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리빙랩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리빙랩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리빙랩은 우리가 사는 생활공간에서 민·산·학·연·관이 함께 문제를 탐색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실증해나가는 혁신모델이자 방법론이다. 정부 주도의 하향식 정책, 산·학·연 전문가 중심의 연구개발, 경제성장 중심의 산업혁신, 연대·협력 없는 각개약진식 사업 추진 등 그동안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려는 일종의 사회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리빙랩 활동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내용과 과정을 혁신하는 방법론으로 진행된다. 과기부 주도의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이나 국민생활연구사업, 행안부의 지역사회혁신사업, 국토부의 스마트시티 사업 등에 리빙랩 방법론이 적용되고 있다.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서도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리빙랩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대학들의 리빙랩 활동도 활발하다. 교육부의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에 참여하는 대학은 다양한 리빙랩 활동으로 교육·연구·지역사회 혁신을 시도한다. 이를 서로 연계하고 고도화하기 위해 2019년 ‘대학 리빙랩 네트워크’가 발족했다.

기업의 리빙랩 활동도 두드러진다. 한국에자이·엔유비즈·이루다·인라이튼 등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기업의 사회적 공헌 활동을 고도화하는 방안으로 리빙랩을 시도한다.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한국시니어리빙랩의 경우 기업이 연구자, 소비자(시니어)와 함께 일종의 플랫폼을 구축해 시니어 중심의 제품·서비스 개발과 비즈니스 창출을 시도한다.

시민사회도 리빙랩 활동으로 성장한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은 주민 중심의 에너지 자립마을 구축을 위해 에너지 리빙랩을 운영했다. 지금은 에너지 전환의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역시 리빙랩 사업으로 경험 축적 및 관계 확장을 하면서 의료·돌봄을 위한 지역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리빙랩 활동을 엮어내려는 시도도 꾸준하다. 2017년 3월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KNoLL: Korean Network of Living Labs) 발족을 시작으로 광주·대구·부산·전북·경남·대전 등 지역별 및 대학·스마티시티 등 영역별 리빙랩 네트워크도 발족했다.

2017년 3월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에서 진행된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1회 포럼 현장.
2017년 3월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에서 진행된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1회 포럼 현장.

지금까지 리빙랩 활동은 각 분야에서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그 가능성을 확인했던 ‘버전 1.0’이었다. 공무원, 기업, 과학기술자, 어르신·장애인·환자, 시민사회 등 모든 이들이 혁신의 주체이며 함께 협력할 때 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가장 큰 성과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돌봄, 에너지 전환, 자원 순환, 공유경제, 지역·R&D·산업·교육 혁신 등 각 리빙랩 활동이 부처별·지역별·주체별로 진행되고 있으나 경험 및 성과가 규모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또 리빙랩은 수평적 협력을 중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혁신 활동이라 기존 하향식의 선형적 정책이나 법·제도 체계와 상충하는 부분이 많다. 부처별·지역별·주체별 리빙랩 활동을 점검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나 지자체 조례 규정, 공공기관·연구자·교수 평가체계를 개선해서 리빙랩 활동을 촉진해야 한다.

이제 리빙랩 운동은 변화의 씨앗인 ‘점’의 활동을 넘어 각각을 움직이는 ‘선’으로 연결돼야 한다. 규모 있는 ‘면’과 입체 공간으로 확대해 나가는 ‘버전 2.0’을 준비할 시점이다. 각자 앞에 놓인 문제풀이식의 리빙랩 활동을 넘어 2030년, 2050년을 내다 보며 지속가능한 사회·기술시스템 전환의 관점으로 각 활동을 연결하고 플랫폼 차원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한국리빙랩네트워크 PD)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한국리빙랩네트워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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