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위대한백수 4인 차성진, 심나희, 신현정, 곽상훈. 배경으로 있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잠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위대한백수의 공식 작업복이다./출처=위대한백수
(왼쪽부터)위대한백수 4인 차성진, 심나희, 신현정, 곽상훈. 배경으로 있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잠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위대한백수의 공식 작업복이다./출처=위대한백수

“젊은 청년들이 여기엔 도대체 뭐 하러 온 거야.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섬에서 뭘하고 있는건지, 이젠 내가 걱정이 다 되네.”

젊은 사람들은 섬을 나서기 바쁜데, 친인척은 물론 집도 절도 없이 가파도에 스스로 굴러 들어온 청년 넷.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과 애정을 한 몸에 받는 이상한 녀석들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위대한백수(대표 곽상훈)의 곽상훈(30), 차성진(40), 신현정(27), 심나희(32)다. 

위대한백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백수의 위대한 면모에 집중한다. 위대한백수의 구성원들은 도정공장 공장장, 마을공동판매장의 보리 제품 판매자, 보리 농부, 의용소방대원, 초등학교 선생님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위대한백수는 가파도에서 정말로 위대하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될 수 있다. 

곽 대표와 차성진씨는 가파도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답사차 방문해 섬에 반했다. 결국 2020년 11월, 가파도살이를 결정하며 섬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둘과 함께 입도한 현정씨를 비롯해 이후 나희씨가 합류했다. 갑자기 나타난 외지인이자 푸릇한 청년들이 섬에 박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걱정하는 동네 어르신들의 우려도 잠시, 이제는 마을살림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사랑받는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가파도살이를 위해 직접 빈집을 수리했다. 왼쪽은 공사전, 오른쪽은 공사 후의 모습/출처=위대한백수
가파도살이를 위해 직접 빈집을 수리했다. 왼쪽은 공사전, 오른쪽은 공사 후의 모습/출처=위대한백수

집도 절도 없이 굴러들어온 청년들, 가파도 박힌돌 되다

“처음 가파도로 들어올 때 일단 무작정 왔어요. 첫 세 달은 무전취식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마을 어르신의 소개로 빈집을 사용할 수 있게 돼 세 달간 직접 지낼 공간을 수리해 지금의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 곽상훈 대표

곽 대표는 첫 3개월의 시간을 무전취식이라고 표현하지만, 마을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며 마을에 녹아드는 과정을 톡톡히 거친셈이다. 덕분에 빈집 수리도 온 마을이 나섰다. 마을 어르신들의 애정과 관심 덕택에 어려운 일도 쉽게 때로는 쉬운 일도 어렵게 헤쳐나갔다. 곽 대표는 “집수리를 비롯해 마을에서의 삶을 많은 이웃들이 도와주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이라며 “큰 도움을 주셨던 삼춘께 봉투를 전달드렸는데 '돈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고 말씀해 주신 것에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고 어르신들과 함께하다 보면 ‘나도 저렇게 도움을 주고 나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곰곰이 하게된다”고 말했다. 

상훈씨와 성진씨, 나희씨는 문화기획사에서 직간접적으로 함께 일한 동료다. 상훈씨와 현정씨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가족도 친척도 아닌 위대한백수 청년 4인이 한 집에서 복작하게 살다보니 바람 잘 날이 없다. 한 집에서 대부분의 것을 공유한다. 그렇다보니 일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일이다. 매일이 치열하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야 프로젝트가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날은 새벽에도 업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준비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긴 시간 입씨름을 하기도 한다. 시간들을 직접 견뎌내며 위대한백수 구성원들 사이에도 또 마을사람들과도 단단한 관계를 만들었다.

처음엔 데면데면 인사도 어려웠던 가파도살이였지만 이제는 마을을 한 두 발짝 걸을 때마다 어르신들을 마주쳐 인사 나누기에 바쁘다. 마을 이장님부터 노인회장님, 의용소방대 대장님을 비롯해 옆집에 살고 있는 맥가이버 원식 어르신까지, 위대한백수는 온마을에 촘촘히 연결 돼 있다. 매일 오전 10시가 가까워질 때부터 위대한백수의 집 앞은 이들을 찾아와 서성이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진다. 집에서 함께 보리차를 한 잔 마시기도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비롯해 마을 주민인 어르신들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눈다. 덕분에 가파도 생활 2년 만에 마을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습득했다. 가파초등학교의 학생 수와 아이들의 현황, 태풍이 지나간 뒤 온 마을을 돌아보며 청소하는 가파도의 문화, 지금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항구와 가까운 상동(윗마을)이 시끌벅적하지만 과거에는 유일한 항구였던 하동(아랫마을)이 섬의 핫플레이스여서 하동으로 향할 때 다들 차려입고 이동했다는 먼 과거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제 강아지 얼굴만 봐도 누구네 집 반려동물인지 알 정도다. 

