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the 이로운 건강] 11. 점잖은 우리가 닥터쇼핑을 하는 이유
[알면 the 이로운 건강] 11. 점잖은 우리가 닥터쇼핑을 하는 이유
  • 이로운넷=추혜인
  • 승인 2019.06.0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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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다시 안 갈래요. 원장님이 처방해줘요."

"처음의 진단명을 정확히 알아오셔야지요. 검사 결과도 받아오시고요."

"아니, 가기 부담스러워요. 계속 도수 치료를 권한단 말이예요."

"도수 치료 안 받겠다고 하면, 안 권하실 거예요. 분명하게 얘기하시면 되..."

진료실에서 환자분과 실랑이를 하다가 저는 말을 멈췄습니다. 어떤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으시다가 살림의원으로 오신 분이었어요. 그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이젠 안 가시겠다는 겁니다. 진단명도 정확히 알아오고 검사 결과와 처방전도 받아오시라고 하자, 도수 치료를 계속 권하여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도수 치료는 안 받겠다고 분명히 얘기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다가,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분명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으니까요.

옷가게에 옷을 사러 가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옷이 아니었는데도 점원이 열심히 권하기에 사 왔는데 집에 가서 보니 정말 마음에 안 들었던 적, 그런데도 바꾸러 가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결국은 그 옷가게를 다시는 가지 않는 것으로 해결하고 만 적, 그나마 비싸지 않은 옷이라 다행이라며 생각했던 적들이 저에게도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환자분이 딱 부러지게 "저는 비싼 도수 치료는 원하지 않아요. 다른 방식으로 치료해 주셨으면 해요"라고 그 정형외과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지요.

닥터쇼핑은 같은 증상으로 이 병원 저 병원, 이 의사 저 의사를 마치 쇼핑하는 것처럼 찾아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드는 의사가 없으니 여기저기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지만, 닥터쇼핑은 사실 큰 사회적 문제입니다.

우선 많은 의료비/건강보험료가 낭비된다는 점에서 문제이고요, 환자의 진료기록과 건강정보가 이곳저곳에 산발적으로 쌓일 뿐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또한 환자의 개인정보가 여기저기 등록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의료인은 환자를 추적관찰할 수 없게 되어 적절한 진단이 늦어지게 되고, 이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신뢰를 저해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곳저곳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은 약들의 상호작용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닥터쇼핑이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어 의료기관을 블로그나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명의라 소문난 서너 곳 이상의 상급병원에서 동시에 진료를 받는 일도 허다합니다. 의사들도 환자들이 닥터쇼핑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충분히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 있는 질환도 재빨리 증상을 호전시키는 약을 쓸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한 의료기관에서의 충분한 상담, 이후 우선적으로 의심되는 질환을 배제해나가면서 이루어지는 진단의 과정, 필요하면 적절한 상급병원에 의뢰가 되고, 치료 약물이 나타내는 부작용까지도 주치의와 모두 상담할 수 있는, 이런 주치의-환자 관계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인 것이죠. 이런 닥터쇼핑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이 꼭 필요합니다. 충분한 상담이 가능하도록 의료수가가 보장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주치의제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도 노력이 필요한데요, 특히 저는 '불편한 얘기를 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일을 먹었지만, 증상이 크게 호전되지 않았어요."

"이 약은 저에게는 부작용이 있어요, 피부가 가려워요."

"그때 권해주신 검사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지금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면 좀 더 뒤로 미루고 싶어요."

"그 주사는 좀 아팠어요. 다른 치료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혹시 이런 이야기들이 불편해서 아예 그 의료기관에 가는 발걸음을 끊어버린 적은 없으신가요? 옷가게는 점원이 불편하면 안 갈 수도 있지만, 의료기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의료기관에 쌓인 의료기록은 우리들 각자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불편한 얘기들을 계속 해나가야지 우리의 환자-의사 관계는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부작용을 알기에 다음에는 부작용이 없는 약을 처방할 수 있고, 경제적인 사정을 알게 되었기에 다음 진료 시 더 많이 배려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한 얘기를 해야지만, 서로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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