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하다는 조항에 덕분에 그동안 전국에 1만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며 ‘붐’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복잡한 행정과 미흡한 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설립만 해놓고 사실상 미운영?폐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절반 수준에 달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법 개정 및 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의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협동조합으로 사업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강민수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정책위원장)

지난 8월 열린 토론회 ‘협동조합기본법 2.0 시대를 준비하자!’에서는 2012년 제정돼 발효된 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강 위원장은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의 의의는 누구나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결사(結社)’의 자유, 즉 사업할 자유를 부여한 것인데, 지난 5년간의 평가를 한 마디로 하면 ‘우리의 협동조합 설립, 운영 분투기’다”라고 토로했다.

기본법에는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모든 사업을 협동조합으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강 위원장에 따르면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협동조합은 다른 기관을 육성하는 특수법인 ‘엑설러레이터 기관’으로 등록이 불가능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법인이라는 이유로 ‘건설업’은 할 수 없다. 더구나 공공조달이나 자금지원 등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성기업’이나 ‘장애인기업’으로 지정받을 수 없는 등 각종 제약이 많았다.

이와 같은 혼란은 협동조합이 ‘영리 법인’이냐 ‘비영리 법인’이냐 하는 논란과 둘 사이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법제상 영리 법인은 상법, 비영리 법인은 민법에서 규율하는데, 협동조합의 경우 조직 형태는 상법을 따르면서 운영에 있어서는 민법의 규율을 받으면서 이중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난 8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 ‘협동조합기본법 2.0 시대를 준비하자!’에서 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협동조합 당사자들은 ‘영리 아니면 비영리’라는 이분적 구조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협동조합은 영리도 비영리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특수한 법인이기에 그에 맞춰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창섭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은 “협동조합 법인의 특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법이 필요하다”며 “영리 목적이나 비영리 범주와 구별되는 협동조합의 ‘상호적 목적’을 좀 더 세분화해 규정하고, 개정안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사자들은 일반 협동조합이 주식회사 같은 영리 법인으로 취급돼 정부 지원이나 세제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강 위원장은 “△협동조합은 이윤이 아닌 이용을 목적으로 하고 △출자금의 다소에 관계없이 1인 1표로 운영되고 △1인이 총 출자금의 30% 이상을 출자할 수 없고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윤은 적립을 우선하는 비분할 자본이며 △배당을 한다 해도 이용 실적에 비례해 환원하는 ‘이용배당’이 먼저라는 등의 이유로 영리 법인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당사자들은 ‘영리 아니면 비영리’라는 이분적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디자인=유연수)

예를 들어 동네 빵집 사장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장들이 손님에게 빵을 파는 것 자체는 ‘이윤’이 목적이지만, 협동조합을 결성한 이유는 재료 공동구매, 시설 공유 등 ‘이용’을 위해서다. 조합 차원에서의 거래를 통해 발생한 ‘흑자(surplus)’는 조합원들에게 환급되지만, 조합원이 아닌 빵집 사장에게 시설을 빌려주는 등 비조합원간 거래에서 발생한 ‘이익(profit)’은 환급하지 않고 비분할 자본에 적립해야 영리 법인으로 취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

지난해 출판된 유럽연합(UN) 협동조합 법의 공동원칙을 제시한 ‘페콜(PECOL, Principles of European Cooperative Law)’에서도 협동조합은 조합원 거래와 비조합원 거래의 성과를 별도의 계정으로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비조합원 거래에서 발생한 이익은 비분할 적립금으로 적립해 배당이 불가능하도록 하고, 협동조합이 해산되더라도 공공의 재산으로 넘어가게 하는 등 영리적 성격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정순문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협동조합을 영리 법인으로만 보는 견해가 있는 이상, 향후 기본법은 협동조합의 영리적 성격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윤이 아닌 이용이 목적인 조합원간 거래에 한해서만큼은 세제 혜택이 적용돼야 법체계에 일관성이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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