가파도프로텍트를 통해 만든 관광객을 위한 가파도 안내 영상/출처=위대한백수
가파도프로텍트를 통해 만든 관광객을 위한 가파도 안내 영상/출처=위대한백수

가파도는 관광지가 아닌 삶의 장소...주민만이 할 수 있는 고민 시작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가파도의 작물들은 다른 지역에서 나는 것들관 달라요. 보리도 그래요. 영양분과 맛에서 차별점이 있어요. 어르신들은 재밌게 농사지으시고, 저희는 어른들의 작물을 높은 값으로 수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로컬브랜드숍인 ‘바다보리’를 준비하고 있는 거기도 하고요.” - 차성진

많은 사람들은 가파도를 청보리가 예쁜 포토스팟, 대기업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살필 수 있는 섬, 연예인들이 다녀간 장소로 바라본다. 해안선 길이가 4.2㎞로 짧아 자전거로는 30분, 걸음으로는 2시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어 반나절 시간을 들여 관광하기도 딱이다. 이런 특징들로 연 40만 명의 관광객이 가파도를 방문한다. 

가파도 곳곳을 소개하고 있는 곽상훈 대표.

가파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삶에 기반해 이곳을 바라보는 시각은 적다. 그렇다보니 관광객의 수가 늘어나면서 가파도와 주민들은 쓰레기 문제를 겪거나 농지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는 등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래서 위대한백수는 ‘가파도 프로텍트’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마을주민들이 직접 출연해 주의사항을 전하는 영상을 기획해 가파도로 들어오는 배편에 상영하기도 했다.

외에도 위대한백수는 주민들의 삶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 가파도 주민들은 어업을 하고 있어, 농사까지 집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작물 대신 품이 덜드는 작물로 보리를 택했다. 가파도에 아름다운 청보리밭이 펼쳐지는 이유다. 하지만 제주보리를 비롯해 보리는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많아 마을에서 수확되는 보리의 일정량만 수매되는 일이 매년 발생한다. 그래서 이들은 가파도의 보리를 활용해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공간인 ‘바다보리’를 올해 내 완공할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동시에 직접 농사지은 보리를 로스팅해 보리차, 보리음료 등을 개발 중에 있다. 성진씨는 “보리를 활용한 보리차나 맥주 등 가공상품을 비롯해 가파도 로컬음식, 마을 주민들의 삶을 아카이빙하는 프로젝트 등 다양한 기획을 하는중”이라고 말했다.

2년 간 마을에서 지내며 촬영한 사진들. 다양한 이야기는 위대한백수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출처=위대한백수
2년 간 마을에서 지내며 촬영한 사진들. 다양한 이야기는 위대한백수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출처=위대한백수

중요한 건, 바꾸고 변화시키보다 섬의 규칙에 녹아드는 것

“가파도의 매력이요? 제 맘대로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흥미로워요. 서울에서 지낼 땐 돈을 쓰거나 품을 들이면 그래도 진행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가파도에서는 돈도 품을 들이는 것도 통하지 않는 일들이 많아요. 그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만 가능한 것들도 있다는 걸 알게됐어요.” - 신현정

“위대한백수에게 목표지점은 있지만, 힘이 든다면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 않아요. 기다려주고 멈춰요.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거나 또는 그보다 더 높은 순위의 뭔가들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멈출 수 있어요. 저희의 목표는 빨리가 아니에요. 저희의 일은 시간으로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 차성진

구성원들이 가파도에서 지내며 배운 것 중 하나는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는 방법이다. 가파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짧은 시간 내에 좀 더 많은 일을 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위해 자본이나 개인의 노동력을 투여하는 등의 방식을 택했다. 

가파도에 거주중인 외국인 작가를 비롯해 위대한 백수팀를 찾아온 방문객들과 대화중인 위대한백수팀
가파도에 거주중인 외국인 작가를 비롯해 위대한 백수팀를 찾아온 방문객들과 대화중인 위대한백수팀

하지만 가파도의 시간과 방식은 달랐다. 섬속의 섬이다보니 풍랑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구매한 물건을 받지 못하는 일은 것은 예삿일이고 제주도로 나가는 배편이 취소돼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거나 제주도에서 가파도로 들어오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또 농사부터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며 기획자로의 프로젝트까지 고루 이어나가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기에는 마을공동판매장에 집중하다 목표했던 다른 일의 일정을 놓치기도 한다. 때때로 위대한백수를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바다보리 공간의 공사를 잠시 놓고 가파도의 구석구석을 안내하기도 한다. 곽 대표는 “어떤 날은 작은 부품 하나가 없어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모든 일이 멈추기도 하고 예상에 없던 허가 과정이 생기면서 두 달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한다”며 “자꾸만 예상에 없던 일들이 일어나는 상황들이 초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초반에는 가파도 특산품의 리브랜딩 등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달랐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리브랜딩에 반대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던 것. 곽 대표는 “우리의 기준으로 뭔가를 바꾸거나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기존 마을 구성원들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것임을 어느 순간 느꼈고 이후 좀 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후 위대한백수는 앞으로도 우직하지만 천천히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을 가파도에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위대한백수가 현대판 서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정해진 길을 선택하기보다 다양한 공부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가파도로 모여들 수 있도록요.” - 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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