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혁신의 주인공인가. 아마도 연구에 빠진 고독한 천재나 풍부한 지식과 경륜을 갖춘 전문가를 상상할 것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이들이 혁신의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성대골 에너지 리빙랩의 마을연구원이나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의 시니어 리빙랩의 어르신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리빙랩에서 최종사용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이나 관찰 대상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혁신가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마을연구원에서는 자영업자, 회사원, 부녀회원, 청년이 혁신가며 시니어 리빙랩에서는 어르신들이 혁신가다. 이들이 에너지 자립 기술과 서비스, 고령자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주도하는 것이다.

공동창조가 핵심인 리빙랩은 공공문제 해결에 유용한 방식이다. 이에 따라 공공문제해결을 위한 정부지원사업에서도 리빙랩과 시민 혁신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공감e가득사업'은 ‘스스로해결단’이 재난안전, 환경, 복지, 지역격차 등 지역문제 해결 과정의 주체다. 절반 이상을 반드시 시민으로 구성해야 하는 스스로해결단은 문제선정, 해결방안 결정, 해결방안 실행을 주도한다. 어린이집 통학버스 안전장치 개발, 시민안전과 농작물 피해 방지시스템 구현, 의료서비스 취약 지역 주민 대상 디지털 네트워크 건강관리 서비스 외에 많은 사업이 시민혁신가의 주도로 진행되어 왔다.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공감e가득사업'은 지역현안의 당사자가 '스스로해결단'을 만들어 지역 문제를 풀어가는 사업이다./출처=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공감e가득사업'은 지역현안의 당사자가 '스스로해결단'을 만들어 지역 문제를 풀어가는 사업이다./출처=행정안전부

우리는 고도로 전문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전문지식이 부족한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혁신가가 될 수 있는가. 혁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며 집단적 협력의 결과다. 혁신이라고 해서 대단해야 하거나 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방식과 절차를 개선하고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혁신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경험이나 아이디어를 하나쯤 가지고 있고, 집단지성을 활용한 공동창조를 통해 이런 것들을 모아 창의적으로 조합하면 현실성 있는 사회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시민이 혁신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다.

리빙랩을 통한 공공문제 해결에 시민이 혁신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시민혁신가는 현장 경험이 부족한 전문가들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하고 촉진한다. 주민이 지역 문제를 잘 알고, 어르신이 어르신의 문제를 잘 안다. 따라서 시민혁신가는 현장성이 부족한 혁신을 현장성 있는 혁신으로 대체하여 공공문제 해결에 사용되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준다.

2018년 공감e가득 사업 장애인 권리 보호 분야로 선정된 제주 디지털 참여 플랫폼 “가치 더함” 프로젝트./출처=가치더함 웹사이트 캡처
2018년 공감e가득 사업 장애인 권리 보호 분야로 선정된 제주 디지털 참여 플랫폼 “가치 더함” 프로젝트./출처=가치더함 웹사이트 캡처

정부는 시민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하여 정책이나 공공서비스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정책이나 공공서비스 제공은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공서비스나 정책 과정에서 시민과 정부 간 공동생산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혁신가의 참여로 공공서비스와 정책의 현실성이 높아지면 그 효과도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공공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공익에 이바지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이나 자부심,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시민과 정부 간 신뢰 향상의 바탕이 된다.

시민혁신가가 주도하는 리빙랩은 혁신국가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마찰 없는 전환을 끌어내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모든 시민이 혁신가가 될 수 있는 리빙랩은 현장성 있는 혁신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다. 혁신이 일상화되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과 경제적으로 활용할 기회도 많아진다. 또 혁신의 일상화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바탕이 된다. 전환은 큰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나 실험이 필요하다. 리빙랩은 지속적인 시도나 실험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자 플랫폼이며, 시민은 이런 시도나 실험에 필요한 리빙랩의 혁신가다.

정병걸 행정학 박사/동양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정병걸 행정학 박사/동양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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