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드러나지 않고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보건, 돌봄, 청소, 운송 등 필수노동자가 바로 그들이다. 2021년 기준 국내 필수노동자는 448만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이후 그동안 저평가됐던 필수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싹트는 가운데, 그림자 노동으로 사회적 조명을 받지 못했던 돌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영화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가 내년 1월 개봉한다.

올해 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베리어프리 상영작으로도 선정된 기대작이다. 영화의 공동연출을 맡은 박홍열 감독은 100여편의 영화를 촬영한 베테랑 촬영감독이다. 공동 연출을 맡은 황다은 감독도 영화 ‘작업의 정석’, 드라마 ‘봄의 왈츠’, ‘나의 위험한 아내’ 등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다. 두 감독은 아이를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내며 느꼈던 돌봄노동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3년간 마을방과후 교사들의 일상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았다. 도토리마을방과후는 교사, 아이, 부모 3주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25년차 공동체 마을방과후로, 도토리마을방과후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 중이다. 현재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명의 아이들과 5명의 교사들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1월 개봉을 앞두고 자체 배급과 홍보를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는 두 감독에게 영화에 얽힌 에피소드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다큐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포스터/ 제공=도토리마을방과후
다큐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포스터/ 제공=도토리마을방과후

마을방과후 교사들의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박홍열 : 영화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도토리마을방과후’라는 방과후 교실에서 교사라는 직함으로 일하지만 10년을 일해도 1년의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코로나 기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을방과후 교사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황다은 : 마을방과후 교사들은 생활형 방과후를 지향한다. 교사들은 놀이와 생활과 배움이 함께 일어나는 돌봄 교육을 진행한다. 그러나 전국 17개 마을방과후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공적 시스템 안에 존재하지 않아 제대로 경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돌보지만 교사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선생님들의 삶을 묵묵히 쫓으며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돌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만든 영화다.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박홍열 :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다. 맞벌이 부부라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하교 후 아이들의 돌봄에 대한 고민이 컸다. 마포구 성산동에 하교 후 안정적인 돌봄을 해주는 협동조합형 초등 방과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아이들을 보내게 되었다. 지금 아이가 다니는 도토리마을방과후가 그곳이다. 큰아이는 마을방과후를 졸업했고, 작은 아이가 6년째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는 하교 후 60여 명의 아이들과 5명의 방과후 선생님들이 함께 생활한다. 그곳에서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서로 협력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가 컸다. 그러나 아이들은 잘 지내는데 반해, 마을방과후 교사라는 직업은 열악했다. 사회적 인식도 낮고 경력 인정이 되지 않아 교사들이 힘들어했다. 마을방과후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함에도 사회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분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황다은 : 도토리마을방과후에 아이들을 보내면서도 선생님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잘 몰랐다. 부모교육을 받으며 선생님 한 분이 직업인으로서 마을방과후 교사의 현실을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직업’, ‘10년을 일해도 1년도 경력 인정이 되지 않는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들이지만 직업란에 교사가 아니라 기타로 분류되고, 근무 경력 10년이 경력 없음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초등학생 60명을 돌보고 있지만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에도 속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즐겁게 자라지만, 교사들이 즐겁게 일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우리 방과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마을방과후 교사들의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을방과후 교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사회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마을방과후 부모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다큐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를 공동연출한 박홍열(왼쪽)·황다은 감독. 사진은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2'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됐을 때 모습/제공=황다은
다큐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를 공동연출한 박홍열(왼쪽)·황다은 감독. 사진은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2'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됐을 때 모습/제공=황다은

현재 공동육아 마을방과후는 전국에서 17개가 운영된다. 마을방과후는 초등학생을 둔 부모들이 모여 자녀들이 공동체 정신의 바탕 위에 창조적, 자율적, 자연친화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합(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형태다. 마을방과후는 기존의 공교육에서 메워지지 않는 돌봄 공백의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이고 충분한 놀이와 소통이 가능한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전국의 마을방과후들은 전일제로 운영되며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현재 마을방과후 교사로 활동 중인 교사는 전국에 35명 정도이나, 열악한 환경과 사회적 불인정 등으로 그 수가 계속 줄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담고자 한 부분은? 

