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서 만들 음식의 가지수를 줄이면서 송편은 탈락, 배추전은 살아남았다. 떡과 전 네 종류 만들기를 뺐을 뿐인데도, 제사상 차리기가 훨씬 수월해질 듯하다. 상은 간소하지만 정성이 간소화된 건 아니다. 사진은 직접 만든 추석 음식 사진.

#장면 1. 시엄니 vs 며늘 카톡

시엄니 : 오냐.
시엄니 : (3초 후) 그럼 전은 그렇게만 하고, 튀김은 사서하자.
며늘 : ...

#장면 2. 카똑으로 날아간 며늘의 긴~ 설교

며늘 : 어머니, 제가 굳이 음식을 하자는 건, 조상님께 정성을 다하고, 또 우리 가족이 먹을 거니까. 문제는 그 양인데. 어머님 몸도 안 좋으시고 저도 힘들죠. 나물3, 전3, 탕국이면(나머지야 원재료 그대로이니) 저 혼자 충분히 해요. 가짓수를 줄여놓고 나머지를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전이나 튀김이나 다를 게 없고, 튀김이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요.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한 두 개 더 하는 게 낫죠.
시엄니 : (다시 3초 후) 그래.

시어머니 허리가 단단히 고장 났다. 그럴 만도 하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50년이다. 한평생 농사며 집안일이며. 성한 게 이상한 일이다. 올해만 서울 큰 병원 왕래가 세 번째다. “이번엔 전과 떡은 사서 하자”는 말씀을 병원동행 아들 편에 보내오셨다. 오죽하면.

난생 처음 ‘까똑’을 보냈다(시어머니께는 평소에 전화도 가끔 하지만, 까똑은 아예 안한다).

‘무숙채 도라지 파란나물3, 배추전 두부전 동그랑땡3, 소고기산적1, 고등어, 조기, 포, 조율시사과배포도5, 햇곡식(옥수수 고구마 땅콩은 쪄서), 탕국과 밥. 떡은 사서.’

다짜고짜 보내놓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한마디로 직접 하되, 간소하게였다. 영양소 골고루, 잘 차린 한 끼 밥상이다. 지금까지와 비교해 시간싸움이나 노동력에서 ‘땡큐 땡큐’다. 그래도 서운하셨나 보다. 결국 ‘튀김(4종류)은 사자’라는 말씀이 손가락을 통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조상에 대한 도리가...딸 사위 손님에게 내놓을 음식이...’ 말씀하지 않아도 어머니 속은 내게도 보인다.

장문의 며느리 설교가 언짢으셨을지, 모른 척하는 중이다. 이렇게 내 나이 50에, 결혼 23해 45번째 명절이 돼서야 제사상 음식 가짓수를 내 맘대로 정하고 줄였다. 그것도 어머님 당신이 너무 아프신 덕에. 

누구 말대로 ‘21세기를 사는 마지막 20세기 며느리 그룹 중 하나’다. 타협하면서 늙고 있다. 윗세대와 불화를 최소화하자는 정도로 타협했다. 다만, 내가 작은 의사결정권을 갖게 된 날은 바로 바꾼다는 정도의 각오는 매번 다졌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데스크 보직을 처음 단 2011년 7월, 부원들을 향해 처음 던진 일성. 

“매주 1회 회식은 매월 1회로 바꾼다. 매 주 회의 후 밥 먹고 싶은 부원들 두 명 이상이면 부 카드로 자유롭게.”

차장일 때, 후배들을 의견을 수렴해 회식 개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혼자 불참해 후배들 원성을 샀다. "선배가 안오면 어떻게요..." 차장이란 자가 후배들을 대신해 부장에게 제대로 건의하지도 않고, 불참으로 분위기만 흐리니. 후배들에게 한꺼번에 갚은 셈이지만, 과정은 용감하지 못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이제는 고참들의 투덜거림도 들린다. “점심필수발, 회식필참... ‘직장셔틀’이라는 셔틀 다 참고 했는데, 이제 내가 뭐 좀 해보려니 후배들한텐 씨알도 안 먹히고.” 본전 생각을 어쩌겠냐고? 나쁜 습관, 불합리한 관행이라고 그렇게 속을 끓였는데, 그걸 본전이라고 하는 농담부터 버리면 그만이다. “그 작은 고리를 나부터라도 끊을 수 있다니!” 차라리 이런 뻔뻔함이 낫지 않겠나. 

부디 어머님의 양보가 당신의 건강으로 이어지길, 처한 조건 서글프다 나약하다 비난하지 말고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정신승리'하는 명절이길.

번외> 추석 상 간소화를 친정 엄마한테 얘기했다. “아니, 뭘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야지. 시부모님 보기 송구해서.” 엄마는 그날 시어머니가 받으신 ‘까똑 설교’의 열배쯤 되는 분량의 일장연설을 들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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