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8명이 사망했고 그중 6명이 아시안 여성, 4명이 한국인이다. 총격을 가한 테러리스트는 21살의 로버트 에런 롱으로 희생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애틀랜타에 총격 사건이 났다며 괜찮냐고 물어보셨을 때, 흔한 강도 총격 사건인 줄 알았다. 조사하기도 전에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의 대변인 제이 베이커는 “그는 완전히 지쳤고 일종의 막다른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정말 나쁜 날이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사건 발생지가 마사지샵이라는 이유를 들며 희생자들의 체류 신분이나 직업의 윤리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범인이 “성중독”이었다는 말로 엄연한 인종 혐오 문제를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로 깎아내렸다.

직접 찍은 애틀란타 총격 사건 현장.
직접 찍은 애틀란타 총격 사건 현장.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후, 점심시간에 국화꽃 두 다발을 사 들고 현장으로 갔다. 내가 일하는 연구소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던 사건 현장 두 곳은 초라한 꽃다발 몇 개가 놓여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두고 간 “아시안 혐오를 멈춰라” 푯말이 띄엄띄엄 놓여있었다. 근처 에모리 대학의 한인 학생 2명이 형광색 피켓에 “아시아 공동체와 함께 합시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오가는 차들을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몇몇 차들이 지나가면서 동조한다는 의미로 경적을 울렸고, 그때마다 학생들은 머리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공포가 밀려왔다. 연구소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한인이 많은 동네에서 비슷한 수준의 이웃들과 살며 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언젠가 비슷하게 느꼈던 그 공포의 감정을 되짚어 봤다.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차이나 바이러스’ 혹은 ‘우한 바이러스’라고 언론에서 이야기하던 때였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날, 줌(ZOOM) 미팅에 자신의 이름을 “나는 바이러스가 없다(I don’t have virus)”라고 적어둔 큰아이의 중국인 친구를 봤을 때였다. 마스크를 쓰라는 이야기가 없었을 때, 마스크를 쓰고 마트에 간 나를 향한 시선들이 느껴질 때였다. 집에서 갑갑해 하는 아이들을 낮이 아닌 밤에 데리고 나가 동네 한 바퀴를 걸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아시아·태평양계 주민을 향한 혐오 행위 통계./출처=Stop AAPI Hate
아시아·태평양계 주민을 향한 혐오 행위 통계./출처=Stop AAPI Hate

‘아시안 아메리칸 태평양계 연합(AAPI)’이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범죄 방지 대책을 위해 만든 기구 ‘Stop AAPI Hate’에 따르면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신고된 아시안 혐오 행위가 3795건에 달한다. 중국인이 가장 높은 비율(42.2%)로 폭력을 당했으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약 14.8%로 두 번째라고 한다. 아시안 혐오 행위는 일할 때 벌어지는 비율이 35.4%로 가장 높지만, 그냥 길 가다 당하는 경우도 있고(25.3%), 온라인(10.8%), 공원(9.8%), 대중교통(9.2%), 개인 공간(9.2%), 학교와 교회 등 어디서나 일어난다. 폭언 등 언어로 인한 괴롭힘(68.1%)과 고의적 회피(20.5%)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신체적 폭행(11.1%), 시민권 침해(직장 내에서 차별, 서비스 거부, 대중교통 이용 금지) 등은 약 8.5%를 차지했다. 여성이 당한 혐오 행위는 전체의 68%에 달한다.

언제, 어디서나, 아시아인이건, 아시아계 미국인이건 얼굴색과 생김새로 당할 수 있는 폭력은 이제 묵과할 수 없다. 아시아인을 향한 고정관념을 깨부숴야 한다. 백인들은 아시아인이 대부분 똑똑하거나 돈이 많다고 인식한다. 아시아인 모두가 중국인이 아니듯, 다양한 지역적 민족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형화된 이미지로 판단하며, 순종적이고 수동적이고 닫힌 문화라는 인식이 크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한국인 피해자는 50~70대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희생엔 여러 층위가 있다. 아시안이라는 인종적 혐오와 여성이라는 성별에 대한 혐오가 섞여 있다. 고령자라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는 ‘정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세상에 그 누구도 얼굴색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약자이기 때문에 총에 맞아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난 2월 말에는 캘리포니아 하원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코로나19 이후 증가하는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규탄 결의안(Resolution condemning hate crimes committed against Asian-American and Pacific Islanders)을 발의했다. 지난 18일에는 미국 하원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지난 1년간 아시안이 미국 땅에서 당한 폭력에 강력히 항의하는 전국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내가 속한 재미여성과학기술자협회 동남부 지부에서는 급하게 온라인 대책 회의를 열었다. 며칠 동안 아픈 마음과 분노, 공포로 시간을 보냈던 이들이 모인 목적은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커피숍에서 항균 스프레이 세례를 받았던 이야기, 이유도 없이 고속도로에서 경찰에 잡혀 갖은 욕을 먹었던 이야기, 마트와 식당 종업원들에게 당했던 차별, 그리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매일 당면하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순종적이고 입 다물고 자기 일만 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우리가 깨 보기로 했다. 각자 속한 학교와 기관에서 조직 내 다양성을 고취할 수 있는 자리에 나서 목소리를 높일 거다.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던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말이다. 지역사회와 연계해 한국인을 포함한 이민자의 역사를 알리고 이 땅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다음 세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특히 이공계 학생·연구자들이 당한 반아시안 혐오 피해를 어떻게 다룰지 찾고, 정신적·법률적 도움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 사태에 대한 침묵은 폭력에 대한 공모이며, 우리는 아시아계 차별 반대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애틀랜타를 방문해 아시안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이같이 말했다.

아시아계를 향한 뿌리 깊은 증오, 반복과 차별에 대한 역사가 코로나19로 곪아 터졌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려고 코로나19 최전방에 나섰던 이들이나, 필수 인력으로 커뮤니티를 보호했던 이들도, 수많은 보건 의료 정책과 바이러스와 백신 개발에 힘을 쏟았던 이들도 다 얼굴색이 같지 않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모두가 이민자인 서로가 서로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이젠 사라져야 한다. 우리의 적(敵)은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이다.

애틀랜타 총격사건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김현정(그랜트 현정, 51), 유영애(63), 박순정(74), 김선자(69), 애슐리 윤(33), 폴 안드레 미첼스(54), 샤오지에 얀(49), 다오유 펭(44)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