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에서 지역 혹은 사회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많은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지난 학기 연세대에서 유사한 수업을 개설한 선생님들과 교육과정 운영을 함께 모니터링하고 성과를 평가했다. 동의한 결론이 있었다. 학생들이 컴퓨터 앞에서 아이디어를 짜고 그에 맞춰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가져가 현장에 나가는 순간부터 진정한 의미의 학습이 시작된다는 거다. 현장 주민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련 공공기관이나 조직을 만나는 과정에서, 왜 지금까지 ‘꽤 괜찮아 보이는 기술적 해결 방안이나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거나 쓸모없게 여겨지는 일이 많은지 배운다. 많은 경우, 기술은 문제 해결의 종착점에 있지 않고 많은 사회적 이슈들과 얽히고설켜 있다. 그 복잡한 일에 끼어들지 않는 한 훌륭한 문제 해결자가 될 수는 없다.

사회혁신, 리빙랩, 전환, 소셜벤처, 사회적경제와 같은 개념들이 정부 정책뿐 아니라 대학 교육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제기하는 질문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에 있다기보다 ‘혁신하는 주체들’에 관심을 둔다는 데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을 담당해 온 전문가들에게 평소와 다른 일을 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 집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현장에 나가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연구 성과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직접 점검해 보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해보라고 촉구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삶을 꾸린 시민들에게 21세기를 이끄는 4차 산업과 신기술을 배우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대신 시민으로서, 주민으로서, 부모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나 자신이 추구하는 의견과 수요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관련 기관이나 공동체에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데 참여하라고 격려한다. 도덕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활동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의견을 내는 만큼 다른 이들의 생각에도 귀를 기울이고 성실히 그 과정에 참여하는 거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사회혁신 담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없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의미 있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문제를 효과적이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바로 ‘관계’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관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연결망(network)’이라는 표현 대신 ‘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사람과 사람 간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모든 영역에 만들어진 강고한 경계들, 그곳에서 만들어진 관계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리빙랩의 발전과 확산을 강조하는 이들이 리빙랩을 민·산·학·연·관 사이의 협력모델이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것 자체로는 그리 새로운 주제도, 아이템도 아니다. 각 영역 사이에 경계가 그어진 그 순간부터 경계 사이의 협력과 소통은 중대한 이슈로 등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1세기에 성장한 수많은 디지털 경제 대부분은 기술을 사용한 경계들의 연결과 소통의 증진에서 얻은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존의 관점은 ‘관계’를 주변부적, 잔여적 범주에 머물게 하고 필요할 때만 잠시 사용할 뿐, 대부분은 영토와 경계 안에서 얻는 닫힌 관계의 이득에 몰두했다. 반면 사회혁신 관점에서 볼 때, ‘관계’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며, 일단 새롭게 형성된 관계는 다른 관계들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힘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확장될 때, 혁신이 발생한다.

지난 3월 26일 설악산국립공원 관계자와 연세대 공대 교수들이 함께 설악산 이슈를 논의하는 장면.
지난 3월 26일 설악산국립공원 관계자와 연세대 공대 교수들이 함께 설악산 이슈를 논의하는 장면.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과 다른 조직에 속하거나 생각과 역량, 전문성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협력할까? 기본적으로 관계를 ‘비용’으로 파악할 때 가능하다. 그것도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돈만 드는 게 아니다. 관계를 만들고 지키려면 시간과 열정, 인내, 전망도 필요하다.

관계를 형성하는 현대적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술’을 사용하는 거다. 인터넷,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은 과거에 상상하지도 못한 관계의 다양한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 번째 방식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실질적 이득’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 간 거래, 정부와 기업 관계, 기존의 산학협력 관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다만,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얻는 관계는 지속할 수 없다. 세 번째 방식은 관계 맺기 자체가 ‘문화’가 되는 사회이다. 이것은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의 이익과 직접 연관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고 싶고 물려주고 싶은 사회의 비전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공동의 비전이 우리의 삶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명확하지 않을 따름이다.

사회혁신, 리빙랩, 전환을 추구하는 활동은 서로 다른 개인이나 기관, 조직들이 서로 연결된 지점과 그 중요성을 아는 데서 시작했다.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관계가 사실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혁신은 연결의 혁신이자 관계의 혁신이다.

그렇지만 관계 혁신을 단기간에 이루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그것을 담당할 전문 조직이 대학과 정부, 지역 기관에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단순히 칸막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연결과 소통의 관계성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다. 연결의 지점을 모르고, 관계 역량도 부족한 상태에서 칸막이를 없애는 것은 저항과 반발만 불러올 뿐 관계 혁신의 시너지로 만들어질 수 없다. 관계의 혁신이 시작되면, 서로의 강점을 더 많이 보게 될 거다. 내게 있는 것보다 내게 없는 것을 더 잘 찾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연결의 시작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가능성은 도처에 있다.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당신은 강고한 성안에 혼자 사는 지도 모른다. 경계를 넘어, 영토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시선을 돌리자. 최소한 손해 볼 일은 없다.

이번 학기에 나는 설악산국립공원과 협력해 수업을 진행한다. 드론을 활용해 국립공원의 현안을 해결하려 시작했다. 몇 차례 모임을 진행하면서 등산객의 안전을 둘러싼 국립공원의 관심과 현황, 관련 이슈들을 알았다. 큰 수확이었다. 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으로도, 기술만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공원과 대학이 지닌 지식과 암묵지(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를 서로 결합할 때 좋은 성과가 날 거라 기대한다.

한경희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수
한경희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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