박홍열 : 교사들의 회의 장면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회의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마을방과후 교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상에서의 놀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도 일상이 있고 그걸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교사들이 하는 회의가 그분들의 마음이자, 자기 일에 대한 진정성이라 생각했다. 특히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마을방과후에서 매일 아이들과 어떻게 생활할까 사명감을 가지고 회의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 회의 장면에 투영하고 싶었다.  

황다은 : 오랫동안 한가지 일을 하면 전문성이 생긴다. 하지만 그 전문성을 가지기까지 일상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노동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돌봄노동이나 가사노동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그걸 ‘그림자 노동’이라 칭한다. 마을방과후 교사도 돌봄영역에서 일상과 생활의 전문가지만 스스로를 전문가로 칭하기에 어색한 것이 우리 사회 분위기다.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해온 일상을 이어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깃들어 있는지,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전문가적인 노력과 진심이 필요한지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 장면이 바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회의 장면이다. 교사들의 그런 진정성과 노력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에서 나오는 나레이션도 가능한 교사들이 직접 쓴 글로 구성했다.  

출연자들이 모두 일반인이다 보니 촬영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듯 한데. 

박홍열 : 다큐는 출현자와 제작자와의 관계맺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생님들과 마을방과후 조합원으로 오래 함께 했기에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의 일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카메라는 삼인칭 시점으로 늘 거리감을 두고 촬영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반 다큐와 달리 클로즈업이 거의 없다. 대신 나레이션은 1인칭이다. 관객들이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길 바래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이런 디테일을 발견해주길 바란다. 

황다은 : 일반적으로 구성할 때 기승전결이 명확한데 이 다큐는 그게 어려웠다. 어떤 사건이냐가 중요하지 않고 그 사건을 어떻게 풀어가냐 과정이 더 중요했기에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일반 다큐와 달리 큰 사건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상영 후 GV에 참여한 마을방과후 교사들/제공=도토리마을방과후
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상영 후 GV에 참여한 마을방과후 교사들/제공=도토리마을방과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박홍열 : 다큐 촬영의 매력 중 하나가 무엇을 만날 줄 모른다는 것이다. 힘들지만 시간을 가지고 카메라를 놓지 않으면 분명 무언가를 만난다. 그게 다큐의 힘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게 코로나19였다. 갑자기 코로나를 겪으며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 촬영을 마무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생긴 사건(?)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무슨 사건인지는 영화를 보면 안다. 우리에게는 그런 일들이 가장 큰 에피소드였다.   

황다은 :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 또한 돌봄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관객들도 이런 깨달음에 공감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던 관객 중 20, 30대가 의외로 많았다. 사회가 개인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 속에 사는 MZ세대들이 다큐 속 교사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수고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다는걸 새삼 느꼈다는 소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건 다큐에 출현했던 교사들과 가족들의 반응이다. 영화를 보고 엄마가 하는 일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자녀도 있었고, 당사자들도 자신의 일을 재발견하는 계기였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황다은 : 마을방과후 교사들과 같이 우리 사회에는 필수노동을 수행하나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명 그림자 노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의 수고로움으로 우리의 일상이 가능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영화를 본 분들이 그분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호명하고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인식 변화가 그분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홍열 : 영화는 도토리마을방과후 교사들의 이야기만 담고 있지만, 전국에 35명(16개 기관)의 마을방과후 교사들이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열악한 처우와 불투명한 미래 등으로 그 수가 계속 줄고 있어 안타깝다. 이분들과 같은 돌봄노동자들의 사회적 가치가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며,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도 진행 중이다/제공=텀블벅 캡처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도 진행 중이다/제공=텀블벅 캡처

영화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는 2023년 1월 1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영화 배급과 홍보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두 감독은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체 배급과 홍보 전 과정을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마을방과후 부모들과 이웃들도 손을 보태고 있다. 극장 개봉 비용 마련을 위해 텀블벅 펀딩도 진행 중이다. 개봉 후 극장에서 생기는 수익은 향후 마을방과후 재정 안정화와 그곳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의 근로 복지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한 편의 영화를 개봉하려면 온 마을을 넘어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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