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모 화성시장님.
이로운넷에서 세 번째 편지를 쓰게 되는군요. 첫 번째 편지가 온라인에 등재되는 날 바로 전화를 주셔서 호응해 주었습니다. 바로 며칠 후에 농업정책관이 참여하는 식사자리를 마련해 주실 정도로 농부의 제안에 관심을 가져주었지요.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시장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회의’(화성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행정시스템)를 통해 매달 한 번은 뵀어야 했고요. 시정자문위원으로도 여러 번 뵀어야 했습니다. 2시간씩 17회 이상의 모임을 공유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였을까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행정과 소통하고 싶은 의견은 많이 쌓여 있었지만, 딱히 제안할 길이 없던 저에게 지역회의와 시정자문위원회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가 많이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장님도 이점을 깊이 우려하리라 봅니다. 두 차례나 지역회의를 열려고 노력하셨지만, 번번이 좌절됐지요. 지난해 7월 시정자문위원회를 어렵사리 연 것이 마지막이네요.

필자의 마을이 가꾼 장관입니다. 5월 한 달은 하얀 개당근(전호)꽃이 마을주변에 한가득합니다. 이곳에 포크레인을 들이밀 위인이 있을까요? 화성시의 난개발은 이렇게 막아야 합니다. 화성시 전체가 커다란 정원이길 기대합니다./본인 제공
필자의 마을이 가꾼 장관입니다. 5월 한 달은 하얀 개당근(전호)꽃이 마을주변에 한가득합니다. 이곳에 포크레인을 들이밀 위인이 있을까요? 화성시의 난개발은 이렇게 막아야 합니다. 화성시 전체가 커다란 정원이길 기대합니다./본인 제공

지난 시정자문위원회에서 ‘봉사(奉事) 도시로의 화성’이란 의제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셨지요. “봉사로 굴러가는 화성시, 은퇴 후 봉사가 일상이 되는 도시”를 꿈꾼다고 말씀한 기억이 납니다. 대중적인 정책용어로는 ‘봉사’보다는 ‘자원봉사’가 어감상 더 낫다는 자문도 있었습니다만, 굳이 ‘발런티어(volunteer)’가 아닌 ‘봉사(service)’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남다른 뜻이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봉사라는 개념을 깊이 전제한 자원봉사 정책을 구상하는 듯해 내심 반가웠습니다. 2021년 신년사에서 “마음이 따뜻한 도시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확산할 수 있는 자원봉사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자원봉사자들이 존중받고, 자원봉사가 일상이 되는 따뜻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라고 했는데요. 봉사에 대한 남다른 정책을 갖고 계심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글은 봉사도시로의 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길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농업으로 세상에 덕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0대 초반에 태백의 예수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화려한 교회가 아닌 저 논바닥에 있다.”는 대천덕 신부의 말은 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데 망설임이 없게 했습니다. 20대 초반 아버지 밑에서 수도작과 버섯, 포도 농사 등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농업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농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농업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농업일까?’ ‘내 욕망을 넘어 시대와 사회에 가치가 있는 농업은 어떤 것일까?’ 이 물음이 깊어질 20대 중반에 농대를 들어가게 됩니다. 마침 건국대학교에 히브리학과가 개설되었습니다. 성서라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국농업이라는 콘텍스트를 바라보는 기회가 됐었습니다.

히브리어 성서 원전으로 창세기 2장 15절을 보고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וַיִּקַּח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וַיַּנִּחֵהוּ בְגַן-עֵדֶן, לְעָבְדָהּ וּלְשָׁמְרָהּ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야웨 하나님이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셨다. 그 땅을 경작하고 지키기 위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첫 번째로 한 일이 농업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주목한 단어는 לְעָבְדָה(le-abedah 경작하기 위해)입니다. 그 당시 제가 보던 한글 성서는 ‘다스리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경작하다; 노동하다 עָבַד abad’라는 동사가 다른 성서에서 ‘예배하다’로 번역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출애굽기 3:12). 히브리어뿐 아니라 셈족언어는 물질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노동과 예배가 분리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농사가 예배라는 말입니다. 경배일여(耕拜一如)입니다. “노동이 예배요, 예배가 노동이다.”라는 성 베네딕도회의 전통으로 이어집니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나의 염원을 담은 기도와 분리되면, 삶은 비참해집니다. 예배 개념은 화해 돌봄 섬김의 개념으로 커가지요.

은하계를 형상화한 원형이랑 텃밭정원을 모녀가 가꾸고 있습니다. 이 행위가 예술행위이며 예배행위입니다./본인 제공
은하계를 형상화한 원형이랑 텃밭정원을 모녀가 가꾸고 있습니다. 이 행위가 예술행위이며 예배행위입니다./본인 제공

17세기 영국인들은 성공회를 시작하면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전학자와 성서학자들을 동원하여 히브리어의 구약성서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어에 없는 새로운 단어인 ‘아바드’에 봉착하게 됐답니다. 고심 후에 그들은 ‘아바드’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하기 위해 라틴어 ‘servare’에서 어원을 빌려 ‘서브 serve’와 ‘서비스 service’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서비스’란 단어는 일상의 ‘노동’이며, 동시에 종교적 ‘예배’를 뜻하게 된 것입니다.(배철현 2019)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일부 개신교의 예배당 예배주의는 큰 물의를 일으켰는데요. 기독교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행위이지요.

