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마다 충치의 개수와 치료법이 다른 것은 환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부분입니다. 고가의 임플란트는 또 어떤가요? 몇 개의 치아를 발치해야 하고, 그래서 몇 개의 임플란트가 필요한지로 이야기가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치과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제가 있는 치아를 똑같이 찾아내고 비슷한 치료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바람일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환자가 구강 내 불편함을 경험하고, 치과에 와서, 진단을 받고, 치료받는 과정과 결과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개입됩니다. 환자가 치과에 오면, 치과 팀은 환자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합니다. 1) 현재의 증상, 이전의 증상, 치과 경험, 전신 상태에 대해 인터뷰를 합니다. 2) 눈으로 보고(시진), 만져보고(촉진), 방사선사진을 촬영하고, 그밖에 여러 가지 임상적인 검사를 합니다. 3) 원인을 찾기 어려울 때는 검사를 위한 간단한 치료를 해봅니다. 이러한 정보들을 통합하고 해석하여 질병의 상태를 판단하고, 치료계획을 세워 환자와 의논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진단’(diagnosis)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객관적인 현상을 탐지 (detection)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탐지된 사실은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달리 진단됩니다.1)

예를 들어 작은 충치를 하나 발견 (detection) 했을 때, 그것을 치료해야 하는 충치로 진단(diagnosis)하는 데는 환자 그리고 치과의사 변수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치아를 담고 있는 잇몸이 건강한지 (곧 빠지게 될 치아라면 충치치료를 하지 않겠지요), 이를 잘 닦는지 (이를 잘 닦는 성인의 경우, 작은 충치는 멈출 가능성이 있으니 지켜 볼 수 있을 겁니다), 치과에 정기검진을 위해 잘 내원하는지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두고 충치의 진행속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연령이 어떠한지 (소아청소년기에는 충치가 빨리 커집니다), 구강건조증이 있는지 (침이 자정작용을 하지 못해 충치가 빨리 커집니다), 증상이 있는지, 치과 치료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치과팀과의 신뢰관계는 어떠한지, 이러한 설명을 잘 이해하는지, 환자의 바람은 무엇인지 등.... 수도 없이 많은 변수가 환자에게 작용합니다.2) 그런데 이 수많은 변수를 진단에 적용하는 방법과 정도는 치과의사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적용된 변수가 정답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평가하기 힘듭니다. 환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모두 다 다르고, 치과의사는 그 변수들로 인한 결과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개인과 집단이 쌓아온 증명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의 장단점과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환자와 의논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정답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환자-의료진간 신뢰와 충분한 만남의 시간입니다. 환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의료진은 더 솔직하게 설명하고 의논할 수 있습니다. ‘환자는 자기 건강의 주체이며, 치료와 예방관리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책임지는 파트너다’라는 믿음이 생기면 의사는 진단에 환자를 더 많이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환자는 자신의 바람을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나의 몸에 대해 파악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의료진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으며, 전문가의 조언을 믿고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만난 시간이 쌓여야 환자에 대해, 그 치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어떤 치료와 관리가 이 환자의 평생구강건강에 도움이 될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직장에서 환자를 100% 신뢰하며 파트너로 대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치과전체, 나의 직장, 혹은 나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매우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환자-의료진간 신뢰는 대체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치과치료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이 더 커지고, 저평가된 보험진료의 수가가 현실화되는 등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사실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서로 한걸음씩 더 신뢰로 나아가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경험이 쌓여, 신뢰하는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만든 의료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데, 다른 직장에서 일했을 때에 비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제도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고, 지금의 수가체계 안에서는 한 환자를 오래두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치과치료는 늘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뢰를 잃고 떠나가는 환자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 빠지기도 하고 한동안 방어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신뢰 속에서 파트너로 환자-의료인의 관계를 맺는 긍정적인 경험이 축적될수록, 우리 팀에 적극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환자경험이 늘어날수록 환자를 더 많이 신뢰하는 팀이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 팀이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훌륭한 환자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때로 듭니다.

<참고문헌>

1) IOM (Institute of Medicine). 2015. Improving diagnosis in health care. Washington, DC: National Academy Press.

2) Descriptive models of restorative treatment decisions. Bader JD, Shugars DA. J Public Health Dent. 1998 Summer;58(3):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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