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치냉장고에서 갓 나온 수박, 냉장고에서 나온 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싫어합니다. 아이스크림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가 시린 느낌을 참을 수가 없어 오만상을 다 찌푸리게 됩니다. 그래도 먹고 싶어서 슬그머니 먹었다가 으악! 하고 후회하면 이웃들은 치과의사도 이가 시리다며 즐거워합니다. 성인이 된 후 교정치료를 받은 저는 치아가 교정적으로 이동한 만큼 잇몸이 따라와 주지 못해 치아 몇 개의 뿌리가 드러나, 시린이 환자 즉 상아질과민증 (dentine hypersensitivity) 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상아질이 노출된 부위가 차갑고 뜨거운 자극에 그리고 초콜렛같이 아~주 단것에 자극을 받을 때 순간적인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을 상아질 과민증이라고 합니다. 상아질은 아래 그림에서 dentine 이라고 표시된 부위입니다. 우리가 보는 하얀 치아표면은 법랑질 (enamel)인데요, 제일 바깥층인 법랑질은 자극에도 반응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법랑질이 여러 가지 이유로 파괴되어 하방에 있던 상아질이 드러나거나 잇몸이 (치아 뿌리를 잡고 있는 뼈와 살) 줄어들어 치아 뿌리가 드러난 경우, 상아질 과민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충치나 치아파절이 아닌데도, 상아질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경우는 치아-잇몸 경계부 (치경부) 가 파이는 현상입니다. 치경부가 패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씹는 힘에 의해 미세하게 치아가 휘면서 결정이 떨어져 나가는 ‘굴곡파절’과, 이물질 (칫솔, 단단한 음식)과 치아의 지속적인 마찰로 발생하는 ‘마모’가 그것입니다. 굴곡파절의 경우 치열의 특징이나 씹는 힘이 관여되어 있어 특별한 예방법이 없습니다. 손톱으로 긁었을 때 간신히 느껴질 정도로 조금만 파인 경우도 시린 증상이 극심하게 나타날 수 있고, 눈에 보일 정도로 파였지만 시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린 증상이 나타날 때, 혹은 시리지 않더라도 팬 양이 많아서 치아를 구조적으로 약화시킬 때 치료를 하게 됩니다. 경미하게 파였을 때는 신경으로 이어지는 상아질 표면의 미세한 구멍 (상아세관)을 막아주는 코팅을 시행 (지각과민처치)하게 됩니다. 커지면, 치아색 재료로 파인 부위를 메꾸어 줍니다. 치경부가 파이는 것이 원인이 되어 시린 치아는 대부분 이런 치료를 받고 나면 시린 증상이 많이 개선됩니다.
그런데 잇몸뼈가 내려가서 치아 뿌리가 드러나 시린 경우, 부위가 광범위해 시린이 처치를 통해서도 완전한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 시린이 처치도 중요하지만 잇몸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도록 조치 (스케일링, 잇몸치료, 잇몸닦기 등)를 취하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드러난 치아뿌리 부위를 닦는 것이 시리니 피하게 되고, 스케일링도 시린 것이 힘들어서 피하게 되니 잇몸병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속에 비명을 지르며 스케일링을 받게 되더라도, 저처럼 시원한 수박을 잘 못먹게 되더라도 잇몸뼈가 내려가지 않게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악순환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소중한 자연치를 뽑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이 밖에도 잦은 탄산 섭취나 구토 증세는 치아를 ‘부식’ 시켜 시리게 만들 수 있고, 밤중 이갈이로 인한 치아의 씹는면 ‘교모’ 증세도 치아를 시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린 증상은 간단한 치료만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경우에는 치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린 증상은 치아와 잇몸의 다른 병적인 상태를 알려주는 알람일 때도 있습니다. 참지 마시고, 가까운 치과에 내원하셔서 진단을 받으세요.
그림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entin_hypersensi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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