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미국 화학학회와(ACS)와 화학공학(C&en) 잡지는 트위터에서 흥미로운 ‘채팅 행사’를 공동 개최했다. 미국 화학학회 소속 여성 과학자들이 앞장선 이 채팅 행사는 과학계에서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행해지는 ‘과학계의 보이지 않는 노동 #InvisibleworkSTEM’에 대한 온라인 토론이었다.

미국 화학학회(ACS)와 화학공학(C&en) 잡지가 2019년 개최한 '과학계의 보이지 않는 노동 #InvisibleworkSTEM' 온라인 토론회./출처=ACS, C&en
미국 화학학회(ACS)와 화학공학(C&en) 잡지가 2019년 개최한 '과학계의 보이지 않는 노동 #InvisibleworkSTEM' 온라인 토론회./출처=ACS, C&en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조직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인적 자본을 통해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계에서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백인 남성으로 대변되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차세대 과학자를 육성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환경에 있는 이들에게 과학계 진입을 낮추고 이미 과학계에 들어온 다양성을 구성하는 이들이 학계 내에서 단단하게 서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미국 대학들은 최근 몇 년간 대학 내 다양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공계 대학은 정부 지원을 받아 성별, 인종, 젠더를 불문한 교수 임용을 위해 노력했다. 이는 학부와 대학원생의 다양성을 높일 마중물이 됐다.

어느 조직이나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품이 든다. 다양성을 고취할 행사를 위해 재정이 필요할 때 재정을 신청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조직 내 다양성에 대한 문제를 다룰 다양성 위원회 구성도 누군가의 자발적 지원으로 이뤄진다. 차세대 과학자가 될 초·중·고 학생을 위한 대중 교육, 대학 내 학부와 대학원생을 위한 멘토링도 누군가 발 벗고 나서기에 가능하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에서 생태학 연구를 하는 테레사 라버티 교수와 연구진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계 교수 469명을 대상으로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활동과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Nature Ecology & Evolution 3, 1030-1033(2019))

응답한 교수 중 91.7%는 다양성 및 포용성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50.5%는 이러한 활동이 도덕적인 의무이며, 연구의 질을 높이고, 과학 능력을 향상하고, 다양한 리더를 양성할 수 있다는 항목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들 중 더 적극적으로 다양성 활동에 참여한 그룹은 비(非)백인 교수진이다. 소수인종 교수 임용에 더 애쓰고, 초·중·고등학교의 과학 관련 봉사활동에 더 많이 참여했다. 가족 중 대학에 간 첫 세대인 교수들은 소수인종 교수·학생 유치와 다양성에 대한 문헌을 출판하는 데 힘썼다. 남성이 아닌 교수가 적극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워크숍을 개최하고 참석했다. 다양성 위원회 등 다양성을 위한 활동에는 종신교수보다 부교수, 조교수가 참여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이 연구 결과는 비백인, 비남성으로 대변되는 소외된 집단, 즉 소수인종, 여성 교수진이 미국의 생태학·진화생물학계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설문조사에 참여한 교수 중 대부분이 “다양성 활동에 참여하는 건 종신교수가 되는 데 도움 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다.

앞서 언급한 트위터 채팅행사가 바로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이들의 성토의 장이었다. 특히 소수인종, 여성 교수들은 다양성 활동의 목적으로 학부·대학원 학생들의 멘토링에도 시간을 쏟는다. 이들은 자신보다 앞서 길을 걸었던 같은 얼굴색과 성별의 교수들에게 동질감을 더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은 수치로 계산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실험이나 연구를 통해 발표하는 논문에도, 연구비 수주를 위한 계획서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종신교수가 되기 위한 심사에서 평가되지 않는다. 학계와 대학 어디에서도 다양성을 위한 시간과 품은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활동보다 자기 연구에 시간을 더 쏟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과 기관에서는 다양성을 위한 조직은 만들면서 그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서는 정량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모순적이고 불공평하다. '다양성 있는 조직'이라는 목표에도 더디 가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다양성을 위한 노력 대부분이 여성 과학자에 의해 이뤄진다. 여성 과학 단체와 여성가족부에서는 과학계 여성들의 여러 멘토링 활동을 지원한다. 멘토링을 위한 사업 지원서를 제출하고 예산을 받아 시행하는 일은 여성 과학자가 주로 한다. 조직에서 여성 과학자들의 탄탄한 그물을 만들고, 여성 과학도를 위해 시간과 노하우를 쏟아붓는다. 멘토링 행사에 들어가는 재정이나 멘티의 교통비 등은 지원되지만, 멘토들은 대가 없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연구 외에 계획서를 쓰고, 예산 집행과 행사에 대한 보고서도 써야 한다. 이런 노력 또한 정교수 임용이나 기관 내 진급을 위해 정량화되거나 조직 내에서 평가되지 않는다.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인정’해야 한다. 다양성을 위해 어떤 일을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를 조직이 명확히 알고 그들의 공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진급을 위한 심사에 다양성 활동이나 커뮤니티를 위한 활동에 가산점을 주거나, 의무적으로 학생을 위한 멘토링 시간을 채우는 방법들로 조직에 속한 이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트위터 채팅 행사 이후 몇몇 학교는 다양성과 멘토링 등에 참여한 이들에게 주는 상을 만들기도 했고, 실제 종신교수 임용에 평가 항목을 만든 대학도 있다. 어떤 대학은 다양성 활동에 참여하는 교수실 앞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을 도입했다.

보이지 않는 일을 보이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학계의 다양성을 위한 시간과 품을 ‘열정 페이’로 평가절하하는 일은 이제 멈춰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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