농업 행위를 예배(서비스) 행위와 동일시한 성서적 관점은 ‘봉사(서비스) 도시’의 상상의 폭을 확장시켜 줍니다. 은퇴 후 간간이 하는 자원봉사 만이 아니라 화성시민의 모든 직업적 일들까지도 봉사요 대사회 서비스라는 것으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합니다. 화성시 공무원들의 활동도 대표적인 봉사로서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평생 돈 버는 일에 매진하던 이가 인생 중후반에 사회적 가치의 자리에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이전투구하며 젊음을 보낸 이가 말년에 따뜻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한계적으로 할 수 있을 겁니다. 봉사도시로의 화성시는 보다 원대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화성시민 직업과 생활터전 전반이 성스러운 터전이요 자기다움의 터전이요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터전이요 자연세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임을 인식할 때 봉사도시 화성은 시작될 것이며 완성될 것입니다.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존재하는 교육콘텐츠가 학교 교육에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난개발은 자연과 이웃, 후손들에게 죄송해서 더는 할 수 없게 하는 문화적 양식이 충만한 시민사회 분위기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화성시에서는 농지를 투기목적으로 구입하는 일은 창피한 일이 되도록 토지의 공공성이 고양돼야 합니다. 노인을 일방적인 돌봄 대상에서 사회혁신의 주체로 초대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태극기 부대 노인들을 만나보면 왜곡된 정보에 기대고 있지만,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진실한 노인들이었습니다. 노인에게 일신상의 이익 너머의 가치와 꿈을 꾸는 사회혁신 주체로 초대하는 행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노사 너머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합니다. 전국민 신농활 프로젝트를 현실화 해야 합니다. 농어민과 도시민의 초연결사회를 실현해 내야 합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요? 봉사도시로의 전환을 꿈꾼다면 이 정도 개혁과 혁신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변화 행복한 화성” 농업에서부터 시작해 보십시다. 생산주의에 함몰된 농업정책에서 문화주의 농업으로 전환해 가십시다. 자본에 종속된 농업에서 봉사로서의 농업을 복원해 내십시다. 은퇴 후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농업농촌 현장에서 사회적 농업으로까지 확장해 가십시다. 화성 농촌을 꽃과 나무로 뒤덮읍시다. 경관농업은 토지의 공공성을 고양할 것입니다. 투기성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위엄있고 격조있는 경관성을 확보해 가십시다. 화성시민의 좌절과 아픔을 품고 치유해 내는 치유농업을 진작합시다. 우울하고 지친 시민들에게 화성 친환경농산물을 먹이고 먹입시다. 학교급식뿐 아니라 공공기관, 일반식당까지 질 좋은 지역농산물 공급지원 사업을 확대해 가십시다. 이 안은 서철모 시장님께서 먼저 내신 아이디어입니다. 화성 청소년들이 농촌에서 마음껏 뛰어놀도록 다양한 체험 바우처를 확대합시다. 동탄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서부권 농촌으로 오도록 지원합시다. 농촌 청년들로 하여금 지역사회에서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농업 캠프를 진행합시다. 

지금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내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민족 문화의 뿌리 벼농사는 그 자체로 봉사이며 섬김입니다. 도시민의 농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본인 제공
지금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내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민족 문화의 뿌리 벼농사는 그 자체로 봉사이며 섬김입니다. 도시민의 농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본인 제공

화성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봉사 영역이 어디입니까? 농촌 일손돕기일 겁니다. 농활이야말로 거룩하고 순결한 활동입니다. 농활이야말로 시대치유 프로그램이며 사회혁신 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시금 확대되어야 할 것이 농활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농촌을 경험한 세대와 농촌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구분된다.”라고 한 어느 대학 총장의 말이 기억납니다. 지금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농촌 콘텐츠 부재로 보는 견해입니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을 경험한 것에서 공동체적 연대의식, 인간다움에 대한 상상력, 위기관리 능력 등이 고양된다고 본 것입니다. 직감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시사점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문화농업을 통해 봉사도시 화성을 완성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문화생산자로서의 농업, 문명치유자로서의 농업, 사회혁신가로서의 농업, 뉴노멀로서의 농업 등을 화성에서 시작해 보십시다. 이것이 봉사도시 화성의 갈 길이 아닐까요? 농도복합도시 화성에서 “자원봉사가 일상이 되는 따뜻한 도시”는 봉사로서의 농업 즉 문화농업을 상상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농사가 봉사이며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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