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세계적대유행(팬데믹). 사회적 재난이 1년 이상 계속되며 언제쯤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재난 상황에서 사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취약한 상태에 놓인 구성원을 찾아 보호하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피해를 막는 일이다.

집과 동네에 머물 시간이 많아진 이 기간 학습격차, 결식아동, 학교폭력이 심해지고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 질병도 늘어났다. 산불과 같은 자연재난도 증가했다. 2019년 한 해 산불은 8건 발생했는데, 올해는 2월 21일과 22일에만 강원도 정선, 경북 예천과 안동, 충북 영동, 경남 하동 등 9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로 전국 300ha의 산림(축구장 420개분)이 소실됐다. 산불 증가는 지구온난화로 이어진다. 기후위기 탓에 산불 외에도 더 많은 자연재해가 생길 것이다.

종로구 창신동. 골목길에 건물과 전봇대, 통신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 만약 태풍으로 전봇대가 쓰려지거나 전력사고로 연달아 정전, 화재 발생시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 창신동. 골목길에 건물과 전봇대, 통신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 만약 태풍으로 전봇대가 쓰려지거나 전력사고로 연달아 정전, 화재 발생시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는 산불, 극한 강수, 지진, 정전, 다중밀집시설의 화재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재난 및 안전관리법'에 따라 전국 80여 재난관리기관이 지정돼 있고 중앙 안전관리 민관협력위원회 및 지역별로 재난 민관협력체계가 갖춰졌지만, 실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동해야 할 방침, 이웃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공동체 재난대응계획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공동체 재난대응계획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지진, 화재, 침수, 가스누출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피해 인명피해를 없애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비 태세를 지역사회가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계획은 코로나 방역지침처럼 하향식으로 정밀하게 만들어도 막상 재난이 닥쳤을 때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위기 시 사람은 공황에 빠지기 쉽고,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의 공동체 재난대응계획과 안전지도는 주민과 행정, 전문가, 학교, 기업 등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개발하고 여러 번 검증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골목길이 많은 오래된 마을, 재래시장, 다중밀집시설이 많은 번화가에서는 위험 요소(화재, 싱크홀, 건물 붕괴 위험도 등)를 점검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난 경로, 대피시설, 피해 범위, 구조 도착 소요 시간, 방재 도구 소재, 긴급식수 시설, 정보 공유와 전달방법을 실험하고 주민과 이용객, 거주자들의 피난계획을 세워 모의 훈련을 해봐야 한다. 조력이 필요한 이웃이 어디에 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일도 필수다. 지역에 따라 위험 요소가 다르고 주민의 대응력과 생활 모습이 다르므로 당사자들 참여 없이는 어떤 계획도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리빙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리빙랩은 최종 이용자인 시민과 사회를 중심에 두고 상품과 서비스를 설계하고 정책을 만드는 방법이다. 일상생활과 일을 연구개발의 장으로 삼아서 데이터를 축적, 시민과 연구자가 함께 분석해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리빙랩을 통해 공동체 재난대응계획과 우리 동네 안전지도를 작성하고 재난대응 시 필요한 도구를 개발, 보급하는 과정에서 실제 적용 가능한 계획과 행동요령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당사자들의 유대와 상호 신뢰가 형성되어 심리적 안전지대가 확장될 것이다. 지역사회의 힘은 위기 시 취약한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아직은 체계만 마련된 지역별 재난관리 민관협력체계를 행정 차원에서 관리하려고 가두지 말고 나와 내 이웃, 마을을 재난에서 보호하는 리빙랩 활동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대한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지정 재난관리기관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김형미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김형미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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