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11일 서촌 먹자골목 풍경. 비가 오락가락했으나, '불금'의 퇴근 시간이다. 이미 줄 서 있어야 할 식당엔 손님이 채워진 테이블이 한 두개 정도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골목풍경에 한숨이 나온다. 사회적거리두기가 2단계로 나눠져 밤 9시 영업제한은 풀렸으나 서촌 먹자골목 밤거리는 여전히 한산하다. /사진=신혜선(아이폰6)
사진은 지난 11일 서촌 먹자골목 풍경. 비가 오락가락했으나, '불금'의 퇴근 시간이다. 이미 줄 서 있어야 할 식당엔 손님이 채워진 테이블이 한 두개 정도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골목풍경에 한숨이 나온다. 사회적거리두기가 2단계로 나눠져 밤 9시 영업제한은 풀렸으나 서촌 먹자골목 밤거리는 여전히 한산하다. /사진=신혜선(아이폰6)

엉뚱한 측면에서 게으르다. 예를 들면 자칭 별명이 '만기의 여왕'이다. 이유인 즉 서푼짜리 적금을 들어도 어지간하면 해약한 경우가 없어서다. 놀림까지 받았다. 예를 들면, 한 때 유행했던 변액보험. 후배 권유로 적금 대신 들었는데 얼마 안가 '사기극'이라며 아우성이었다. 초창기 주변 지인들 대개가 해지했다. 난 그조차도 잊어먹고, 5년 후 완납, 그리고도 7년 만기에 이르렀던 거다. 금융담당 후배가 "세상에 아직도 해지를 안했어요? 연구대상일세. 선배를 인터뷰 해야겠네"라며 놀렸던 일이 생각난다.

이런 습관을 난 게으름으로 퉁쳤다. 해지라는 적극적 행위는 좀 더 큰 이익을 위해 판단하고 조치를 취하는 걸텐데 "아이고 몇 푼 이자 더 받겠다고. 그거 궁리하는 시간에..." 이런 식이니, 부자 되기는 글렀다는 자타평가는 덤이었다.

최근 이런 내 금융 습관에 대해 일갈을 가한 사람이 있었다

"월수입이 안정적이니까 가능한 거죠. 국장님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소득자라는 겁니다."

'팩폭(팩트폭격)'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물론 대출이나 빚내는 걸 거리끼는 습성도 있지만, 말문이 막혔다. 맞다. 난 따박따박 월급이 제때 나오는 노동자다. 진짜 상황이 급하면 무슨 만기. 그러보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이미 겪었다.

3500만 원짜리 11평 연립주택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그중 3100만 원이 빚이었다. 남편 수중에 현금이 400만 원. 난 만기가 2년 가까이 남아있는 700만 원 납부상태인 적금이 전 재산이었다. 부모 힘 빌리지 않는다고, 직업이 있으니 우리 성향 상 빚부터 갚겠지? 이런 맘으로 덜컥 융자를 받아 전세를 마련했다. 불행은 1년 만에 왔다. IMF가 터진 거다. 은행 대출 이자가 그야말로. 울면서 적금을 해지했다. 해지할 수 있는 건 다 해지하고, 가능한 모든 지출을 줄였고, 월급받기 무섭게 원금을 갚기에 바빴다. 대기업 다니던 남편 월급 실수령 액이 160만 원이 안 되던 때다. 그렇게 ‘올챙이 적 시절’을 까먹고는 내가 만기의 여왕이라고 게으름을 앞세워 자부했던 거다. 그저 매달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안전한 월급쟁이였을 뿐인데.

어느 모임에선가 코로나19로 인한 심각한 상황을 한탄하면서 누군가 그랬다. 

“그러니,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사람은 일단 입을 다무는 게 맞아.”

잠시였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 쉬거나 소주를 털어 넣었던가.

늘 불야성을 이루는 서촌 골목도 3분의 1은 불이 꺼졌다. 영업을 하는 곳도 휑하다.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자고 들어선 식당 주인장(이자 서빙 보는 분)이 퉁명하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요청사항에 답변도 없고, 눈에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낮은 목소리로 우리끼리 지적질이 시작됐다.

“아 뭐 이래.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가 안돼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한참 먹고 볶음밥 1인분을 주문했다.

“저희 집에 처음 오시나요? 이건 서비스로 드릴게요.”

우리 모두 눈으로 말했다.

‘어라, 달라졌어. 표정이. 서비스래?’

"아이고,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둘러보니 들어올 때 우리 포함 손님이 두 테이블이었는데 두 테이블이 더 늘었다. 그러고보니 3명이서 3인분 먹고 추가로 먹고 반주도 곁들이고, 밥도 시켰으니 우리는 '우수 손님'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 같다. 장사 안되는 게 누구 탓이 아닌데도 그저 미안하고, 그 와중에 서비스는 고맙기만 하다.

연대하고 인내하고, 희망의 사례가 가끔씩이라도 나오는 사회적경제 소식을 듣다보면 먹먹해진다.

“이러다 우리 문 닫겠어요. 어떻게 하죠.” 내가 무슨 수가 있어 전화했겠나. 지난봄, 전화로 하소연한 A협동조합 대표는 이후에 웨비나를 한다며, 잘 좀 보도해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뭐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일텐데,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지.

다 어렵다 하지만 더 어려운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사람이 있다. 표정과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게 함께 사는 도리다. 하나 둘 정성을 모으고, 그걸 더 어려운 이웃에 나누며 행동으로 그 도리를 보여주는 무명의 우렁각시와 지니(이건 필진 최호선 선생이 방담에서 먼저 쓴 표현이다)들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문득, 코로나19로 어려운 이웃에 성금 보낸 미디어가 어디 있던가. 사기업 종사자이면서도 공익을 추구한다는 업의 특성 때문에 대접받는 우리들. 그래, 성금은 됐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기자들은 자판을 두드릴 때와 모니터를 끌 때를 분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가뜩이나 스트레스받는 시절에 안 봐도 되는 기사들이 넘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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