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가 주최하는 ‘리빙랩과 젠더’ 1회 포럼이 열렸다. 이후 지난 4월 27일까지, 5회에 걸쳐 ‘리빙랩과 젠더’를 주제로 실제 리빙랩 활동주체인 여성을 비롯해 리빙랩을 연구하는 연구자, 사회적경제 분야, 과학기술정책 분야 전문가들이 포럼을 진행해왔다. 특히 해당 포럼은 9월의 서울, 10월의 경남 마산, 11월의 강원 원주 등 개최지를 지역 곳곳의 리빙랩 현장으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지역 리빙랩을 주도하는 여성을 발굴하고 지역의 현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리빙랩을 젠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기획 의도가 있다.

리빙랩 본질이 사회문제 해결에 파격적으로 사용자를 참여시키는 거라, 필연적으로 그간 주변에 머물렀거나 가시화되지 않은 여성들의 의미 있는 시도가 빛을 발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 풀뿌리 여성운동 주체들은 살림과 돌봄의 영역에서 공공 행정자원, 민간의 시장자본주의가 닿지 않는 영역을 책임졌다. 하지만 그동안 ‘주변화’ 됐던 안전과 건강의 문제, 존엄의 문제가 재평가되는 시점이 도래하면서 여성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 성대골 에너지마을의 사례는 리빙랩을 통한 여성의 지역사회혁신의 대표적 사례로서 지역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여성의 리빙랩 활동을 보여준다.

성대골 마을공동체는 2010년부터 리빙랩이라는 방법론이 아직 뿌리 내리기 전에도 마을공동체의 이름으로 마을 내의 교육, 문화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직력을 쌓아왔다. 2010년 성대골의 주민들은 마을 인근에 학교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은 도서관 건립 운동을 시작한다. 이때 작은 도서관 건립 운동의 주체가 된 것이 마을 내 풀뿌리여성 조직이었다. 그리고 2010년 1월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였고, 주민들의 노력이 모여 완성된 도서관은 공동체 운동의 시초가 되었으며, 주민들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체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후 2011년에는 8명의 여성이 ‘도서관 지킴이’ 활동을 시작해 어린이 도서관에서 여러 교육 강좌 및 워크숍을 열었으며, ‘작은 초등학교 만들기 운동’을 진행했다. 작은 초등학교 만들기 운동은 가까운 초등학교가 없다는 지역 내 어머니들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부지 문제로 학교 건립은 실패했지만 2012년 '마을 학교'를 열었다. 풀뿌리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아동·청소년에 관련된 문제의식은 이외에도 아동·여성을 위한 안전지도 만들기, 무상급식 투표에 관한 나쁜 투표 반대 운동, 상도초등학교 인조 잔디 설치 반대 운동, 어린이 기자단 활동 등으로 이어졌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어린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운동의 방향성이 크게 선회하는 계기가 됐다. 주민들은 2011년 3월 이후 국내 여성환경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탈핵, 탈원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체적인 학습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후 이러한 문제의식과 학습을 적용해 자체적으로 각종 에너지 교육, 에너지 절약 캠페인 등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20일, 성대골 에너지마을은 여성민우회생협 행복기금으로 ‘우리동네 녹색아카데미’를 열며 실천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12월에는 에너지 절약과 전환 실험의 일환으로 성대골 절전소를 만들어 절전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공동체 기반의 에너지 절약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에너지자립마을을 조성해왔다. 성대골은 서울시가 추진한 제1호 에너지자립마을이다.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여성 참여.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여성 참여.

성대골 에너지마을 사례에 나타난 여성의 리빙랩 참여는 다음의 특징을 가진다. 먼저, 도시재생과 에너지 전환으로 대표되는 지속가능한 개발 이슈에서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성대골이 에너지자립, 전환마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참여한 여성 주체들이 단순히 ‘착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운동을 넘어, 메이커로 리빙랩 연구자로 활동양상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둘째, 여성들이 가족의 안전, 생활공간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발적 모임에서 사회문제해결의 리빙랩 활동이 시작된다. 성대골에너지마을에 참여한 여성들은 초기에는 안전한 생활공간과 미래(자녀)세대를 위한 탈원전 교육, 인식개선 캠페인으로 시작했으나, 차차 과학적 자료조사, 실험을 통해서 미니태양광 DIY 시제품을 개발하게 되고, 태양광 설치비 부담을 줄이는 솔라론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리빙랩 단계로 진입했다. 이렇듯 리빙랩을 통한 지역사회 변화에 여성 참여가 이루어지려면 인식개선과 생활 속 실천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경제, 즉 ‘살림’의 문제가 곧 에너지 자립, ‘환경’의 문제가 된다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셋째, 지역사회 내 여성들의 자조 모임과 소규모 공동체가 조직력을 가진 리빙랩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외부자원의 유치 노력과 함께 지역사회 행정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성대골에너지 마을 역시 민간 재원(여성 NGO), 공공 지원(서울시와 동작구)을 통해 규모와 활동의 깊이가 더해진 사례다. 이러한 성공 요인들은 앞으로도 여성의 리빙랩 활동 참여가 확대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데 적용될 수 있을 거다.

최근 지역의 도시재생, 지역 문제해결 사회혁신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특히 오랫동안 여성이 양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던 돌봄과 식품안전, 복지 등의 영역 외에도 과학기술과 로컬혁신의 많은 분야에서도 ‘자고 일어나보니’ 여성들이 곳곳에서 뿌리내리고,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사회의 여성 참여는 리빙랩의 이름으로 그 깊이가 깊어지고, 폭이 넓어질 기회를 가질 것이다. 또한 리빙랩이 정책과 시민참여로 나타나는 모든 현장에서 소외되는 목소리가 없고, 다양성이 보장될 것이다.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다양성임팩트연구소 상임이사)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다양성임팩트연구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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