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 혁신 방법으로 '리빙랩'이 뜨고 있다. 일상을 실험실로 여기고 시민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는 방식이다. <이로운넷>은 사회 각 영역에 리빙랩을 접목하려는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와 손잡았다. 앞으로 리빙랩으로 이룬 혁신 사례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파고든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향식으로는 공무원이 기발한 정책을 내놓거나 국회의원이 법을 만드는 방안, 상향식으로는 개개인이 합심해 캠페인을 벌이거나 자원을 모으는 방안 등이 있다.

최근에는 ‘리빙랩(Living Lab)’이라는 개념이 사회문제 해결 방안으로 떠오른다.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의 윌리엄 비첼 교수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살아있는 연구실,” “생활연구소”라고도 해석하는 리빙랩. 위에서 누군가가 뚝딱 해결책을 내놓는 게 아니라, 시민과 전문가가 합심해 설계하는 행위를 추구한다. 상호작용하면서 전문가는 사용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시민은 전문 지식을 쌓을 수 있다.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는 이렇게 ‘실험’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각 지자체 리빙랩 운영자, 정부와 국책 연구소, 각 지역 테크노파크 및 진흥재단, 지역 소재 대학교 소속 교직원 등 회원 수가 1200여명에 달한다. 지역별 또는 영역별 리빙랩 활동 주체로 이뤄진 운영 위원은 10명이다. 2017년 임의단체로 발족해 지금까지 21번의 포럼을 열었다. 주제는 지역자산화,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스마트에이징,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2월 5일, 한국리빙랩네트워크 구성원으로 활동 중인 송위진·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을 만나 지금 시점에서 리빙랩이 왜 필요한지, 어떤 면에서 ‘혁신’인지 들었다.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구에서 송위진·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을 만났다./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구에서 송위진·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을 만났다./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리빙랩=시민과 전문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자꾸 리빙랩, 리빙랩 하는데, 그래서 그게 뭔가요?”

이 3명의 ‘리빙랩 전도사’들은 리빙랩을 “민·산·학·연·관 간의 협력모델”이라 소개했다. 민간, 산업, 학교, 공공부문이 모두 협력한다는 거다. ‘누구나 그런 모델을 추구하지 않냐’며 특별한 점이 대체 뭐냐고 지적할 수 있지만, 리빙랩은 그 결과물을 누리는 시민이 직접 과정에 참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전문가가 문제를 결정해서 해결 방법을 실험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당사자들과 함께 논의해서 대안을 만들어간다. 또,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실험실이다. 사용자와 시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에서 연구를 진행한다. 따라서 기존의 성공사례를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추구한다.

공공부문에서도 이런 점을 주목하고 활용 중이다. 지난해 서울산업진흥원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마곡 스마트시티 리빙랩’을 주관했다. 대여소 없는 비(非)고정형 공유전기자전거 시스템을 도입하고, IoT 센서가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통에 분리 배출한 시민에게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건강·교통·환경 분야에서 더 똑똑한 도시로 발전하는 성과를 냈다. 전문가가 '뚝딱' 하고 내놓은 결과물이 아니다. ICT 전문가와 시민이 머리를 맞대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기업을 모집해 '리빙랩 엑셀러레이팅 사업'을 실시한다. 경상남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리빙랩에 관심 갖고 참여할 주체를 모집한다.

한국리빙랩네트워크 PD이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인 성지은 박사./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한국리빙랩네트워크 PD이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인 성지은 박사./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한국리빙랩네트워크는 이러한 사례를 공유하면서 리빙랩이라는 방식 자체를 널리 퍼트리는 플랫폼이다. 한국리빙랩네트워크 PD로 활동하는 성 연구위원은 “네트워크에 대학과 연구기관, 중간지원조직, 사회혁신조직, 지자체의 다양한 관계자가 참여하고, 최근에는 지역별 리빙랩네트워크와 대학리빙랩네트워크까지 구성되는 등 주체 간 연계·협력이 더욱 다각화되고 있다”고 자부했다. 올해만 해도 이달 31일 ‘리빙랩과 젠더 포럼’ 4회가, 6월에 돌봄리빙랩네트워크 발족이 계획돼있다. 성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대학교, 연구원,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기관을 가리지 않고 각 영역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대표 선수들을 모아 연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 고도화 이룰 수단

리빙랩의 발전은 사회적경제의 발전과도 맞닿아있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둘 다 사람 중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니,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거라는 거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리빙랩네트워크 정책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송 연구원은 국내 사회적경제의 고도화를 위해 리빙랩이 좋은 수단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는 “한국은 고도의 기술기반 사회이므로, 리빙랩을 통해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혁신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비즈니스로 실현하는 데 기술이 활용되고, 이 과정에 리빙랩 방식이 접목되는 그림이다. 이어 “리빙랩은 특정 영역만이 아닌, 사회 곳곳에서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 더 전망 있다”고 설명했다.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한국에자이는 제약사 에자이의 한국 법인이다. 서 부장은 한국에자이가 사회공헌활동으로 암생존자 리빙랩인 '온랩'을 구축하는 과정에 기여했다./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서정주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부장. 한국에자이는 제약사 에자이의 한국 법인이다. 서 부장은 한국에자이가 사회공헌활동으로 암생존자 리빙랩인 '온랩'을 구축하는 과정에 기여했다./사진=박성빈 인턴 기자

서 부장은 리빙랩 활동을 하다 사회적경제조직 창립에 뛰어든 계기를 들려줬다. 그는 2018년부터 암 생존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온(溫)랩’의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온랩은 암 경험자와 심리치료사, 가수, 디자이너,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인 조직이다. 그동안 캠페인, 합창단, 콘서트, 모델 화보 촬영 같은 활동을 실험했다. 암 경험자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재미와 일상을 되찾았다. 온랩은 지난해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서 부장은 “리빙랩으로서 어떻게 역량 강화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찾은 방법이 사회적협동조합이었다”며 “취약계층 고용형이나 서울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증받으라고들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암 경험자가 취약계층이라는 인식을 깨고 싶고, 전국 단위로 인가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성 연구원은 사회적경제 조직이 리빙랩 활동에 참여해 성과를 내면서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채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도 “아직 사회적경제가 ‘잔여적’ 경제로 여겨질 때가 많은데, 이제는 주류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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