3위 인도네시아, 4위 베트남, 5위 태국으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1~5위가 모두 동남아 국가다. 앞서 예를 든 맥도날드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이 BTS를 광고 모델로 세우려고 줄을 서 있다. KB국민은행은 동남아 시장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었는데 인도네시아를 교두보로 삼고자 현지 은행을 인수하며 시동을 걸었다. 후발주자로서 인지도를 단기간에 끌어 올리려고 BTS를 광고 모델로 섭외했고 이 전략은 주효했다.

BTS는 단지 K-Pop을 선도하는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BTS 현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새로운 흐름 만들어가고 있다. 기존의 K-Pop은 몇몇 그룹과 곡이 일시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인기를 끈 수준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대중음악계 입장에서는 일부 매니아 층만 즐기는 비주류음악에 불과했다. 그런데 BTS는 자신들의 음악을 지역, 인종, 연령,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인이 향유하는 주류 음악으로 만들었다. 

메시지에 대한 공감과 쌍방향 소통이 이끄는 소비 

그렇게 된 데에는 BTS 노래와 퍼포먼스의 장르적 완성도와 별도로 곡에 담긴 메시지가 팬들과 쌍방향으로 소통되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는 분석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통은 수용자인 팬이 노래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독자적으로 재해석하고 내면화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BTS를 필두로 한 K-콘텐츠가 보편성을 획득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주류 문화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K-콘텐츠는 나와 무관한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K-콘텐츠를 소비하려고 하는 것이다. K-콘텐츠는 대중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영화 ‘1987’, ‘변호인’, ‘택시 운전사’는 한국 현대사의 특정 순간을 다루고 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영화화된 것이라 우리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본 홍콩, 태국,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의 지난 역사를 현재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재해석한 후 내면화했다. BTS의 음악과 같은 형태의 소통이다. 

남이 생산한 것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해서 소비하는 것이 동남아에서 K-콘텐츠와 관련 상품이 소비되는 새로운 방식이다. 소통이 가능한 상대에게는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지갑이 열린다. 우리에게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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