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경제에 대한 공격이 거세다. 공과 과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서 아쉽다. 사회적경제는 정부나 시장 한쪽만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등장했다. 저성장 시대에 그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로운넷>은 긴급진단 시리즈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안겨준 성과를 정리하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한동안 ‘주공거지(주공아파트 거지),’ ‘엘사(LH 사는 사람)’ 같은 표현이 언론을 장식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임대주택을 얕보는 표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기업이 도맡는 기존 공공임대주택은 입지가 나쁘거나 획일화되고 관리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이미지가 굳어져 이런 비하 표현까지 만들어진 거다.

이런 공공임대주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사회주택’이 등장했다. 국가마다 그 정의는 다른데, ①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 ②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운영 ③공공재정의 지원 ④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 지향 ⑤안정적으로 보장된 거주기간 등을 충족하면 한국형 사회주택이다.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필요해 ‘민관협력형 임대주택’으로도 불린다.

정부 직영으로는 못 따라가는 사회적경제 전문성

유디하우스 화곡은 12세대 중 3세대에 UD를 적용했다. / 제공=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유디하우스 화곡은 12세대 중 3세대에 UD를 적용했다. / 제공=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사회주택의 특징은 운영과 관리를 사회적경제 주체가 할 수 있다는 거다. 공공기관에 관리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질을 높이고 색을 입히는 건 사회적경제 주체만의 전문성이다. 예를 들어, 예비사회적기업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이 공급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유디하우스 화곡’(이하 화곡점)은 건축 과정에서 12세대 중 3세대에 유니버설디자인(UD, Universal Design)을 적용했다. 유니버설디자인이란 성별·연령·국적·문화적 배경·장애 유무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일컫는다.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이범재 대표는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오랜 시간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지난해 이로운넷과의 인터뷰에서 “UD가 적용된 소형공동주택을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공급하기에는 재정적 한계가 크다”며 “사회주택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주택 정책은 자본금이 많지 않아 건축이라는 분야에 쉽게 적용하기 어려웠던 UD를 적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유디하우스처럼 건물 자체에 테마가 있는 사회주택도 있고, 풍부한 콘텐츠가 특징인 사례도 있다. 사회적기업 아이부키가 운영하는 10층 규모 사회주택 ‘안암생활’이 좋은 예다. 서가·거실·주방·회의실 등 공유공간부터 창작자들을 위한 3D 프린터와 입주자 전용 애플리케이션까지 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 참여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원한다면 할 수 있도록 자원을 지원하는 거다.

안암생활에 마련된 공유마켓. 왼쪽에는 안암생활 애플리케이션 사용 방법이 적혀있다.
안암생활에 마련된 공유마켓. 왼쪽에는 안암생활 애플리케이션 사용 방법이 적혀있다.

이런 장점 탓에 정부 직영 공공임대주택에서 살다 사회주택으로 옮긴 사례도 있다. 이로운넷이 지난해 만난 사회주택 입주자 김보라 씨는 SH에서 운영하는 원룸형 다세대주택에 살다가 나와 '함께주택 3호'에 입주했다. 이전 주택에서는 이웃과 교류가 전혀 없어서 입주자 간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불편했지만, 함께주택 입주자들은 평소엔 개인적으로 살다가 필요할 때 모이는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다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민감할 정도로 배려한다”며 “내가 어떤 문제로 피해를 받기도 주기도 싫다면, 아이러니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더라”라고 부연했다.

전국 약 5000호...지역 조례 제정 이어져

국내 사회주택 공급현황 통계. 약 95%가 수도권에 있다. 자료=한국사회주택협회
2020년 기준 국내 사회주택 공급현황 통계. 약 95%가 수도권에 있다. / 자료=한국사회주택협회

전국에 분포한 사회주택은 약 5000호. 이중 수도권에 95%가, 서울에 70%가 몰려있다. 서울시가 2015년 선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했고, 수도권에 주거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서울시 조례로 국내에서 공식 지위를 인정받은 후, 사회주택은 2017년 국토부 주거복지로드맵에서 언급됐다. 2019년 2월에는 국토부가 2022년까지 매년 2000호 이상을 공급하겠다며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는 가능하다면 1000호 내외를 더 공급할 수도 있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최근 국토부는 돌봄·육아·교육, 일자리·창업지원, 귀농·귀촌, 장애인·자립지원 등 ‘테마’가 있는 사회주택을 만들고 운영할 사회적경제 주체를 공모했다.

서울시에 이어 지금까지 약 9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도입한 상황이다. 경남과 제주, 청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조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최근 청주에서 사회주택 모델도입 토론회를 주관했던 박완희·최동식 청주시 의원은 “청주시에 맞는 주거복지 모델 개발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공동체 활성화 복원의 역할 또한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회주택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법 개정 따라 사업자 보증보험 가입 요건 완화 필요

사회주택 전용 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상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때문이다. 법이 개정된 후 모든 임대주택사업자는 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들고 싶어도 못 드는 사회주택 사업자들이 생기고 있다.

주로 문제가 되는 건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쉽게 말해 땅은 정부가, 건물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갖는 임대주택이다. 민관이 비용을 함께 부담해 부동산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취지다. 다만 이 형태가 보증보험 가입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해당 보험을 취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SGI서울보증보험사는 토지 소유주와 건물 소유주가 다르면 채권 회수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거 공공성 실현에 기여하는 바가 인정돼 공공의 지원을 받는 건데, 이 때문에 오히려 부채비율이 높은 부실기업 취급을 받는 역설이 발생한 현상이다.

지난 7월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사회주택 전반을 점검한 결과, 사회주택 사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HUG와 지속적인 협의를 추진하라는 조치의견을 냈다.

사회주택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수치로 계산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사회주택은 주거취약계층에 저렴한 비용으로 신규주택을 공급하는 효과도 있지만, 기존 공공임대주택에서는 어려운 커뮤니티 활동이나 지역사회 연결 사례를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적 효과도 있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주택에 다양한 색을 입히고, 풍성한 콘텐츠를 운영하는 건 주거복지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기본값”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열린 사회주택의 날을 기념해 진행된 ‘슬기롭게 잘 먹겠습니다’ 이벤트 사진. 입주자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있다./출처=‘사회주택의 날’ 운영진
지난 11월 열린 사회주택의 날을 기념해 진행된 ‘슬기롭게 잘 먹겠습니다’ 이벤트 사진. 입주자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있다./출처=‘사회주택의 날’ 운영진

비슷한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SK그룹은 ‘사회성과인센티브(SPC: Social Progress Credit)'를 통해 기업들의 사회성과를 화폐단위로 측정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HBS)은 기업의 임팩트를 회계에 반영하기 위해 ‘임팩트가중회계(IWA: Impact-Weighted Accounting)’를 연구한다. 장기적으로는 공유공간·시설 활용을 통한 경제적 비용절감, 사회적 고립과 소외감 해소, 안전·방범, 거버넌스 구축 등 유의미하게 드러나는 사회주택의 파생 효과를 경제 가치로 환산하는 작업까지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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