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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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이 전국민의료보험제를 도입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바마가 미국 관료주의의 병폐를 극복해 보려고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2013년 오바마 정부는 전국민의료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터넷에 의료보험과 관련한 서비스를 개설했다. 오랜 기간과 예산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오류로 사이트는 작동하지 않게 됐다. 한달간 수리 기간을 거쳐 겨우 다시 오픈할 수 있었다. 이 때의 사고는 오바마에게 큰 상처였다. 공공서비스의 혁신이라는 것이 기존 관료시스템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다른 혁신적인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용히 구글과 페이스북의 최고 기술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정부의 공공서비스 혁신을 과제로 요청했다. 기술자들의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혁신하는 데 IT개발자와 기술자들에게 임무를 맡기는 발상 자체도 흥미로웠다.

이들이 활동하는 팀의 이름은 ‘18F’다. 워싱턴 18번가와 F스트리트에 사무실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4년 구성돼 최근까지 약 5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다루고 해결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규모가 절반 정도로 축소되기는 했으나 어떤 민간 기관들 보다 효율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눈여겨 볼 것이 두가지 더 있다. 하나는 이들은 미(美) 재무성의 예산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서비스를 개발해 줌으로써 수혜를 입는 기관이 지출하는 서비스 비용을 수입금으로 삼아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공공벤처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하나는 이 기관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흔히 애자일 방법론(agile acquisition)이라 부르는 것인데, IT개발자들이 여러 관계자들과 협력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계획에 맞춰 개발하는 방식과 달리 일정 주기로 끊임없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그때 그때 필요한 요구를 반영하여 개발하는 적응형(adaptive style) 개발방식’ 이라고도 한다. 이 애자일 방법론을 미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개발전략에도 기본 방법으로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관계자들과 처음부터 사이트를 함께 구축해 가는 과정을 설계하게 된다.

관료들이 공급자마인드로 설계하여 사이트와 앱을 잘 만들었다고 사용할 것을 홍보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진 사이트와 앱은 사용빈도가 떨어져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이트나 앱에 쏟아붓는 예산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오바마의 18F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무엇보다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혁신하는데, IT개발자들이 나서는 방식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본격적으로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서비스를 혁신하는 데 있어서 이같은 공공벤처를 만들어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은 늘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우리의 경험치도 축적되고 있기는 하다. 코로나 때문에 공급되어야 할 서비스 중에서 마스크공급이나 잔여백신 확인 프로그램처럼 신속하게 대응한 경우들도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활동가그룹 ‘빠띠’같은 개발자모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료들이 기술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면서, 우월적 지위를 내려 놓지 않는 한 오바마의 헬스케어 사이트의 실패가 보여주는 사례들은 오바마 정부만의 예는 아니다. 최고의 기술진들이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 관계자들의 참여가 가능하게 설계하면, 비용의 절감과 서비스 혁신이 일어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여러 나라에서 오픈소스로 서비스를 만드는 입법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같은 점에서 기존 관료 중심의 서비스 중심체계를 변화시켜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꿈꾸는 복지국가에서 지독한 관료주의로 공공서비스가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영화에서처럼 어느 나라든 관료를 중심으로 행정이 펼쳐지는 것이 중심이 되는 현실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러나 끊임없이 인간의 존엄이 우선이 아니라 관료의 행정이 우위에 있는 현실을 ‘해킹’해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시도돼야 하고 그를 통해 사람보다 ‘행정’이 우위에 있는 현실을 혁신해야 한다.

오바마의 새로운 시도는 그런 점에서 신선하다. 우리라고 그런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시도해야 혁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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