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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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아동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신분번호가 필요한 것은 다 안돼요. 그로 인한 불편이나 불이익은 이루 말할 수 도 없고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건 언제 내 생활이 끝장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에요. '언제 내 부모가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 '나도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 이게 아이들에게 가장 안좋은 영향을 주죠" - 석원정 이주인권활동가, 137pg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들, 이주인권활동가,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상황과 삶을 생생하게 전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한국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크면서 자신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이야기가 사회에 알려지기 전엔 학교 입학도 어려웠다. 통장도 휴대폰도 못 만들었다. 보험문제로 수학여행도 갈 수 없고 대학 진학은 더 어려운 일이다. 성인이 되면 또는 되기전에 국외로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늘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해서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등록과 미등록 차이로 아이들은 다른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럼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면 된다'고 한다. 책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도 한국에 살고 있었다는 말에 동의하며 한 쪽의 필요로만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990년대부터 한국사회에서 계급 이하의 계급으로 존재했다"며 "1970년대에 전태일이 고발한 노동현실에 버금갈 정도의 참혹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지금까지 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포천의 채소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Nuon Sokkheng)씨가 숨진 사건이 발생한 게 2020년 겨울"이라고 말했다.

백석 시인과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좋아하는 달리아는 국어 과목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란에서 온 민혁이는 중학교 3년 내내 회장을 도맡기도 했다. 그는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게 된 건 한국에 왔을 때 친구들이 저를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제가 차별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친구들을 차별할 생각을 안했다"고 말했다. 강제퇴거와 보호명령 취소 소송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페버도 친구들 사이에서 1등 연애 상담사로 통한다. 페버는 "저는 남의 이야기를 절대 흘려듣지 않는다"며 "누가 상담을 하는 이유는 도움이 필요해서고 그걸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제가 도움이 필요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가볍게 여겼으면 지금의 저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람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니까 앞으로 더 낫게 변할거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저희가 지나가면 길에서 이유 없이 화내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한 번은 엄마랑 제가 뭘 사고 계산을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 적도 있어요. 어렸을 때는 그게 너무 충격이었는데 요새는 저희를 봐도 '어, 히잡이다' 이 정도예요.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게 보여서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갖게 되죠. 살면서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달리아, 178pg

은유 작가는 책을 마무리하며 "모든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인권을 아우르는 실질적이고 항시적인 구제대책 마련은 우리 공동체에게 남겨진 숙제가 됐다"며 "미등록 이주아동과 청소년이 오늘이 마지막이겠다는 불안을 베고 잠들지 않을 수 있도록 '존재의 합법화' 경로가 제대로 만들어 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책은 우리가 우리사회의 좀 더 다양한 면면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은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한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고민이 시작 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시 팔복에서 먼저 슬퍼한 자, 깊이 슬퍼한 자, 끝까지 슬퍼한 자들이 슬픔에 짓눌리지 않고 슬픔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이 조금씩 나아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슬픔은 보시가 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 엄연한 사실을 잊지 않고 또 갚기 위해서라면, 시인의 기도대로 우리는 영원히 슬퍼야 하리라"-231pg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유 지음/국가인권위원회 기획/창비 펴냄/231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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