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이주민은 240만명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주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국가로 꼽힌다. 이에 <이로운넷>은 이주민의 차별을 진단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요구되는 이유를 다루고자 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은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20여 년 전 한국에 온 네팔 이주노동자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아프거나 다쳐도 고용주의 말에 따라야 했다. 고용주가 의사였다. 그가 허락해야 병원에 갔다. 잘리면 강제 추방당했기에 고용주의 말을 신앙처럼 따랐다.” 그는 다른 이주노동자도 자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을 비롯한 이주노동자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고용허가제는) 인권탄압·차별적 제도 자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차별적 제도...체류자격 고용주가 쥐는 것

고용허가제는 2004년 고안됐다. 내국인 인력을 구할 수 없는 사업주에게 외국인 고용을 허가하고, 이주노동자에게는 3~5년 단위 체류비자를 발급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공적권한을 모두 고용주에게 위임했다는 데 있다. 고용주가 어떤 이유든 계약을 해지하면 이주노동자의 비자는 취소된다. 곧장 출국하지 않으면 미등록이주민(불법체류자)으로 분류된다. 3번의 이직 기회가 주어지지만, 고용주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즉 이주노동자는 이직의 자유가 제한된다. 

지난해 11월 정의당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도행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법 제정이 반대하는 이들이 피켓을 기자회견에 있는 모습./출처=정의당.
지난해 11월 정의당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도행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법 제정이 반대하는 이들이 피켓을 기자회견에 있는 모습./출처=정의당.

이주노동자는 고용자의 부당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임금 체불·폭행·산재 미처리 등 ‘부당한 지시’를 견딜 수 없어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한 달내로 고용주의 귀책을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추방된다. 김형완 소장은 “이주노동자가 처한 여건상 입증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고용노동부에서 고용주에 대한 관리·감독을 이행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로 이주인권단체들이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이를 기각했다. 김형완 소장은 “이주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전문가·활동가들은 이 같은 제도적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형완 소장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법률간 상충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있는 법의 ‘차별’ 요소를 점검하고 들여다볼 것이다.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이 견고해질테고, 그럼 고용허가제 같은 차별적 제도 역시 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 또한 “법이 제정되면 고용허가제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더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개별법 있지만, 무엇이 차별인지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아”

헌법 제11조에는 차별금지조항이 있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처럼 이주민을 위한 개별법도 마련돼 있다. 각 법안마다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지만, 선언적 맥락만으로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장혜영 의원실에 놓인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포스터..
장혜영 의원실에 놓인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포스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지금 있는 법은 뭐가 어떻게 차별인지 명시적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차별인지, 실제로 차별을 받았을 때 그 행위를 중지시키고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을 표시한 법안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그것들을 모두 아우른 법안이다.

이를테면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를 보면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나타나 있다. 이 조항이 차별금지에 대한 내용 전부다. 고용허가제 하에 차별받는 이주노동자가 계속 나타나는 이유다. 

김민정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차별’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 것이며 그래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이주민 인권의식은 처참하다. 포괄적으로 차별을 아우르는 법이 없으면 사람들은 ‘차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차별에 대한 판단은 독립기구가...‘책임’ 물리는 법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과 공급, 행정서비스 등에서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인종, 국적, 피부색 등 23가지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해선 안된다고 못 박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차별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린다. 현행법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조치가 전부다. ‘강제’의 효과가 없고, 당사자가 무시하면 그만이다. 차별금지법은 권고가 아니라 ‘시정’하라고 명령한다. 차별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배상의 책임까지 물을 수 있게 한다. 김형완 소장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사람들은 이것이 차별행위인지 아닌지 사전에 돌아보고 자제할 것”이라며 “그것만으로도 효력이 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별이 무엇인지 법이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인가 아닌가는 상황·맥락에 따라 가변적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차별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판단을 개인에게 맡겨 둘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판단’을 국가인권위원회나 법원과 같은 독립기구에게 맡긴다. 개인의 이해관계가 아닌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에 따라 차별을 판단하는 것이다. 

2007년부터 추진, 13년 째 표류중인 ‘차별금지법’

사실 차별금지법은 2000년대 중반부터 추진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고 2007년 12월 법무부에서 처음 발의했다. 별도의 논의 없이 2008년 5월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정부 입법으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없다. 

지난해 7월 정의당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정당연설을 진행했다. 사진은 장혜영 의원이 발언하는 모습./출처=정의당.
지난해 7월 정의당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정당연설을 진행했다. 사진은 장혜영 의원이 발언하는 모습./출처=정의당.

국회에서는 꾸준히 입법을 시도했다. △2008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등 10명 △2011년 9월 박은수 민주통합당 의원 등 11명 △2011년 12월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 등 10명 △2012년 11월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등 10명 △2013년 2월 김한길 의원 등 51명 △2013년 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등 12명 △2020년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지난해 발의된 장혜영 의원의 법안을 제외하고 6건은 정식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노회찬·박은수·권영길·김재연 의원 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이례적으로 ‘법’을 철회했다. ‘나라 망치는 법’,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 ‘사회적 합의 부재’ 등 공격적인 선전을 펼치는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 때문이다. 철회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안됐다. 홍성수 교수는 7년간 제정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보수 개신교의 목소리는 ‘여론’으로 볼 수 없다. 다만 목소리가 높고 압박의 수위가 높아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법은 7년 만의 제정 시도다. 

장혜영 의원 법안은 지난해 9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전체회의에 상정되면 토론과정을 밟고 소위원회에 회부되는 게 보통이다. 회부 이후에도 상임위 축조심사, 찬반토론, 표결 등을 거쳐야 본회의에 올라간다. 법사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제안설명만 했고 이후 절차를 어떻게 하겠다는 논의는 없었다. 

이는 여야 법사위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합의는 이미 끝났는데 국회는 미진한 태도를 보인다. 홍성수 교수는 “이 합의에 국회가 호응해야 한다”며 “국회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이 법에 대한 의욕이 없는 것이다. 반대를 두려워해도 필요성에 공감했다면 진즉 추진됐어야 한다. 거대 여당부터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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