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사회는 식량의 위기, 에너지의 위기, 문화의 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농업을 통해 미래문명의 문법을 다시 만들어가야 합니다. 식량·에너지·문화를 공급하는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을 통해 극복해 나갑시다.”

이상배 문화농업연구소장은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을 강조한다.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이란, 사회문제를 문화농업으로 품고 쉼을 제공해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다양한 문제를 사회적농업, 놀이농업, 교육농업, 치유농업, 영성농업, 복지농업, 공유농업 등 다기능 농업을 통해 해결해나가겠다는 것이다. 

2021 경기도 성공귀촌설계 아카데미 '흙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에서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에 대해 강의 하는 이상배 농부./본인 제공
2021 경기도 성공귀촌설계 아카데미 '흙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에서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에 대해 강의 하는 이상배 농부. 현대인의 우울, 비만, 청년실업, 교육의 위기, 기후위기 등을 문화농업이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포용할 때 인간다운 세상이 열린다고 역설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서 벼, 포도, 채소, 콩, 약초 등을 재배하고 있는 이상배 소장은 3대째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태어나 농업 조기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농업교육과와 히브리학과를 전공하며 성서를 텍스트삼아 그만의 문화농업 철학을 정립했다. 

그는 “화가에겐 화선지가, 작곡가에게는 오선지가 있다면 농부에게는 논과 밭, 산과 들이 있다”며 “놀이농업, 치유농업, 교육농업 등 문화농업을 지어가고 있다. 인간의 배를 채우는 농업에 더해 문화농민의 따뜻한 이야기까지 채워가고 싶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문화농업연구소에서는 치유농장, 교육농장을 표방한다. 귀촌설계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치유소풍, 쉼연수, 농촌여행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 소장은 자신의 칼럼, ‘농부의 사회적농업 이야기’를 통해 시장과 자본에서 배제된 농업을 다뤘다. 칼럼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화성시장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농림부차관, 화성시장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피드백을 받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농업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포용해서 해결해나가겠다는 생각을 담아 칼럼을 써내려 갔다”고 말한다. 

이 소장은 경기먹거리연대 공동대표 및 화성시 먹거리시민네트워크 상임대표이기도 하다.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을 통해 지역사회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농부의 철학과 뜻이 담긴 농산물을 사람들에게 먹일 때 사회 혁신의 단초가 나온다”며 “경기도와 화성시 등 지역사회에서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과 먹거리의 가치를 확산해나가는 역할을 하고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주치의(主治醫)에 대응하는 주치농(主治農) 개념을 본격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12월 18일, 주치농협약식에서 “모든 생명체가 누려 마땅한 먹는 즐거움을 고양하고 먹는 것에서 주눅들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고 실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칼럼 종료를 맞아 지난 12월 27일, 비대면으로 이상배 소장을 만나 ‘‘농부의 사회적농업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향후 계획을 들었다. 

다음은 이상배 문화농업연구소장과의 일문일답.

이상배 문화농업연구소장과 지난 27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상배 문화농업연구소장과 지난 27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칼럼 ‘사회적농업 이야기’를 게재한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갈수록 문화적·생태적으로 비인간화되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은 비인간화의 극단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하던 일을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상실, 문명 전체의 상실을 의미한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한 번 일깨워주고 싶었다. 미래문명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고, 미래문명의 문법을 사회적농업을 통해 한 번 제시해보고 싶어 연재하게 됐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의 원형은 무엇인가? 이 고민에 대한 촉진제로 농업이, 사회적농업이 의미있다고 봤다. 문명대전환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두고 사회 각 영역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농업은 빠져있다. 새로운 문명은 농업에서 상상해야 한다. 인간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인간다움은 어떤 것인지 사회적농업으로 제시해보고 싶었다.

Q. 문화농업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에게는 화선지가, 작곡가에게는 오선지가 있다면, 농부에게는 논과 밭, 산과 들이 있다. 농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생업이 아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사상, 추구하는 바를 농터에 그려내고, 노래하는 것이다. 농업이 교육기호학으로 승화하면 교육농업이고, 놀이로서 즐겁다면 놀이농업이고, 대지예술로서 가꿔진다면 예술농업이다. 

이러한 교육농업, 놀이농업, 치유농업, 예술농업, 복지농업, 통일농업 등을 일컬어 문화농업이라고 한다. 인간의 문화를 생산하고 육성 및 번성하는 매체로서의 농업이 바로 문화농업인 것이다.

약 10여 년 농사를 지으면서 사회가 문화농부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포도를 판매할 때, 포도농사를 지으며 나눈 고민들을 주제글에 담아 함께 전달했었다. 큰 호응을 얻어 학교 선생님과 학생을 상대로 강연 및 연수 등을 진행했다. 

농부의 언어가 사회적으로 필요하구나 깨닫고, 2016년 ‘교육농업연구소’를 설립해 학교교육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교육농업을 통해 메우는 역할을 해오다가 지난해, 문화농업연구소라고 개명해 문화농업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둥근 논, 둥근 이랑의 채소정원, 둥근 돔으로 우주를 상징한 대지예술의 장 '스튜디오 흙'이다. 이상배 농부는 이곳에서 전인적 인간치유와 기후회복의 생태치유 주치농을 상상하고 시나브로 실천하고 있다.
둥근 논, 둥근 이랑의 채소정원, 둥근 돔으로 우주를 상징한 대지예술의 장 '스튜디오 흙'이다. 이상배 농부는 이곳에서 전인적 인간치유와 기후회복의 생태치유 주치농을 상상하고 시나브로 실천하고 있다.

Q. “농업은 그 자체로 사회적기업이고, 농민 그 자체가 사회적기업가”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고도로 자본주의화되면서, 자본적 가치와 효율로 사회가 재단되다보니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역들이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사회적기업이다. 

농업 역시 자본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농업은 철저히 자본주의에서 배제된 영역인데, 사실은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자본은 농업을 끝없이 빼앗고 희생시켜왔다. 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다. 밥과 김치를 먹어야 인간이 활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못 살고, 쌀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우리 사회에 깔려있다. 

지금은 농업을 핵심가치로 재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공급뿐만 아니라, 탄소를 저장해 기후변화의 급한 불을 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농업으로 우리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농업은 사회적기업이고, 농민은 사회적기업가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농업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농업이 배제돼있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핵심으로 농업과 농촌이 다뤄졌으면 한다.

Q. 사회적경제는 공동체, 연대를 강조한다. 농촌사회 역시 공동체에 해당하는데, 사회적농업의 중요성은?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부족하고, 대부분이 고령농업인이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사회적농업은 사회 전반적으로도 의미있지만, 농촌 지역사회에서도 의미있는 개념이다.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고, 젊은이들을 어떻게 유입시킬까에 대한 고민에서도 사회적농업이 핵심이다.

노인은 우리에게 아주 유용한 콘텐츠를 갖고 있는 존재다. 전기가 없는 시대에 태어나 AI시대까지 경험한 유일한 인류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분들이 사라지면, 문화유산, 농업유산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영역 안에서 다양한 사회혁신 활동이 진행됐으면 한다. 먼저 노인 자서전쓰기 운동이 가능하다. 노인과 청년이 소통하며 농촌 노인이 보유한 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평생 살면서 쌓아온 응축된 문화와 지혜가 공유될 때,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또한 농촌노인이 보유한 된장만들기, 바구니만들기 등 기술·노하우를 발굴해 청년들과 나눌 때마다 강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농촌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노인과 청년, 청소년을 연결해 사회혁신을 이끄는 방식은 공동체가 해체되는 농촌에서 필요하다.

이러한 활동을 사회적농업 형태로 정부가 새롭게 디자인하고, 사회적경제도 농업의 가치를 발굴해 농촌에서 사회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문화농업연구소의 '귀촌학교'에서 짚뭇 매땡기 트는 것을 배우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매듭이고, 이것으로 볏짚을 묶는다. 넓은 들판에서 자유를 만끽한 유쾌한 놀이였다./출처=문화농업연구소
문화농업연구소의 '귀촌학교'에서 짚뭇 매땡기 트는 것을 배우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매듭이고, 이것으로 볏짚을 묶는다. 넓은 들판에서 자유를 만끽한 유쾌한 놀이였다./출처=문화농업연구소

Q. 칼럼을 통해 연이 닿아 ‘부천 함밥공동체’와 팜파티를 진행했다. 
<이로운넷>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만남이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을 제안한 칼럼([농부의 사회적농업 이야기] 2. 문재인 대통령님,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을 제안합니다)을 통해 경기도 부천에서 25년째 노숙인·실업자를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러브네이버 함밥공동체’의 박덕기 목사와 연이 닿았다.

박 목사는 칼럼에서 “산업사회에서 고통받는 농업이 고통받는 사회를 포용하겠습니다. 우울한 자, 아픈 자, 고독한 자, 가난한 자, 실업자, 노숙자들과 약자의 연대를 이루겠습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문명의 루저들을 포용하겠습니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함밥공동체가 10월 말에 농장을 처음 방문했고, 11월에는 노숙인 대상 팜파티를 진행했고, 내년부터 연 3회 팜파티를 하기로 약속했다.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협업할 대상이 생겼다. 

Q. 주치농이라는 의제를 설정하려고 노력 중이다.
인간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이 있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기죽지 않고 살  것이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핵심축은 농업과 의료다. 최근 공공식료(公共食療)라는 개념을 접했다. 공공의료(公共醫療)에 대구되는 개념으로, 음식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핵심은 주치의를 세우는 것이다. 전인적인 완성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주치농이 본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자본주의 하에서 일부 의료는 인간을 물질화한다. 주치농이 인간다운 삶을 구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 사회적농업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주치농 의제를 설정했다. 지난 18일, 함밥공동체와 주치농 협약식을 맺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공론화를 위해 노력해나갈 계획이다. 

Q. 향후 계획을 소개해주신다면?
포용주의 문화농업을 통해 미래문명을 만들어가는 문법을 사례로서 모델로서 제시하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약자들의 연대에 힘쓸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을 비롯해, 노숙인,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팜파티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다문화가정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그린케어 등을 진행해보고 싶다.

특히 농촌형 탈북민 정착지원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현행 제도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도시의 임대주택을 주고 몇 년간 자립정착지원금을 쥐어준다. 이는 굉장히 무책임한 방식이다. 평생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오느라 자본주의 경쟁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시 한 가운데 떨어뜨려놓고 잘 살아보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들의 살아온 경험,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정착방안 고민이 필요하다. 농촌형 탈북민 정착지원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되면,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데 훨씬 수월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농부 노인이 강사가 돼 진행하는 바구니 만들기, 목화솜만들기 등 전통체험 프로그램, 노인 자서전쓰기도 준비할 계획이다. 농촌 노인이 사회혁신가이자 문화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왼쪽부터 아래로) 서울 학교밖 청소년 대상 문화농업 진로교육, 부천 함밥공동체 무료급식 대상자 대상 '녹색쉼 소풍' 중 포도따기 체험, 중동난민 대상 '녹색쉼 소풍'./출처=문화농업연구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 학교밖 청소년 대상 문화농업 진로교육, 부천 함밥공동체 무료급식 대상자 대상 '녹색쉼 소풍' 중 포도따기 체험, 중동난민 대상 '녹색쉼 소풍'./출처=문화농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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